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힘쓰며 터를 만들어 Mar 09. 2019

내 가족의 이민 역사

    우리 가족은 1999년도에 미국에 이민을 왔다.  주위에 나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온 사람들은 IMF 사태의 여파로 아버지가 직장을 잃거나 사업이 어려워져 이민을 결정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운 좋게도 IMF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아버지의 자의로 이민을 결정했다.  아버지가 이민을 결정할 당시에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나의 의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전교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고3 누나에게는 청천벽력 같던 소식이었다. 한참 예민하던 시절의 누나와 아버지는 자주 부딪혔고 그 갈등은 누나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지속되었다.  


    나는 반년을 낮춰 8학년으로 편입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정규과정을 수료하고 SAT를 보고 대학교에 입학까지 할 수 있는 여건이었지만 누나는 대입까지 2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커뮤니티 컬리지를 다니다가 4년제 편입을 노려야 했다. 한국에 남았더라면 충분히 SKY에 가고도 남을 실력이었을 누나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아이들과 영어 보충수업을 받아야 했으니 자존심에 많이 금이 갔을 것이라 생각된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버지와 술자리에서 당신이 이민을 결정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교육문제도 경제적인 문제도 아니라 바로 아버지가 한국에서의 삶이 지겨워졌기 때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줄곧 평생 개업 약사로 일하면서 모범적인 가정으로 살아오신 아버지에게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이민 오기 2년 전에 미국에 살고 계신 둘째 이모의 초대로 할아버지 큰 이모 식구 우리 식구 모두가 처음으로 미국에 두 달간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둘째 이모는 일찌감치 20대에 이모부를 따라서 미국에 정착해 우리가 올 시기에는 사업이 이미 큰 성공을 거둬 말 그대로 영화에서 나올 법한 저택에서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사시고 계셨다. 아마 그때 느꼈던 '픽쳐 퍼펙트'한 삶이 아버지 마음에 불씨를 지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나도 그때의 환상에 푹 젖어 있었기 때문에 미국 이민에 큰 반감이 없었는지 모른다. 


    아버지의 결정은 과연 옳았던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런 것 같다 '이다.  그 까닭은 미국에서의 삶이 한국과 비교해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나빠서 때문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나를 가능케 해줬기 때문이다.  미국에 첫발을 내딘뒤  약 20년이 지난 우리 가족은 다시 한국으로 역이민행을 택했고 나만 지금의 아내를 함께 엘에이로 돌아와 함께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40대 초반의 아버지가 이민을 결정했을 당시 상상했던 모습은 아니겠지만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제 매형, 갓 한살이 지난 조카, 또 내 아내까지  모두가 한 식탁에 모일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나만 혼자 미국에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을 때 아버지는 본인이 부덕한 탓에 가족이 떨어져 살게 되었다며 자책하셨지만 난 아버지 덕을 참 많이 봤고 지금도 보고 있다. 


    이민은 과연 옳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세대인 우리의 몫으로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있다.  그래도 내가 20년 전으로 돌아가 고민을 하시던 40대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면 마음 내키는 대로 하시라고 토닥여 드리고 싶다. "잘하셨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가 잘할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