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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Nov 06. 2021

콰이어트 플레이스

소리없음의 고통

* 3년 전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사이트가 사라져서 제 개인 공간에 다시 업로드 합니다.

* 스포일러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심장에 좋지 않은 영화이다. 영화가 주는 긴장감이 대단하다. 영화 관람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하는 대신 영화와 나를 의도적으로 분리시키기 위한 정신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를 끝까지 관람하는 일이 괴로울 것이다.  

 

소리를 내는 모든 것들을 잡아먹는 괴물들이 나타났다.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이 괴물들은 평상시에 어디 숨어 있는지 보이지도 않지만 일정 데시벨 이상의 소리만 들리면 전광석화처럼 나타난다. 인류는 이 괴물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불과 3개월 만에 지구상 거의 모든 인류가 말살되었고, 소리를 내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살아남았다.  주인공 가족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큰 딸이 농아였기 때문에 일찌감치 수화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의사인 엄마가 가족들이 아플 때 마다 치료할 수 있었고, 공학자인 아빠가 고안한 각종 보안 장치들이 이 가족의 생명을 연장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여전히 괴물은 어딘가에 살아있고 소리가 나면 나타날 것이기에 이 가족은 매일 고단한 삶을 연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가족도 소리를 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영화의 주인공이자 아이들의 엄마인 에블린(에밀리 블런트)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소리를 내지 않고 출산하는 일이 가능할까? 설사 성공한다 하더라도 아기의 울음소리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비언어적 의사소통이란 말이 아닌 손짓 몸짓 표정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 강사들이 자주 인용하는 어느 연구 결과에 의하면 언어적 의사소통과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비율은 20:80 정도라고 한다.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비언어가 언어보다 4배나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의사소통 방법을 어떻게 숫자로 환산하겠는가? 게다가 사람들은 조금씩 다르게 소통한다. 어른과 아이의 소통, 남성과 여성의 소통, 말을 잘하는 사람과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의 소통 방법은 많이 다르다. 이들을 모두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었는가? 


사람들이 비언어적으로 의사소통 할 때조차 언어를 사용한다. 아무리 기쁘거나 슬픈 표정을 지어도 감정의 전달을 위해선 말을 사용해야만 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화난 표정과 함께 “나 화 안 났어.”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이 화났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는 말을 하는 순간의 평상시와는 다른 목소리의 크기와 빠르기에 따라 결정된다. 만일 비언어가 언어보다 9배나 더 중요하다면 우리는 공교육으로 연기를 배웠야만 했을 것이다.  



말을 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고통스러워 진다. 내면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위험한 것을 만지려고 할 땐 안 된다고 즉시 말해야 한다. 물에 빠지면 살려달라고 소리쳐야 한다. 말을 하는 것 이외에 대안은 없다. 


영화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장면은 임신한 주인공이 대못을 밟은 장면이었을 것이다. 괴물이 나타나 집안에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살기 위해선 비명을 지를 수 없다. 비명을 지를 때 남들에게 자신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진통의 효과도 있다. 고통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듯한 비명만큼 진통효과가 탁월한 방법도 없다. 아픈데도 소리를 지를 수 없다면 그 고통을 몸 안에 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 영화이다. 비언어적 표현이 중요하다고 한들 의사를 전달함에 있어 언어의 중요함에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비언어는 종종 잘못 해독되기도 한다. 좋은 건 좋다고 말하고 싫은건 싫다고 말하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좋아한다고 말하자. 거절당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다. 가족들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당신의 진위는 오해된다. 자신의 비언어적인 의사를 몰라준다며 남들을 탓하지 말라. 말을 하지 않았다면 당신 책임이다. 당신이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듯이 남성들은 비언어 해독에 특히 더 취약하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주로 뉴욕 주의 허키머(Herkimer) 카운티에서 촬영되었는데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사람이 없는 마을은 리틀 폴스(Little falls)란 소도시이다. 맨하탄에서는 300km 정도 떨어진 인구 5000여명에 불과한 이 소도시는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예상치 않았던 성공으로 인하여 유명해 졌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철교는 월킬밸리 레일 트레일교(Wallkill Valley Rail Trail bridge)이다. 맨하탄에서 130km 떨어진 곳에 있으므로 리틀 폴스에서 단시간에 걸어갈 수는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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