흝어진 삶의 조각들을 새롭게 맞춰나가는 '엄마사람'의 여정, 그 시작
2017년 3월 4일.
나는 엄마가 되었다.
마치 게임광고에 보면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는 새로운 세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듯이,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이었다. 결혼과는 또 다른, 출산과 육아에 따른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이전에는 미처 가늠조차 어려운, 미지의 세계로의 시작이었다. 그런 나는 '엄마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미처 알지 못했고, 이전에 결코 상상해본 적 없는 하루하루를 맞닥뜨려야했다. 파도에 떠밀려간 잃어버린 한쪽 신발처럼… 어디로 가는지 모른채 표류하기 시작했다.
엄마로만 살게 되지 않을까
젠장. 왜, 누구도, 엄마로 산다는게 어떤건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을까. 원망한다한들 답이 나올리 만무했고, 일단 이미 늦었다. 왜냐하면 내 옆에 '나 당신 하나 믿고 세상밖으로 나왔소이다'싶은 표정으로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를 둔 나는, 엄마가 되었으니까.
다들 내게 말했다. 금방 지나간다고- 하지만 이 시기도 곧 지나갈꺼라는 여자 선배들의 위로는 결코 내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일하는 여성'이라는 두개의 서로 다른 역할을 어떻게 조화롭게 할 수 있을지, 과연 내 안의 자아분열처럼 상충되기만한 이 둘이 만나기는 하는지, 당장의 답이 갈급했다. 그건 아맘도 '엄마로만 살게 되지 않을까'싶은 두려움이 때문이었으리라.
밤낮없이 일에 몰두하던 시절이 그리울 때,
아이 앞에서 평정심을 잃고 폭발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
늦은 오후 거울에 비친 아직 세수도 못한 나를 마주했을 때,
밤낮없이 일에 몰두하던 시절이 그리울 때, 아이 앞에서 평정심을 잃고 폭발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 늦은 오루 거울에 비친 아직 세수도 못한 나를 마주했을 때, 결국 나를 일으켜 준 것은 ‘여행’이었다.
단순히 아이를 일터에 데려간다는 행위를 넘어서, 어쩌면 다소 추상적이고 도전적이고 담보할 수 없을 ‘불확실’에 아이와 나를 내던지는 모험같은 여행이었다. 14개월 아들을 데리고 첫 '아이동반' 출장을 시작해 36개월이 된 지금까지 일년의 4분의 1을 출장과 여행 그 경계를 넘나들며 아이와 세계여행을 했다. 한달 평균 2개 도시 4개 도시, 비행기 5회, 배 4회... (육로는 셀수없이 무수함) 무수한 사람들을 함께 만나고 그 중 절반은 미팅이거나 열대우림에서 야생오랑우탄과 원숭이들을 만나거나 숲에 사는 원주민들을 만나거나. 누군가는 정신나간 엄마라고 꾸짖기도 했고, 디지털노마드라고 혹은 팔자 좋다고 부러워도 했다. 남들이 뭐라건 상관없었다. 실은 (이전에 국내 첫 공정여행 사회적기업을 창업했고, 이후 두번의 여행 스타트업을 창업했고, 앞으로도 미래 여행의 방식과 여행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싶기에) ‘여행’을 업으로 삼은 이상 한번쯤은 겪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눈 딱 감고 감행한 일이었다.
여행을 통해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나’와 마주하고
지난 상처를 발견했으며 나의 꿈을 되찾고 싶어
코로나 사태로 당분간은 출장도 여행도 잠정보류 되면서 자동으로 아이와의 세계여행 1부가 끝이 났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겸출장에서 돌아온지 딱 한달이 되어간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행을 통해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나’와 마주하고 나의 지난 상처를 발견했으며 나의 꿈을 되찾고 싶었다. 글을 통해 그간의 정신없이 흘러간 기억과 생각들을 정리하다보면 그 '일부'를 좀 더 또렸이 볼 수 있지 않을까. 흩어지고 사라진 삶의 조각들을 새롭게 찾아나가는 나의 여정이자, 아이와 함께한 생애 가장 소중한 여행의 기억과 추억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엄마로 산다는 것, 일하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 - 내가 맞춰야만 하는 퍼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서야 극한의 우울증에서 한걸음 빠져나올 수 있었듯이. 이 기록이 지금 이순간에도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청량한 바람 한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