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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Oct 27. 2018

미디어가 뭐였더라?

북저널리즘 <미디어의 미디어9> 리뷰

아이폰에 스크린타임 기능이 추가되었다. 압도적인 사용시간을 보이는 건 당연히 소셜네트워크. 인스타그램보다는 페이스북이 많았고 페이스북보다 카카오톡에서 쓰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스크린타임 페이지로 이동하면 어떤 앱에서 얼만큼 시간을 사용했는지 알 수 있는데, 사파리에 접속했을 때 어떤 사이트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까지 상세하게 기록한다.


오늘 출근할때까지의 기록

분명 나는 출근길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으며 왔는데 스크린타임의 기록은 소셜네트워킹으로 남아있다. 내가 모바일 기기에서 소비하고 있는 텍스트의 80% 이상이 소셜네트워크에 업로드 된 콘텐츠임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리디 페이퍼와 종이책을 감안하면 비율이 조금 달라질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콘텐츠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혹은 친구가 톡으로 건넨 링크를 통해 소비한다.


솔직히 <미디어의 미디어9>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미디어라는 용어에 익숙하면서도 미디어라는 단어에서 괜한 무게감을 느끼고 있던 탓이었다. 하지만 띠지를 통해 저자가 요즘 가장 핫한 텍스트 기반의 미디어 아홉 곳의 리더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조금이나마 무게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따지고보면 수많은 정보가 오가는 소셜네트워크 또한 미디어인데 '미디어=언론'이라는 요상한 선입견이 있었던 터라 스크린타임에 기록된 나의 모바일 사용실태를 보고 소셜네트워크를 미디어라는 단어와 결부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콘텐츠 소비실태 뿐 아니라 내가 소비한 미디어에 대한 다각적인 연결을 시도해 볼 수 있었고 미디어에 대한 심적 부담도 줄일 수 있었다.



미디어가 뭐였더라?


미디어 - 정보를 전송하는 매체 (정보통신용어사전)
미디어 -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 (국어사전)


미디어의 범주는 포괄적이다. 흔히 언론이나 플랫폼을 생각하기 쉽지만 사전적 의미를 보면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 자체 혹은 그 역할을 하는 것을 모두 미디어라 칭할 수 있다. 1인 언론사와 1인 크리에이터가 어색하지 않은 1인 방송 시대를 살고 있고 일반인도 페이스북 라이브, 인스타그램 스토리, 유튜브, 아프리카TV, 트위치 등을 통해 어렵지않게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미디어=언론이라는 요상한 선입견을 가졌던 건 미디어에 대한 유년시절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방학숙제로 신문 스크랩 숙제를 하던 때를 떠올리면 텔레비전과 신문이 가장 큰 미디어였다. 하지만 지금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바로바로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기반의 미디어가 엄청 성장했고 이젠 미디어를 미디어라 생각할 필요도 없을만큼 미디어가 많아졌으며 일방향적이고 획일적인 미디어가 아니라 차별화와 다양성을 필두로 하는 미디어가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과감히 버릴 때 미디어가 탄생한다


대학을 다닐 때 '신문은 망한다', '텍스트 기반의 미디어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같은 예측을 신문과 방송에서 많이 접했던 것 같다. 위기감 때문일까? 텍스트 기반 미디어는 여러 가지 변화를 거듭하며 오늘날의 경쟁력을 갖췄다. 텍스트 콘텐츠를 구매하는데 꽤 많은 지출을 하는 사람 중에 한 명으로서 텍스트 기반 미디어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만 돈을 지불하는 것만큼의 만족감을 주는 미디어에만 지갑을 열게 될 것이고 그 기준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저자가 인터뷰를 진행한 미디어 아홉 곳은 정말 핫하다. 물론 모두가 동의할 순 없겠지만 텍스트 기반 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들어봤을 법한 미디어다. 글을 쓰면 보상을 하겠다는 블록체인 기반 미디어 스팀잇, 특유의 구성력으로 사랑받는 디지털 경제 미디어 쿼츠,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콘텐츠만 발행하는 퍼블리, 간결함과 스마트함을 추구하는 악시오스,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모노클, 책과 뉴스 사이의 경계를 파고든 북저널리즘, 휴먼큐레이션의 가치를 믿는 업데이, 브랜드 저널리즘의 대명사가 되어가고 있는 GE리포트, 그리고 실시간 인공지능 뉴스 서비스 카카오 루빅스 이렇게 아홉 개다.


미디어는 미디어가 버려야 할 것을 정확하게 인지할 때 탄생한다. 물론 이 과정은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캐치한 뒤라는 전제가 따른다. '버린다'는 표현을 쓰긴 썼지만 그것보다 자신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미디어가 빠르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타겟 독자층이 저절로 확산될 순 있겠지만 타겟 독자를 늘리기 위해 미디어의 색을 바꿔야 한다면 과감하게 신규 독자층을 버리는 것이 맞다. 퍼블리는 주로 일 하는 사람들을 다룬다. 혹은 일 하는 사람들이 관심 있을 법한 콘텐츠를 다룬다. 그리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어느 정도 독자가 확보된 콘텐츠만 출판하는 영리함을 보여준다. 반면 퍼블리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북저널리즘의 경우엔 정치, 사회, 교육, 문화, 라이프 등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지금 읽어야 할 내용을 짜임새있게 다룬다. 자연스럽게 저자 뿐 아니라 에디터의 역할과 북저널리즘의 판단이 중요해진다. 어떤 주제로 누가 글을 쓰든 믿고 사 읽을 수 있는 퀄리티를 만드는 것이 북저널리즘의 강점이다. 


악시오스는 "미안합니다. 짧은 편지를 쓸 시간이 없어서 긴 편지를 썼습니다."라는 미국의 농담을 인용해 요약해 쓰는 것이 더욱 어려운 작업이며 그 작업을 악시오스의 강점으로 내세운다. 불가피하게 분량이 늘어나는 주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긴 글에서도 맥락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정체성을 유지한다. 스팀잇은 투명성을 잃지 않기 위해 많은 것들을 버렸다. 하지만 그 투명성이 콘텐츠 퀄리티를 사용자 스스로 관리하게 만들고 보상을 통해 지속적인 콘텐츠 수급을 가능하게 한다고 굳게 믿는다. 업데이가 휴먼큐레이션의 가치를 믿는다면 카카오 루빅스는 인공지능을 통해 독자가 진짜 관심있게 읽은 콘텐츠를 기반으로 뉴스를 큐레이션 한다. 사람의 힘이 최대한 개입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정답은 없다. 다만 부차적인 것을 버리고 본질에 집중할 때 독자들의 선택을 받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디어


책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서 관심이 생긴 미디어가 있었고 그렇지 않은 미디어가 있었다. 비교적 텍스트 콘텐츠에 대한 취향이 분명한 나에게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이 분명히 보일만큼 책에 실린 미디어들은 저마다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리더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미디어는 무엇일까? 왜 그 미디어를 계속 찾게 될까?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소비 패턴을 알면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그 사람이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는지 알면 그 사람의 성향이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다. 그동안 막연하게 다양한 콘텐츠를 많이 소비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해 왔는데 북저널리즘 시리즈를 읽으면서 내가 선호하는 콘텐츠를 비교적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1. 시의성 있는 주제가 흥미롭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그 변화를 어느 수준 이상 이해하기 위한 콘텐츠는 부족하다. 호기심이 많아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북저널리즘이 고심해서 선택한 시의성 있는 주제들에 무릎을 탁!치며 그간 읽었던 다른 콘텐츠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시기에 민감한 주제들을 나도 모르게 찾아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주제를 지금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북저널리즘의 주제 큐레이션은 나같은 독자에게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온다. 


2. 깊이 있는 내용을 원한다 

북저널리즘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깊이 있는 내용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가 많이 나와있지만 해당 주제를 꽤 깊이 다룬 콘텐츠를 찾아보긴 어려웠다. 여기서 말하는 '깊이'는 나의 경우 새로운 주제를 만나도 책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그 주제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 주제에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에 대한 방향성을 찾을 수 있는 정도의 깊이다. 그런 면에서 북저널리즘은 깊이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3. 소비에 실패하고 싶지 않다 

어떤 식당에서 대부분의 메뉴가 맛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자주 가게 된다. 음식점에 북저널리즘을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최근 들어 북저널리즘만큼 평균 이상의 맛을 보장하는 미디어를 본 적이 없다. 저자에 따라, 주제에 따라 콘텐츠의 양이나 질이 들쭉날쭉한 미디어만 보다가 어떤 책을 꺼내들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완결성 있는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는 건 매일 갈 수 있는 맛있는 식당을 발견한 것처럼 기쁜 일이다. 그리고 주제에 따라 디지털과 종이책 중 선호하는 방식을 선택해 소비할 수 있다는 점도 소비에 실패하지 않게 만드는 북저널리즘의 치밀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 기준도 없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은 없다


스팀잇은 수정과 삭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작하지 못했다. 퍼블리는 흥미로운 주제가 생겼거나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멤버십을 신청해서 일정기간 동안만 콘텐츠를 소비하고 다시 해지한다. 일에 연관된 주제가 많다보니 관심사가 겹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모노클은 외국 여행을 갔을 때 딱 한 번 구매한 적이 있다. 비행기에서 읽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는데 영어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글 콘텐츠가 넘쳐나는 한국에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아무 생각없이 콘텐츠를 소비한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떤 독자도 생각없이 콘텐츠를 (돈과 시간을) 소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미디어는 점점 진화한다. 책에서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경쟁력 있는 미디어들은 기존의 관습을 버리고 독자들의 입장에서 팔릴만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또 치밀한 고민을 통해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히 해나간다.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니라 치밀한 고민을 통한 작은 선택들. 바로 이 점이 독자들이 그 미디어를 계속 사랑하게 만드는 핵심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텍스트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어떤 콘텐츠를 골라 읽으면 좋을지 고민 중인 사람이라면 <미디어의 미디어9>가 콘텐츠 소비에 대한, 미디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함께 읽어보면 좋을 콘텐츠 

<사라진 독자를 찾아서> 이성규 저, 스리체어스 

이 책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북리뷰  https://brunch.co.kr/@knockknock/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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