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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Jul 25. 2024

안식년, 오십에 주는 선물

전반전 종료, 후반전 시작 전

20,000일, 오십 중턱


누구나 태어나서 20,000일 정도가 지나면, 54세 중턱이 된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때가 99년도였고, 그때가  27세, 그러니까 10,000일 정도를 살고 있던 때였다. 태어나 10,000일 즈음에 나는 세상에 온전히 발을 딛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84세라고 보면, 우리는 약 30,000일 정도 살다 가는 인생이다. 오늘자로 내가 19,128일 살았으니, 생애의 3분의 2정도가 지나가고 있다. 그래! 이제 내 인생 만 일 정도 남은 것이다! 


아주 감사하게도, 외동 딸 아이가 작년에 현역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우리 부부 역시 자식 교육의 의무에서 졸업했다. 법륜스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아이가 스무살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성인이 되는 것이고, 부모로서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아이를 사랑하지만, 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제부터는 여력이 있는 만큼만 잘 서포트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작년은 그런 뜻 깊은 해였다.


1999년부터 2023년 말까지 근 24년을 부단히 달려왔다. 군 생활을 제외하고 대학부터 따지면, 대략 30년을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고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기에 20대에서 40대의 10,000일을 보낸 것이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벤쳐기업에서 대기업, 스타트업에 합류하여 투자 유치까지 격한 세월을 보냈다. 안정적인 것을 따분해하고,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인생을 다이내믹하고 풍부하게 경험했지만, 그 사이 내가 무엇을 남겼는지 잘 모르겠다. 정말 이룬 것이 없는 것인지, 과거의 성과가 더이상 미래에 유용하지 않기 때문인지 도통 헷갈린다. 오십이어서 격는 통과의례인가?


그러던 중에 23년 말에 큰 결심을 했다. 1년간 안식년을 갖기로 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안식년!


내가 나에게 주는 안식년


대학이나 국가가 안정적 생활을 뒷받침해주는 안식년이 아니라, '내돈내산' 안식년이라, 이만저만 용기가 아니면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용기'가 아니라 '똘끼'가 필요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모두가 선망하는 학교를 나오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다녔음에도, 인생이 녹록치 않다고 느껴지는 것은 나의 문제일까, 사회의 문제일까? 초년의 10,000일은 성실히 노력하며 살아왔고, 성년의 10,000일은 변화에 적응하며 분주히 도전해왔는데,  마무리 10,000일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큰 숙제였다. 살아온대로 살면 안되겠다는 위기감이 크게 다가왔다. 못 살아온 것도 아닌 느낌인데,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느낌이 더 컸다. 달리는 열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달려온 관성대로 깔려있는 열차 궤도 끝으로 내 몰릴 것 같았다.


앞으로 남은 10,000일을 계획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남을 위해 살게 된다는 말이 크게 와 닿았다. 그렇게 나는 2024년을 자유의 시간으로 맞이했다. 불안함을 외면한 채.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남을 위해 살아가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간간이 이직을 했지만, 쉴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육아휴직이란 것도 쓴 적이 없었고, 회사에서 보내주는 연수나 안식월 제도도 누린 적이 없었다. 25년 전 대학 때의 방학이 마지막 자유였던 것 같다. 그렇게 오십대 초반에 가족의 동의를 얻어 1년의 휴지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200일이 흘렀다.


반년 동안 많은 것을 실행했다. 생각과 혀로만 뱉던 말들을 행동하고 실천했다. 


이제는 한식 요리 과정을 마쳐 집에서 주방을 책임지고 있고, 연초에는 와이프와 안나푸르나 등반을 다녀왔고, 봄에는 바이크 면허를 따서 생에 첫 바이크를 장만하였고,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명리학 공부를 독학하며 사주팔자를 통해 사람들의 기질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6개월간 목공 기초반에서 시작하여 고급반을 마스터하고, 원하는 가구를 디자인해서 만들기 시작하고, 주변에서 제작 요청을 받기도 하고, 주중에는 헬스장에 다니며 고질적인 허리 통증을 해소한 것도 뜻 깊다. 주말에는 동네 테니스 클럽에서 땀을 흘리며 친목하고, 고등학교 동기로 구성된 사회인 야구팀에서는 에이스로 활약하여 올 전반기 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골프에서는 고질적인 아이언과 숏게임에 안정성을 찾게 되었고, 취미로 즐기는 조소 작업을 통해 평산책방에 방문하여 문대통령 작품을 직접 전달드리는 기쁜 경험도 누렸다. 주중에 동네 도서관에 들러 읽고 싶은 책들을 읽으며 경제와 인문 교양을 쌓으며 스스로의 무식함을 깨닫고 있으며. 무엇보다 좋은 것은 사람과 얽힌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었고, 공부하고 몰압하는 즐거움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적게 쓰고 소소한 즐거움을 얻는 지혜를 조금씩 알게 되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의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내겐 큰 깨우침이다. 평일 낮의 일상을 경험하면서, 봄의 소중함과 자연의 아름다움도 새삼 느끼게 되었으며, 남들의 시선이 아닌, 내 기준으로의 좋음과 기쁨을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아 감사한다.


요리/ 목공/ 안나푸르나/ 바이크/ 조소/ 명리학/ 건강/ 독서/ 슬로우라이프


남은 반년도 역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일텐데, 8월부터는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딸 예정이고, 가을이 되면, 바이크로 지방 투어를 잠시 다니면서 내년을 구상할 계획이다. 안식년을 보내면서 드는 생각은 잠시 멈추는 것이 얼마나 나 스스로를 깨닫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스스로에게 주는 안식년은 큰 투자이다. 리턴이 불투명할 수도 있고, 통장만 고갈될 수도 있다. 다만, 멈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20,000일 즈음에서는 꼭 필요하다는 것과 어차피 은퇴 후 잉여의 느슨한 삶 중 1년을 당겨와 큰 깨달음을 채울 수 있다면, 그 또한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다들 겉으로 보이는 나의 일상을 보며, 부러운 눈길을 보낸다. 누가봐도 한량같아 보이는 삶이다. 나의 불안과 포석은 눈에 잘 띄질 않는다. 나의 파이낸셜 플랜도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남의 눈높이가 아닌 내 눈 높이에 맞춰서 살아갈 예정이고, 세상이 즐거워하는 것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 용기가 안식년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며, 내 인생의 남은 10,000일을 나답게 살아가는 초석이 될 것 같다. 할 얘기가 많지만, 안식년의 첫 글은 이정도로 시작하려고 한다. 


노후의 남아도는 1년을 당겨쓰는 투자


비슷한 고민을 하며,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는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오십대들에게 작은 가이드가 되길 바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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