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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 Jul 29. 2021

26살 이대리가 회사에서 독립한 이유 (2)

인디펜던트 워커 실험기




회사가 정답이 아닌 삶 맛보기

실험이라니 어쩐지 거창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회사가 정답이 아닌 삶을 조금이나마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일종의 맛보기인 거죠. 목욕탕도 들어가기 전에 온도 체크를 해보잖아요. 물에 손을 살짝 대면 내 몸을 맡겨도 될지 느낌이 오니까요. 제 실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손만 한 번 살짝 대보고, 완전히 몸을 담글지 말지 결정해보는 차원에서 말이죠.






내 능력에 대한 불확신

저는 콘텐츠와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해왔습니다. 조직개편으로 업무 범주는 더 확장되었죠. 콘텐츠 기획부터 출연자 섭외, 인터뷰 진행, 촬영과 편집까지. 손이 안 닿는 곳이 없었습니다. 작은 것부터 굵직한 것까지 여러 일들을 진행했지만, 저 혼자서 해낸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건 회사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었죠.


출연자를 섭외할 때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어요. 처음엔 저를 경계하는 게 수화기 너머로 느껴집니다. 그럴만하죠. 제가 어떤 용무로 전화했는지 모르시니까요. 그러다 회사를 말씀드리면 그제야 분위기가 전환됩니다. '유 퀴즈 온 더 블록' 프로그램을 보면 유재석 때문에 출연을 결심했다는 분들이 가끔 계시더라고요. 프로그램을 잘 모르지만 MC가 유재석이라니 믿고 나왔다면서 말이에요. 만약 제가 MC였다면 어땠을까요? 섭외 작가들이 죄다 퇴사했을지도 모릅니다. 섭외할 때마다 어떤 프로그램인지 어필하고, 이걸 왜 하는 건지 취지를 설명하고, 제가 MC인 걸 납득시켜야 했을 테니까요. 이 모든 수고가 유재석 하나로 줄어든 것이죠. 저에게 회사가 그런 존재인 것 같았어요.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믿고 협업한다는 점에서요.


무섭더라고요. 회사에 기대지 않아도 제 능력이 가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나를 믿고 쓸 만큼 전문성을 갖추어야 할 텐데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한낱 실험일 뿐이라지만, 이 일로 나에게 실망한다면 그 후폭풍을 감내해야 하는 건 제 몫이니 두렵더라고요. 그러다 이런 문장을 만나게 됩니다.



"전문가가 되려면 일단 어떤 분야에 '종사'하며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 평범한 직장인에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첫째, '계속 종사'가 보장되는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가? 갑자기 회사 비전이 바뀌었다며 부서가 없어지거나 하면 곤란한 거다.

둘째, '깊이 종사'를 방해하는 요인이 차단된 시스템 하에 일할 수 있는가? 일손이 부족해서, 믿고 맡길 인물이 부족해서 등의 일 처리 때문에 본업을 갈고닦을 여력이 없어지면 안 되는 거다."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김키미-



제게 이보다 적합한 글이 있었을까요. 완벽한 시작을 기다리기보단 부족하더라도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습니다. 능력을 발전시키는 건 회사가 아닌 제게 달린 일이었고, 발전은 경험을 통해 하는 거니까요. 저는 저를 한 번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맛보기, 재능 판매

재능마켓에서 판매하는 것부터 시작해보기로 했어요. 저는 카드 뉴스와 PPT를 제작해주는 재능을 팔기로 했죠. 고객에게 견적서를 보낸 뒤 채택을 받아야 거래가 진행되는 프로세스였는데요. 아무래도 첫 거래인 지라 채택받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일단은 시작을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 저렴한 가격으로 견적을 보냈고, 그렇게 첫 거래가 성사됐습니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행복했어요. 순전히 제 능력으로 번 돈이니까요. 이후 입소문이 나서 몇 번의 거래를 더 진행하게 됐어요. 저 스스로는 별거 아닌 재능이라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밖에선 필요로 하는 재능이더라고요.


그러다 꽤 난이도 있는 문서 작업 의뢰를 보게 되는데요. 전문 분야는 아니었지만 해볼 만할 것 같아 작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후회했죠. 생각보다 양이 많아 퇴근 후 매일 새벽까지 일해야 했거든요. 무엇보다 어떤 아이디어도 없이 샘플과 똑같이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따분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정말 개성이 드러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재능 판매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점이었죠. 작업할수록 저의 작업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재능 판매는 부수입 수단 정도로 생각해보기로 했죠.



재능 판매를 하며 느낀 것

- 내가 가진 재능은 돈이 될 수 있다. 내 재능을 함부로 얕보지 말자.

- 나는 창의력이 필요한 작업을 좋아한다. '복붙'하는 식의 작업은 재미없다. 돈이 정 급하다면 하자.

-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면 영상 편집 같은 다른 재능을 생각해보자. 요즘엔 별도 프로그램 없이 웹상에서 PPT나 카드 뉴스를 쉽게 만들 수 있으니까. 실제로 작업을 의뢰한 분들 모두 나이가 지긋하셨다.

- 사람들이 외주 작업을 맡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본인들이 할 수 없는 일이거나, 할 시간이 부족해서 외주를 맡긴다. 나에게도 해당하는 작업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두 번째 맛보기, 독립출판

개인이 책을 쓰고 만들어 판매까지 하는 걸 독립출판이라 하는데요. 가장 도전해보고 싶던 일이었어요. 제대로 배워 보고 싶은 마음에 독립출판 워크숍도 신청했죠. 그렇게 퇴근 후엔 워크숍을 가고, 집에 와선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워크숍 장소가 회사에서 1시간 반 정도 거리라 피곤했지만 재밌었어요. 조금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도 점점 커졌고요. 그게 잘 안 돼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기도 했지만요.


한 번은 미팅하러 작가님 댁에 찾아간 적이 있었어요. 그날 봤던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책을 쓰고 있던 컴퓨터 화면, 고민이 엿보이는 수많은 메모, 참고하기 위해 펼쳐진 책들. 책상 뒤엔 언제든 책을 꺼내 볼 수 있는 책장들과 그 옆의 흔들의자까지. 사진으로 남겨 두고두고 보고 싶을 정도로 멋있어 보였어요. 저도 작가님처럼 글 쓰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보고 싶더라고요. 지금은 그렇게 지내고 있네요.



독립출판물을 만들며 느낀 것

- 내가 왜 쓰는 것인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다.

- 혼자서 끄적거리다 책으로 만들려니 부담감이 크다. 공개적인 공간에 글을 쓰는 연습이 필요하다.

- 책의 가독성이나 색감은 샘플로 한 권 뽑아 확인해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

-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질투 날 정도로 부럽다. 자꾸 욕심이 나는 걸 보니 아무래도 계속해봐야 할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이걸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인지, 그저 멋있어 보여서 해보고 싶은 건지 헷갈린다.






세 번째 맛보기, 영상 제작

아무래도 책보단 영상이 접근성이 더 좋잖아요. 알고리즘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가능성도 있고요. 책의 메시지를 영상으로도 전해보자는 생각으로 영상 제작을 시작했어요. 저 스스로 '유튜버'라기 보단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 중의 하나로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라 되새겼던 것 같아요. 저한테 유튜버는 본격적인 느낌이라 부담이 컸거든요.


회사에서 영상을 만들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지, 어떤 썸네일이 클릭을 유도할지 고민이 많아졌죠. 내가 출연하는 영상을 만드는 건 처음이라 아직 연습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영상 제작을 하며 느낀 것

- 촬영하는 걸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적응이 안 된다. 초점은 잘 맞는지, 밝기는 적당한지, 오디오는 잘 들어가는지 중간중간 체크를 해야 한다.

- 회사에서 모니터 2대로 일하다가 노트북 1대로 편집하려니 답답하다. 작업 속도도 느려졌다. 이젠 노트북 편집에 적응해야 한다.

- 글을 쓰다 집중이 안 되면 영상을 편집하는데 확실히 재충전되는 것 같다.






회사 밖의 삶을 더 맛보고 싶어서

3가지를 다 맛보니 더 욕심이 나더라고요. 처음엔 회사를 다니며 부업으로 활성화할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회사에 빼앗기는 시간과 감정 소비가 점점 커지더라고요. 주말 근무도 많아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았죠. 회사에서 점차 소진되는 저를 보며, 회사 일이 아닌 내 일에 투자하자는 결심이 섰어요.






실험은 계속된다

퇴사를 하고 나선 독립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 중이에요. 정해진 길이 있는 게 아니라 제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아요. 다시 회사를 들어가야 하나 싶을 때도 있고요.


저는 어떤 일을 선택할 때 뭐가 덜 후회될까를 생각하는 편이에요. 어떤 선택이든 후회하긴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요. 지금 당장 회사를 들어가면 아무래도 마음은 편할 것 같긴 해요. 누군가에게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직업이 생기는 거고, 안정된 수입이 들어올 테니까요.


그런데 10년 뒤엔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그땐 제가 책임질 게 더 많아질 테니까요. 부모님도 일을 안 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고, 저도 큰돈을 내야 하는 상황도 많아질 텐데 그 부담감을 다 감수하며 회사를 나올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당장 회사 들어가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계속해보자고 마음을 다시 먹었죠. 원래 새로운 도전엔 불안이 따르는 법이잖아요. 불안은 곧 잘하고 싶다는 욕심의 증거이기도 하고요.


불안은 계속 있을 것 같아 인디펜던트 워커 실험 과정을 기록해보기로 했어요. 내가 해왔던 것들, 해나가고 있는 것들을 남기며 저에게 확인시켜줘야 덜 불안할 것 같아서요. 혹시 또 몰라요. 세상 어딘가에 저와 같은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이 글이 우리가 연결되는 징검다리가 될지.


실험 결과는 아무도 몰라요. 독립적으로 일하며 충분히 먹고사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다시 회사에 들어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죠. 처음엔 실패할까 봐 무서웠는데요. 애초에 이 실험에 실패가 있나 싶더라고요. 설령 회사에 다시 들어가 일하게 될지라도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도전해봤던 사람인 거잖아요. 그게 또 어떤 씨앗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꿋꿋이 도전하며 기록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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