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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손이 Feb 17. 2023

아트스피치/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보고 쓰고 생각하고 No.5

책장을 얼른 비우려고 두 권 함께 읽기를 하는데 의외로 재밌다. '초병렬 독서'라는 책에선 아예 5권 10권씩 같이 보면 더 시너지가 난다고 하던데 뭐든 많이 먹으면 체하니 부담이고 두 권이나 세 권 함께 읽기가 좋은 것 같다. 이번엔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를 들고 어떤 책을 함께 읽어볼지 고민하다 오은영의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를 집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말 잘하기로 소문난 두 사람의 결이 다른 스피치 비법서. 


김미경의 책은 무려 친필 사인본인데 10여 년 전 그녀가 스타강사로 이름을 날릴 때 받은 것이다. 열정 많던 20대 시절 그녀의 아카데미에서 연 스피치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잘하는 한 명을 뽑아 무대에서 여럿과 함께 나누겠다는 취지로 열린 행사였다. 15분 정도 강의하는데 A4 용지 5장을 10포인트로 빼곡히 채웠다. 최선을 다했고 시간을 정확하게 맞췄다. 주최측에서는 "와, 준비 많이 하셨네요"라며 격려해 줬지만 역시나 상 복 없는 나답게 책 한 권을 받아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돌이켜 보면 상복이 없는 게 아니고 콘텐츠가 없는 거였다. 나보다 훨씬 아팠는데도 불구하고 훨씬 잘 살아오신 분이 그날 영광의 주인공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스피치의 세계에선 상처로 보석을 만들어온 보살이나 자기 분야에 통달한 전문가, 에피소드가 많은 스토리 부자들의 이야기만이 들을만한 법이니까. 


학창시절 나름 발표 잘하는 아이로 소문났던 나는 연단의 설 기회가 적진 않았다. 직장에서는 직급이 낮은데도 연말 사업보고나 수주전의 PT를 맡았다. 내 달란트는 혀끝에 있었고 자연스럽게 졸업생 강연같은 것을 종종 했다. 짧은 발표거나 대본이 있는 것이면 나는 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긴 시간 강의에선 할 말이 어쩜 그렇게 금방 동나는지. 좋은 청중을 만난 날은 성공도 했지만 대체로 진땀을 흘리기 일쑤였다. 사실 그땐 준비를 어떻게 하는 건지도 잘 몰랐다. 어린 날의 나는 연사들이 모두 달변이라 말을 술술 잘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 시절의 내게 찾아가 조용히 이 책을 건내주고 싶다. 음악과 스피치를 접목하고, 비언어로 청중을 끌어당기며, 독하게 책을 읽어서 의미 있는 내용을 건져올리고, 충실하게 에피소드를 모아 준비한다는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그녀의 비법을 아낌없이 나누어준 귀한 책이다. 


가끔은 오은영 신드롬 때문에 양육 과잉의 시대가 된 게 아니냐며 변방 아줌마 주제에 삐딱한 시선을 가질 때가 있다. '양육가설'같은 책을 보면 아이 키우는 방식도 일종의 유행이라는데, 저출산으로 아이들이 득세한 세상이라 가끔은 무수리 상전 모시듯 사는 삶이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항상 속 깊은 엄마가 돼야 하고 때로는 강인한 정신으로 훈육도 해야 하는데, 이게 보통 일은 아니다. 


"어머 잘했구나"와 "그건 안 되는 거야"를 왔다 갔다 하며 팔색조 만능 장금이로 기능해야 하는 모친의 삶. 아이가 조금이라도 못하거나 시기를 놓치면 온통 양육자 탓이 되어버리는 세상이 압력처럼 갑갑할 때도 있는데 그래도 트렌드 육아를 모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때문인지 나도 언젠가 이 책을 산 모양이다. 하지만 삐딱한 나 조차도 대세를 거스르지 않고 싶게 만드는 그녀는 명불허전 오은영 박사. 몇 개의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청중에게든 아이에게든 좋은 스피치는 결국 말보단 내용에 있다. 그래서 말하는 직업이 아니라면 하드웨어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어눌해도 괜찮고 발음이 안 좋아도 괜찮다. 스피치를 해야 한다면 그저 남의 귀한 시간에 먹칠을 하지 않겠다는 예의를 갖추고 진성성 있고 유익하게 내용을 구성하는데 힘을 써야 한다. 아이들도 화려한 화술로 혼을 쏙 빼놓는 엄마의 긴긴 말 보다 짧더라도 사랑과 주관이 담긴 말에 반응한다. 

흔히 글쓰기를 잘하려면 삼다(다독 다작 다상량)를 행하라고 한다. 말도 글처럼 아웃풋이라 좋은 인풋이 없으면 좋은 아웃풋은 불가능하다. 그 인풋이 내면의 숙성을 거쳐 좋은 말과 좋은 글로 나온다. 번드르르한 말은 때로 사기꾼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뿐이다. 잘하는 스피치는 언제나 진정성이 있고 내용에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 보았다. 


한권엔 날개를 달고 한 권은 명예의 전당으로. 감사한 날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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