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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Nov 11. 2018

우리 모두 노오-력 하는걸요

북저널리즘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을 읽고 

이번 생은 망했어요 


나        난 이번에도 망크리 탄 듯 
친구     야, 니가 뭘 망해. 내가 더 망함
나        그래도 니가 나보다 낫지 뭘. 
             계속 뭔가 하길 하잖아 
친구     응 하기만 하지. 나 혼자 꼼지락꼼지락 
나         역시 로또가 답인가?
친구      그냥 다시 태어나는 게 빠름...   


나도 친구도 열심히 공부해서 열심히 벌어 학자금과 생활비를 충당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충실한 일개미지만 이상하게 요즘에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읊조리게 되었다. 어른들은 말이 씨가 된다며 긍정적인 말을 하라고 하겠지만 슬프게도 이 부정적인 선언을 하면서 우리는 묘한 위로의 감정을 받는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으니깐! 대부분의 경우 웃으면서 이생망을 말한다. 슬픈 이야기를 할 순 있지만 서로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 아니고 노오력 


이생망 선언으로 위로를 받지만 우리는 사실 정말 열심히 산다.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꾸준히 노력해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말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졌지만. 일단 살아남아야 하니깐 일단 부딪혀보는 것이다. 


노오력
1. 노력을 강조하는 뜻으로 쓰는 말 [우리말샘]
2. 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하라는 말로 사회가 혼란해 노력 가지고는 되지 않음을 풍자한 말 [네이버 오픈사전]
3. 사실상 자신의 삶에 닥친 조건들이 ‘노오력’만으로 극복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경향신문 2016년 1월]


우리는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개천에서 태어난 용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노력만으로 글로벌 인재가 된 사람의 책을 읽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일하다가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꽤 평탄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대기업이 인재상으로만 사람을 뽑는다면 '도전'과 '열정'이란 인재상에 부합하지 않는 청년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이 있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아직 더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으니깐. 


모든 건 자책으로 이어졌죠


누군가의 노력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같이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노력'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행하고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현실이 공개되면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이 상당히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당연히)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수많은 노력들이 재조명되었고 사회의 병폐적인 문제들이 기사화되었다. 청년들은 공감했지만 기득권을 가진 기성세대들은 불편해했다. 그리고 말했다. 


흠...! 여전히 노력이 부족해!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지만.. 여전히 노력


일관성 있는 사회의 대답에 지쳐 '노오력'이란 단어가 탄생했다. 노력을 하라고 해서 노력을 했는데, 노력을 더 하라고 하니깐 '노오력'이 되었다. 처음엔 암담했고 정말 노력이 부족했는지 점검했고 한참을 자괴감에 빠져있다가 비로소 깨닫게 되어서 내뱉은 말이 바로 '노오력'인 것이다. 





노력은 분명 가치 있다. 문제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노력은 전혀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사회의 시선이다.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면 누군가의 노력은 그저 '하소연'과 '능력 없음' 혹은 '나약함'으로 전락해버린다. 그래서 스스로의 노력을 '노오력'이라 말하며 희화화하기도 한다. 



오래 노오-력 중인 지망생 이야기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은 저자가 1인칭 관점에서 영화감독 지망생들의 삶을 조명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서 '노오-력'이 '노력'으로 수용될 수 있는 범위 또한 한정적인 것 같다. 취업준비, 공무원 시험 준비, 창업 준비 등 생존과 직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그나마 "수고가 많다", "그게 그렇게 어렵다면서", "한 번에 되는 사람이 없다더라"라는 몇 마디 위로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분야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지망생들의 노력은 타인으로부터 쉽게 인정받기 어렵다. 안정적인 삶을 위한 준비과정이라기보다 어쩌면 소리 없이 잊힐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기약 없는 노력의 시간을 갖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현실은 먹고사니즘과 작품 경계를 오가는 지망생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전공 때문인지 주변에 아티스트가 많다. 우리는 아티스트라고 쓰고 스스로를 백수라고 칭한다. 지난한 작업의 과정을 거치다가 열심히 작업 공모를 해서 전시를 열면 보러 오는 사람이 드물어 우리끼리 품앗이를 하듯 오프닝을 다닌다. 축하하는 자리지만 잔을 부딪히면서 여기서 받은 지원금은 얼마고 재료비로 얼마가 오버되었으며 어느 재단 레지던시를 넣었는데 될지 안 될지 모른다는 등의 현실적인 말을 주고받는다. 사실 관객들은 완성된 작품만을 접할 뿐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과정까지 들여다 볼 기회가 거의 없다. 


작가로서의 능력을 키우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자신과의 싸움이다. 혼자 진득하게 앉아서 소재를 찾고, 구상을 하고, 글을 쓰고 지우길 반복해야 한다. 자기 자신이 가장 큰 불안 요소인 지망생들에게 어쩌면 가장 막연하고 고된 과정이다. (중략)

지망생들이 끊임없이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이유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다. 인문학적 통찰이나 창의적인 능력은 적정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망생들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최대한 많은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면서도 자신의 능력에 확신을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중략) 

지망생들이 홀로 견디는 시간에 고난의 무게를 더하는 것은 ‘세상의 법칙’이다. 하지만 길게는 10년씩 결리는 지망생 기간 내내, 쉬지 않고 무언가를 쓰고 만들 수는 없다. 자극받기라는 행위를 잉여 시간으로 여기는 시각이 대부분이지만,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인풋(input)에 들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풋은 많지만 아웃풋이 없는 불안정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지망생들은 저마다의 노력을 한다. 의무적으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무기력감에 빠져 책상에 앉기 어렵더라도 하루에 몇 줄 이상의 글을 쓰기 위한 시도를 한다. 이런 활동들이 차곡차곡 자산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세상의 법칙'을 생각하면 그 과정 자체가 견디기 힘든 시간이 된다고 말한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과정을 넘나들며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한없이 멍을 때리고 있다가도 연구자처럼 꼼꼼히 자료 조사를 해야 한다. 객관적 시각으로 치밀하게 구조를 짜야하는 순간이 있는 반면 시나리오 속 인물에 빙의되기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많은 작품을 감상하며 다음 소재를 준비하고 갑자기 들이닥치는 슬럼프도 극복해야 한다.


영화감독의 고민은 비단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취업을 위해 인적성과 직무상식을 공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장에서 겪을 인간관계를 고민하는 것처럼 영화 현장에서 얽힌 모든 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창업자가 창업 이전 관련된 회사에서 관련 업무와 인맥을 쌓거나 네트워킹을 다니며 투자자를 만나는 것처럼 영화감독도 각종 상업영화 현장을 돌면서 인맥을 쌓고 현장의 이모저모를 파악하며 경력을 쌓는다. 


지망생들이 현장으로 가는 선택은 생각보다 다면적인 전략을 내포하고 있었다. 경력을 쌓거나 돈을 벌기 위한 선택 외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만, 상업 영화 연출부에 들어가는 선택은 공통적으로 불규칙한 유동성이 극대화된 영화의 장에서 미래에 대한 확실성을 높이고 정서적 불안감을 완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어려운 일을 왜 하는 것일까? 불안정한 삶의 길이라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왜 선택하게 되는 것일까? 인터뷰를 살펴보면 '열정'이란 단어와 '의지'란 단어가 그 이유를 설명한다.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영화를 하고 있어서, 꿈을 위해서 나아가고 있어서. 그래서 저는 영화 빼면 아마 병신이 될 것 같아요, 지금은.


무언가를 너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은 곧 자신의 정체성으로 대변되기도 한다. 물론 열정에 대한 좌절을 겪은 이들도 있다. 이들은 하고자 하는 굳건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지망생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난 열정적이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한 것과, 뜨거운 열정이 있는 거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나는 하고자 하는 의지가 뚜렷한 건 맞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의지는 의지에 그쳐도 의지인 거예요. 행동으로 어떻게 얼마큼 뜨겁게 나오지 않아도. 나는 의지는 확실해요. 의지를 유지만 하고 있는 것도 저는 되게 힘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난 그 의지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상태인데. 물론 계속 흔들리지만


오늘도 지망생들은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가 자산이 될 것을 기대하며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각종 전문 자료들을 뒤지기 위해 도서관을 간다. 먹고사니즘을 고민하면서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을 찾아가며 목표한 것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어쩌면 그들의 목표점은 전진만 한다고 해서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전진과 후진 혹은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가끔은 오래 멈춰있어야만 닿을 수 있는 미지의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법칙대로라면 그들은 비효율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겠지만 분명한 건 저만치 앞섰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한참을 멈췄다가 다시 앞을 향해 가는 지난한 여정이 결국 그들을 목표한 곳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노오-력중인 우리 모두의 이야기


책은 영화감독 지망생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어렵지 않게 영화감독 지망생이 아닌 자신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목표한 무언가를 향해 노력하는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 무언가를 위해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필요하다. 그 시간과 노력의 결과가 설령 좋지 않더라도 우린 그 노력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반짝이는 전구로 상징되는 '창의'와 현실 속 창의 노동자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창의 노동의 장에서 일하고 있는 지망생들의 삶을 반짝이는 전구에 비유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창조의 순간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을 켜기까지의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을 생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한 과정 야말로 창의성의 핵심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는 영화감독 지망생뿐 아니라 취업준비생, 입시생, 창업가, 자영업자 등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암흑 속에서 하루빨리 빛을 밝히길 바라는 사회의 요구는 수많은 준비생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중요한 건 자신만의 빛을 내기 위해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채워가는 하루하루의 노력들이며 좌절을 하더라도 다시 털고 일어서는 확고한 의지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배웠고 위로를 받았다. 이번 생은 망했다며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낮추며 위로를 받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나만 이렇게 힘들구나'라는 생각에 위로를 받았다기보다 이 과정을 여전히 가치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우리 모두는 꽤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 노력의 시간들이 조금은 더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고 결과만으로 노력하는 이들에게 노오-력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는 충분히 노오-력 중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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