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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Jan 30. 2022

이모님에 대한 단상

지난 주 외할머니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이별은 슬프지만 100세 넘게 건강하게 사시다 돌아가셨기에 가족들의 슬픔이 덜 했습니다.

오히려 가족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든 분은 치매에 걸리신 이모님이셨습니다.

나도 이모님이 치매에 걸리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모른척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그런 이모님을 장례식 때문에 처음 가까이서 뵙게 된 것입니다. 


이모님은 서울대를 졸업하시고 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아이들 때문에 교직을 그만두신 분 이셨습니다. 가족들과 지인들 사이에선 똑똑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었고,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이모부께서 은퇴 후 과테말라에서 사업을 하신 일이 있는데 과테말라 방문 전 몇 달 동안 한국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하여 과테말라 현지에서 유창한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바람에 현지의 한국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만든 일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이모도 치매에 걸리고 나니 마치 어린 아이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이모부의 말을 듣지 않고 체력이 다 할 때까지 장례식장을 돌아다니는 이모님의 모습을 보면 마치 제 딸의 3살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알고 있던 것이 기억나지 않으니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했고, 심지어 자신의 막내 동생조차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영정 앞에서는 어린 아이가 아닌 성인의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는 슬픔에 잠겨 자신의 큰 언니인 우리 엄마 옆에는 다소곳이 앉아계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잊은 이모이지만 나를 보자마자 '언니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비록 내 이름까지 기억해내지는 못하셨지만 점점 희미해지는 이모님의 기억 속에 아직 내가 한 조각 남아 있는 같습니다.


어린 아이의 눈빛으로 부의금을 내던 사람들을 한참 바라보시던 이모님이 펜을 들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부의금 봉투에 글자를 적었습니다. 봉투에는 '김기수'라고 써 있었습니다. 김기수는 저의 사촌, 이모님의 둘째 아들 이름입니다. 막내 동생은 기억하지 못해도 자신의 아들들은 이름까지 기억하는 것은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을 때에도 손자와 놀아주기 위해 뽀로로 캐릭터의 인형을 보며 그 이름들을 외우려고 애쓰시던 모습이 많이 생각나네요. 크롱, 루피, 포비, 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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