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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Jul 29. 2024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제대로 놀아보지 않으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놀아보지 않으면, 모른다


직업과 적을 두지 않고, 1년을 쉬기로 한 건, 성인이 된 이후 처음이다. 조직 생활이 맞지 않다는 것을 사회 생활하고 20여 년이 지나야 알게 되었다. 그럼 나는 뭐가 맞을까? 그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하며, 1년간의 안식년을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나는 나를 찾기로 한다. 평생 주말은 놀아봤지만, 주중을 노는 것은 많이 달랐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을 보내고, 한 달을 보낼지 계획하지 않으면, 노는 것도 불안해진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30년 전 대학 생활 때, 그나마 긴 방학을 보낸 경험이 있어서, 주중 시간표를 만들어 채워보기로 한다.


평소에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배워보자! 낯선 것을 시작해 보는 것은 은근히 설렘과 두려운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서 스스로에게 긴장감을 준다. 배움이 곧 일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요리’를 배워보기로 용기를 냈다. 그동안 요리는 불을 켜고, 냄비에 물을 채우고, 라면 봉지를 뜯어 신라면이나 진라면 정도를 끓이던 정도, 아니면 프라이팬에 김치를 썰어 넣고 찬밥을 넣은 후, 남은 야채를 넣어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는 정도였다. 양파를 가로로 썰어야 하는지, 세로로 썰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진간장과 국간장이 뭐가 다른지도 모르는 수준이었다. 유튜브에 워낙 요리 콘텐츠 영상이 많긴 했지만, 레시피가 아닌, 요리의 개념을 잡고 싶었다. 칼을 다루는 법에서, 불 세기를 조절하는 법, 식재료를 냄비에 넣어야 하는 순서 등등, 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질문하지 않는 그런 물음에 답을 얻고 싶었다.

요리학원 등록

나는 요리 문외한이었기에, 체계가 있을 것 같은 큰 학원을 찾았다. 주변에 추천을 받아 나름 이름이 있는 강남역에 위치한 대형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한식 기초 조리 과정’ 6주 과정이었는데, 일주일에 2회, 주중 오전 3시간 요리 과정을 1월에 시작했다. 하루에 2가지 요리를 배우고, 게다가 요리한 음식을 집에 가져올 수 있도록 커리큘럼이 짜여 있었다. 그렇게 한 달 반동안 12가지 한식 요리를 섭렵하며, 일주일의 이틀을 시간표에 채워 넣었다. 주중 5일 중 화요일, 목요일 이틀은 가야 할 곳을 만든 것이다. 6주간의 요리 입문 과정은 집에서 백수 아빠의 역할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요리 문외한에게 요리의 감을 얻기에는 짧은 과정이었지만, 여러 요리를 흉내 내며, 두려움을 없애는 기회였다. 덕분에 주방과 요리도구에 친숙해졌고, 유튜브 채널의 다양한 요리를 시도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사라졌다. 점점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시도조차 못해봤던 따님의 picky 한 요리 요청도 척척 해내는 수준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이 오십에 요리에 입문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요리는 어려서부터 ‘의무 교육’에 포함해야 한다. 아무리 음식 배달이 편해지고, 사방에 식당이 널려있는 세상이지만, 하루에 세끼를 해결해야 하는 인간의 중요한 활동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졸혼하는 부부가 증가하는 세상에 특히 중장년 남성들에게는 꼭 필요한 교육이다. 은퇴한 중장년 남성들을 위한 요리강습은 앞으로 좋은 기회 시장이 될 것이다.


목수 되기 프로젝트


5년 전에 호기심에 처음으로 목공방에 문을 두드린 적이 있었다. 나는 몸을 움직여서 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무가 주는 질감과 향이 좋았다. 스스로 사용할 물건을 만드는 것도 매력이 있고, 나무를 재단하고 짜 맞추는 과정이 주는 긴장감과 몰입하는 경험이 좋았다. 가구 만드는 것은 기계와 도구를 이용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 꽤나 집중력이 필요하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금방 익숙해지기 마련인데, 한창 목공의 매력이 빠질 때 즈음 바빠진 일상 때문에 반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의 아쉬움 때문에, 이번에는 짜맞춤 가구를 전문으로 배울 수 있는 목공 고수를 찾아 나섰다. 우연히 퀄리티 높은 가구를 만드는 분이 운영하는 목공방을 알게 되었고,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 근처 목공 스튜디오에서 수강생을 받고 있는 ‘고범석 가구’에 등록하였다. 초급 3개월, 중급 3개월, 고급 3개월 과정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일주일에 하루 6시간 과정이다.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반 중에 금요일 하루를 선택하여, 목수 되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지금은 일주일에 이틀을 다니면서, 6개월 만에 초중고급 과정을 남들보다 빠르게 마치고, 자율제작반 과정에서 직접 만들고 싶은 가구들을 디자인하고 만들고 있다.


짜맞춤 가구의 특징은 원목 목재를 사용하는데 온도와 습도에 따라 변형되는 나무의 특성을 고려하여, 철물 부품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견고하게 연결하여 완성하게 된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가구를 만들 수 있고, 친환경적인 데다가 사람의 손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시간이 갈수록 기술이 숙련되고, 몸과 머리를 함께 쓰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작업이라 육체와 정신 건강에 모두 좋은 활동이다. 원할 때마다 조용히 작업할 수 있는 나만의 공방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요리학원과 목공으로 일주일의 3일을 채웠다. 주말은 늘 운동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안식년 초반에 주중 5일 중 3일을 새로운 것을 익히는 시간으로 채우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2월 말에는 등산에 심취한 와이프가 ‘안나푸르나’ ABC 트래킹 투어를 덜컥 예약해 놓은 바람에 주중 하루는 산행 체력 훈련으로 보낼 태세다. 산이라면 북한산 800미터를 오른 산행 경험이 전부인데, 4,000미터가 넘는 히말라야는 상상도 잘 안 간다. 모르면 용기 있다는 말이 맞다. 아예 경험이 적어,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가늠이 안 간다. 나보다 체력이 부족해 보이는 와이프가 간다고 하니, 얼떨결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즈음 ‘밀리의 서재’ 서비스를 신청하고, 호기심 가는 책을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오십에 읽는 주역’이라는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주역보다는 ‘오십에 읽는’에 꽂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소한 ‘주역’이라는 주제를 접하다 보니, 인접한 명리학과 사주팔자 콘텐츠가 눈에 들어왔고, 한때 음악평론가로 활약하시던 ‘강헌’ 선생께서 뒤늦게 명리학자로 활약하고 계신다는 내용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접하게 된 명리학에 시선이 쏠리면서, 유튜브 콘텐츠와 밀리의 서재에서 찾은 몇 권의 명리학 책들을 읽다 보니, 이게 쏠쏠하게 재미가 생긴다. 무엇보다 앱으로만 찾아보던 나의 사주팔자가 어떤 원리로 해석되고, 내가 어떤 기운의 ‘명’을 타고났는지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고전 물리학의 원칙이 양자역학으로 깨지기 시작하면서, 과학의 영역도 인간의 상식적인 이성으로 납득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커질 때여서, 동양철학이 과학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더라도, 진리에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주팔자의 세계


명리학은 음양오행을 기본 원리로 운명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학문이다. 한자에 익숙해져야 하고, 암기와 이해력이 동시에 필요했다.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고는 집중력을 가지기 어려운 내용이었는데, 나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호기심도 점차 발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던 바로 그 오십 대였기 때문이다. ‘지천명’이라고 일컫는 그 나이에 하늘의 뜻은 고사하고, 내가 누군지도 헷갈리는 나였다. 목, 화, 토, 금, 수의 오행 중 내가 타고난 기운이 무엇이고, 나의 일주가 어떤 기질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고, 나의 오십 평생에서 선택한 주요 결정이 어떤 것에 기인하는 것인지 조금씩 스토리텔링이 되는 것이다. 아직은 명리학 초짜라서 어설픈 해석과 유추만 가능하지만, 나의 과거의 실마리와 미래의 힌트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흥미로왔다. 서너 달 동안 명리학 책과 강좌를 들으면서 변하게 된 점은 운명에 대한 나의 태도였다.


우리의 운명은 ‘운’과 ‘명’으로 구성되는데, ‘명’은 각자가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나는 여덟 개의 글자, 즉 ‘팔자’이며, 나의 기질이 결정되어 있어서 변하지 않는 부분이다. 반면 ’ 운‘은 매년, 매월, 매일 변하는 것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 명‘과 매 시각 바뀌는 ’ 운‘이 조합을 이루어 특정 기운을 만든다는 얘기다. 쉽게 비유하자면, 화투를 칠 때 처음에 내가 받은 패가 나의 ’ 명‘이며, 바닥에 깔려있는 패와 그때그때 주변에서 깔아주는 패가 ’ 운‘이어서, 운과 명이 페어를 이룰 때 점수를 득할 수 있는 것이다. 내 패가 아무리 좋아도, 바닥에 깔리는 패와 타이밍이 맞지 않다면 내 점수가 되지 않으며, 내 패가 좋지 않아 보여도, 운 좋게 타이밍이 맞으면 청단이나 고돌이가 가능한 것이다. 세상에 좋은 팔자와 나쁜 팔자가 따로 있지 않으며, 좋은 운 때와 타이밍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남들은 모두 앞으로 전진하는데,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다. 조급해지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된다. 내가 명리학을 공부하고, 내 기질을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지금 이 시간이 나중에 다가올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용기를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급함이 느긋해지고, 아무것도 안 하는 용기도 현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이 조급하다고 바닥에 ‘똥광’이 깔리지는 않는다. 내 패를 알고 때를 기다리는 것도 방법인 것이다.


좀 더 놀아보자


안식년 6개월이 지났다. 평생 갖지 못했던 시간을 가지면서, 내 인생이 조금 확장된 느낌이다. 통장은 위축되었으나, 생각의 그릇은 조금씩 커져가는 기분이다. 30,000일의 평생 중에 남은 10,000일 정도를 나답게 보낼 수 있는 기초를 이제야 만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시간의 가치를 앞선 6개월 동안 선물 받은 것 같다. 아직도 나를 잘 모르지만, 6개월 전보다는 조금 선명해진 것 같다. 좀 더 놀아보면 더 선명해지겠지. 용기 내어 좀 더 놀아보자! 지금은 서두르지 않아도 될 운명의 시간이니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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