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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Jan 01. 2021

오만과 편견

2020 연말정산 -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

매년 마지막 날, 회고를 하리라 마음먹었지만 다른 이의 글을 편집하느라 내 글을 쓸 여력이 없어 2년 만에 회고를 하는 것을 엄숙히 변명한다.


2020년 내내 머릿속을 채운 두 가지 단어가 있었다. 바로 오만과 편견이다. 동명의 소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덕에 조금 더 명확하게 회고를 해볼 수 있겠다. 소설에서 작가는 '오만'과 '편견'을 이렇게 정의한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한다.


올해 초 이직을 했다. 손발이 척척 맞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참이었다. 물증은 없지만 누군가 나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신규 입사자에게 "딱 거기까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이란 편견이 씌워지면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편견을 가진 사람은 업무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딱 거기까지인 사람에게 에너지를 쓸 시간이 없을 테니까.


잘 모르는 상태에서 업무 실적을 내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 보수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대하면 모두가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소극적 자세를 취하기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피해망상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 난 정말 많은 동료들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깐. 내가 오히려 그들에게 편견을 가졌을 수도 있겠다.


적응의 과정에서 (어쩌면 혼자) 벌인 미묘한 신경전 덕에 '편견'이 가진 강력한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편견을 갖는 것은 (특히 직장에서) 99% 나에게 손해가 될 수 있다. 쎄함은 과학이라는 말을 믿는 편이지만, 쎄함과 달리 구체적 이미지를 그려 버리는 '편견'은 갖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망가뜨린다. 


꽤 오래 '오만'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그간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 다소 공격적이기도 하고, 다소 침울하기도 한 그런 이야기들을 혼자 삼킬 수밖에 없었던 건 어떤 두려움 때문이었다. 시시각각 내 감정과 생각이 변하는 시점에 확신을 가진 글을 뱉어 내는 것이 두려웠다.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아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p.31)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오만'에 대해 정의한 문장을 곱씹어 보았다. 소설에서 돈 많고 잘생겼긴 남주, 다아시는 특유의 오만함 때문에 지적이고 당당하며 매력적인 엘리자베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한편, 다아시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엘리자베스는 꽤 오래 다아시를 사랑할 수 없다.


다아시가 자신의 오만을 깨끗하게 인정했을 때,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 대한 편견을 깔끔하게 지워냈을 때 두 사람의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올해의 단어 '오만'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전에서는 오만함을 잘난 체하고 건방지다고 정의한다. 올해 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보다 '내 마음이 더 중요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훨씬 많이 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좀처럼 들리지 않았고 한때 가까웠던 이와 멀어졌다. 나의 오만함에 둔감해진 반면 타인의 오만함은 쉽게 보였다. 거리가 생겼고 짙은 편견이 안개처럼 쌓여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어쩌면 세상의 오만과 편견은 내가 다 가졌던 2020년이었다. 일기장에 이런 감정을 느꼈던 구체적인 사건들을 기록하겠지만, 추상적이나마 회고글을 적는 이유는 하나다. 깨끗하게 나의 오만과 편견을 인정하기 위해. 


회고는 구체적일수록 보는 재미도 있고, 기록하는 재미도 있다. 올해의 영화, 올해의 책, 올해의 음악, 올해의 음식, 올해의 사건과 같이 나의 1년을 돌아보는 일은 꽤 즐거운 일이다.


2020년을 장악해버린 코로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여력이 된다면 이 또한 기록해야겠지. 하지만 추상적인 회고글(어쩌면 독자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는)을 맺으며 벌써 올해가 돼버린 2021년의 목표를 정할 수 있었다.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고, 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만과 편견의 힘을 깨달았으니 이로 인해 더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는 1년을 보내야지. 


*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2021년이 되시길 바랍니다. 추상적이지만 진심이 담긴 회고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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