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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외계인 May 09. 2020

엄마로만 살지 않겠다.

엄마의 삶이 없어져서 내가 있었다.

엄마의 삶, 왠지 듣기만해도 코끝이 찡해오는 기분이다.  

엄마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엄마는 워킹맘이었다. 어릴적에는 구리감기(아마도 어떤 기계의 부품이지 않았다 추측해본다), 미싱, 등 부업 위주로 다양한 일거리를 재택근무(?) 삼으셨는데, 아직도 그때 그  요란하게 방안을 파고들던 드르륵드르륵 소리가 기억난다. 베란다에서 15인치 컴퓨터만한 기계 앞에 앉아 구리를 감으시곤 했는데, 이때 기계에서 나는 열감 때문이었는지 엄마의 왼쪽 검지손가락 끝에는 굳은살 위로 반찬고가 메여있었고, 창문으로 주황빛 햇볕이 내려앉아 구리가 유독 반짝거렸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동생과 함께 아기참새마냥 베란다 창틀에 걸터앉아 불량으로 분리되어진 부품조각을 만지작거리며 기계음이 멈추길 기다렸다가 엄마 옆에서 한참을 종알거리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앨범을 열어볼 때면, 날 낳기 전. 그러니까 첫 아이 출산 전까지 20대를 보냈던 직장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하셨다. 당시 잘나가는 외국계기업인 모토로라에 다니셨는데, 앨범에 꽂힌 사진은 한복을 입은 젊은날의 엄마가 외국인 상사로부터 상패와 꽃다발을 받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린 나는 엄마가 이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의 모습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한 아이를 키우는 딸이 된 지금, 결혼전 자부심을 갖고 일하던 그리고 성과를 인정받던 한 장면을 추억하는 젊은 엄마의 표정이 그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보인다. 엄마의 ‘엄마로 사는 삶’은 어땠을까.   


밤낮으로 일하고, 성과를 인정받던 ‘일하는 여성’이었던 시절이 그리웠을까.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싶은 두려움이 있었을까. 더없이 사랑스럽지만, 나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고 어린 생명체가 주는 과업이 더러는 힘에 부치기도 했을까. 지금의 내가 엄마가 되어가듯,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이 있었겠구나 싶다. 그때는 몰랐지만, 어릴적 엄마를 만난다면 잘하고 있다고 정말 멋진 엄마이고 당신의 딸은 이담에 당신같은 엄마가 되고싶어한다고 말해주면 꼭 안아주고싶다.   


지난해까지 한 직장에서 20년 가까이 일하시다가 최근에 예전 꿈을 찾고싶으시다며 새로운 길에 접어드셨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삶에, 새로운 꿈에 든든한 지원자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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