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쓰러 갈 때에는 디젤을 입자
십만 프랑은 우리 돈 일억 조금 넘는다. 요즘 시대에 수도권에서 괜찮은 아파트 한 채 사기도 어렵다. 어린 왕자가 쓰인 시대를 감안해 예를 증액해보자. 십억 짜리 집. 근데 의외로 그리 멋진 집일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십억으로 살 수 있는 집이 천차만별인지라. 그럼, 이렇게 말해 볼까?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봤어요!”
그러면 어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굉장하고 굉장한 집이겠구나! 사실 이렇게 말할 어린이들도 꽤 많을성 싶다.
생전 타워팰리스 주차장에도 들어가 보지 못 할 서민들은 그곳이 진짜로 멋진 집인지, 실제로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모른다. 그럼에도 주저 없이 감탄할 수 있는 건 타워팰리스가 가진 이미지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와 배타적 공동체 문화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많은 논란을 불러왔음에도, 되려 그런 부정적 이미지가 부자들이 사는 곳(대체로 부는 성공의 지표로 통한다)이란 동경을 더 키우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타워팰리스는 명실공히 최고급, 초호화 주거공간의 대명사로 자리 매김했다.
실체와 이미지를 링 위에 올리면 아마 이미지가 1라운드 KO승을 거두리라 본다. 이미지의 파괴력은 상당하다. 사람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그려보는 데 많은 감정을 소모한다. 주로 걱정이나 기대겠다. 제품 구매에도 이런 심리가 작용한다. 택배 기다리는 맘이 애달픈 건 제품이 가져다 줄 모종의 변화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복잡 다양한 기능의 IT제품을 구매해놓고 막상 사용하는 기능은 몇 개 안 되어도 좋다. 기술은 의외로 구매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다. 만일, 이미지 좋은 브랜드 제품이 성능면에서 조금 뒤처지더라도 사람들은 그 브랜드를 옹호하면서까지 구매 정당성을 부여한다. 기술의 집약체인 IT 계열 제품에서도 이런 현상은 도드라진다. 스티브 잡스 사후 혁신이 사라졌느니, 퇴보니, 말 많은 아이폰이지만 위기설을 비웃듯 새로운 넘버가 나올 때마다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아이폰보다 월등한 하드웨어 스펙을 지닌 기기는 많지만 아이폰의 감성을 넘어서는 브랜드는 없기 때문이다. 운영정책이 폐쇄적이라는 비판은 별 소용이 없다. 많이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아이폰을 사용한다. 아이폰이 구축한 시스템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아이폰의 진짜 혁신은 바로 여기에 있다. 스마트 폰이라는 대 카테고리를 부수어버린, 아이폰 VS 스마트 폰 구도를 만들어 낸 브랜드 아우라.
다른 스마트 폰 브랜드가 램이니 카메라 성능 같은 것에 집중할 때, 최적화를 무기로 UI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겠다. UX 개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애플만의 소프트웨어와 애플 제품 간 놀라운 연동을 보여주는 생산성은 아이폰으로 애플을 처음 접한 사람까지도 어느새 맥북을 욕심내게 만든다. 시작은 아이폰이지만 그 끝은 애플의 모든 것일지니! 충성도 높은 애플 왕국의 주민들은 새 제품 구매를 위해 며칠 밤새워 줄을 설 정도다. 겉으로 보았을 때 보다 기기를 실행해 내부 인터페이스로 들어갔을 때 더 멋진 제품. 해외 명품 자동차 브랜드들이 내부 디자인과 소소한 편의 기능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마니아를 가진 국내 브랜드가 별로 없는 건 겉만 번지르르하기 때문.
기술은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하기 위해 발전한다. 오직 경쟁만을 위한 기술은 삶에 녹아들기 어렵다. 막상 별 거 없게 느껴져야 좋은 기술이다. 아이폰은 심플을 중요시 여긴다.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어렵지않게 사용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연령별로 실제 사용 시 어떤 부분을 중요시 여기고 무슨 생각을 바탕으로 움직이는지 이해할 때, 진정한 사용자 중심 인터페이스를 꾸릴 수 있다. 버스비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어떤 정치인처럼 일해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제품으로 외면받기 십상이다. 직접 버스도 타 보고, 승객들에게 이것저것 여쭈어보고, 기사 입장에서도 운행을 시뮬레이션해 보아야 현실과 가까운 작품이 탄생한다.
사람들은 이성보다 감성에 크게 휘둘리고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이루는 감성 공감대를 문화라 부르고, 각 연령과 계층마다 고유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최신 성능의 스마트 폰을 구매한 소비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은 실상 페이스북이지 않던가.
어떤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고 적극적 반응을 바란다면 주요 타깃층의 문화를 분석해야한다. 타깃의 욕구를 관철하고 그들 사이 화두가 무언지 파악해야 한다. 이를 통해 타깃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면 우리 (혹은 당신들의) 제품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거다. 3천만 화소의 카메라 성능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3천만이 감동할 사진 한 장을 제시하듯. 저조도에서 잘 찍힌다는 장점을 기술 기반으로 설명하는 건 별 소용이 없다. 어둠 속에도 빛이 있다는 주제로 멋진글을 한 편 쓰거나 기획 영상을 제작하는 게 훨씬 낫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고, 살아온 과거에 대한 위로와 칭찬을 건넬 줄 알아야 한다. 주의할 것은 마케팅 목적보다 메시지 그 자체에 집중하는 거다. 생색내는 건 좋은 접근법이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브랜드를 지워냈을 때 브랜드를 기억한다. 타깃의 문화 속에 녹아들면 서서히 브랜드에 대한 감정도 좋아진다. 울거나 웃거나 슬프거나 행복하거나 아프거나 위안이거나, 감정을 통해 형성된 동질감. 이런 과정을 통해 타깃 사이에서 ‘우리의 것’이란 이미지가 견고해진다. 이보다 더 좋은 포지션은 없다. 20대 청춘의 반항심, 30대 여성의 차분함, 40대 남성의 자신감, 이외에도 수 없는 각 연령대의 주요 속성들이 있을 거고 그 중 어느 하나에만 국한되어도 충분하다.
디젤은 도전적인 이미지를 지닌 브랜드다. 디젤 광고 속 모델들은 늘 ‘똘기’ 넘치는 행동들을 보여준다. 단지, 이슈 몰이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위트를 잊지 않고 금기에 도전하는 모습들을 보며 사람들은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 젊은 층은 더 격하게 반응한다.
디젤은 아예 대놓고 ‘바보처럼 행동하라’고 말한다. 청춘 내면에 이글이글한 반항심리를 이해하고 이를 스타일리시하게 풀어냈다. 나아가 청춘의 일상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 예상도를 제시한다. 여자 친구 옆에서 고장 난 우주선을 밀며 난감해하는 남자의 모습은 재미와 공감을 동시에 잡은 작품이다. 사회에서 하지 말라는 일들에 대해 디젤은 ‘뭐 어때?’ 하며 당당히 멋대로 굴었고, 청춘들은 디젤을 입으며 거침없이 자기주장을 내보인다.
새로 나온 제품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디젤 정신에 동화된 소비자는 그게 디젤이란 이유로 망설임 없이 구매한다. 디젤을 입고서 디젤의 메시지를 실천한다.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도발로 따지자면 시슬리도 만만치 않다. 선정적이고 일탈적인 광고들은 여성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대변한다. 여성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억압된 여성성에 쾌감을 선사했다.
뉴에라는 브랜드 이름임에도 대명사처럼 쓰인다. 뉴에라라고 하면 알아서 스냅백으로 알아듣는다. 한국에서 뉴에라가 각광받기 시작한 건 TV에 나오는 힙합 스타들이 애용하면서부터다. 중간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뉴에라는 젊은 층의 선호 문화 속에서 성장했고 스트릿 패션의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다.
가성비가 중요한 시대지만 다이소에서 손목시계를 사거나 옷을 사 입는 사람은 별로없다. 개인의 취향이나 정체성을 드러낼만한 제품군으로 가면 가성비보다 이미지가 훨씬 중요해진다. 만일 내가 청바지를 새로 구입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리바이스로 향할 것이다. 리바이스는 내가 지닌 활동성과 에너지를 드러낼만한 브랜드니까. 가격이 조금 더 싸고 기능이 비슷한 다른 브랜드를 제시해도 별로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경제적인 이득은 볼지 몰라도 리바이스와 나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가 있다. 오래 전, 벽을 부수고 달리던 리바이스 광고를 잊을 수가 없다. 그 광고를 보며 한계에 대한 도전을 용기 내었던 나이기에, 리바이스를 입으면 늘 자신감이 샘솟는다. 누구에게나 그런 브랜드가 있을 거다. 대체로 가성비를 따르는 삶 속에서도 이것만큼은 양보 못하는 브랜드.
사람들은 제품을 사용할 것에 대한 기대를 품고 구매한다. 사용 전에는 오직 마케팅 콘텐츠로만 제품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내가 처음 리바이스에 매료된 이유, 농구화는 아직까지 곧 죽어도 에어조던이어야 하는 건 처음 접한 광고들이 무지막지 멋졌기 때문이었다. 브랜드가 던진 메시지 한 줄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상대적 인지도가 낮은 브랜드들이 소비자에게 선택받으려면, 다양한 경로로 접하게 될 그 브랜드 이미지가 썩 고급스러워야만 한다. 제품은 저렴해도 마케팅은 저렴해선 안되는 이유다. 가성비를 전면에 내세운 브랜드일지언정 그것을 넘어서는 가치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땡 처리 전단지로 얻을 수 있는 건 행사 며칠간의 단기 수익뿐. 그럴듯한 비주얼과 제대로 된 철학이 담긴 메시지가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
제품은 브랜드를 가지고, 브랜드는이미지를 가져야 한다. 타깃 소비자를 대변하는 이미지. 만일, 주 타깃층의 정신을 대변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된다면 그다음부터는 소비자가 알아서 브랜드를 찾게 된다.
제품을 팔면서 제품 이야기를 자주 하지 않아도 좋다. 무조건 로고 많이 때려박어, 식의 고리타분한 접근으로는 브랜드 가치를 형성하기 어렵다. 고객에게 제품을 이해시키려 하기 전에,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야 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 좁혀서 타깃층의 삶에 대한 이야기. 타깃 또한 연령별로 나누는 단순 분류를 넘어 문화와 취향으로 해석하는 것이 이젠 더 적합해진 시대다.
다들 어떻게 밥은 잘들 먹고다니시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무얼 향해 달려가고 계신지? 요즘엔 어디 관심이 많으신지? 힘들지는 않은지? 뭐 더 재밌는 일 없는지? 잠은 잘 주무셨는지? 당신들의 불면증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우리가 조금이라도 들어주고 풀어줄 순 없는지?
그렇게 브랜드에 국한되지 않고, 동시대를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대화처럼. 이런 노력들이 브랜드가 나아갈 길을 잡아줄 테다. 소비자를 이해하는 척이 아니라 진심 어린 소통으로 피부에 와 닿는 이미지를 가져야만 한다. 브랜드 자체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