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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비 Dec 01. 2017

필연적으로 행복해지다

세 잎 클로버 여덟 개로 네 잎 여섯 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비슷한 나날 몇 패턴이 로테이션 돌 듯 별 일 없이 산다. 내 삶이 특별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무언가 인생을 송두리 채 뒤바꿀 한방에 대한 기대는 놓은 지 오래다. 밋밋해도 부침없는 일상이 지속될 수만 있다면 딱히 불만은 없다.


그럼에도, 그 와중에.


종종 설레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기댈 곳 없는 서민의 기대 없는 일상이지만 가끔 위로처럼 생각지 못한 행운을 던져준다. 아쉽게도 로또 1등처럼 무지막지한 건 아니다. 그런 건 애초부터 내 운명에 세팅되어 있지 않다. 신이 프로그래머라면 나라는 개체에 딱, ‘기분 좋은 설렘’ 정도의 설정값을 한계치로 세팅한 게 분명하다. 신은 프로그래밍에 별로 재능이 없어 보인다. 나는 자주 오류가 발생하니까.

 

그렇지만 설렘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설렘은 짧은 순간 맘을 다 사로잡아 온 몸에 활력을 준다. 무언가에 대한 기대로부터 오는 것이어서 대상의 실체와 마주하고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어느새 희미해지겠지만, 두근거림이 있어 소중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는 편안해진 모든 대상은 첨에 내 심장을 뛰게 한 설렘이었다.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알려주었듯 길들여진다는 건 설렘이 실체로 다가오며 마침내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설렘은 다양한 형태로 찾아온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특별한 상황, 특정한 사물. 자주 찾아오지 않는 행운도 이에 속한다. 행운은 사소한 것이라도 우리를 기쁘게 만든다. 생각지도 못한 덤같은 것이라 더욱. 클로버 꽃말처럼 지천의 세 잎 행복 속 네 잎 행운은 뜸하니까. 그런데 지난 봄, 세살 배기 아들 녀석과 나들이 간 동네 뒷산 둔덕에서 나는 행운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깨닫게 되었다.

 

봄 기운에 깨어나는 연두 새싹들 사이 옹기종기 끼어든 클로버 무리가 반가웠다. 아이에게 네잎을 선물하고 싶어 꼼꼼히 찾았지만 모여 핀 범위가 좁아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어 세 잎 몇 개 아이 손에 쥐어줬더니 베실 베실 웃으며 잎을 하나씩 떼기 시작했다. 뗀 잎들 바닥에 늘어놓고 나름의 모양을 만들며 노는데 거기 네 잎 클로버가 아주 흔하더라. 잎이 몇개든 제 맘대로 주무르며 한없이 까르르.  


행운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 것이라 믿었는데 생각해보니 별 사소한 것이 다 행운일 수 있겠더라. 로또 5등은 열번도 당첨됐고 한정 수량만 풀린 가방을 손에 넣은 적도 있다. 다 먹어가는 김치찌개 바닥에 하나 남은 고기를 발견했을 때에는 속으로 쾌재를 외칠 만큼 짜릿했다. 이런 별것 아닌 일들이 실은 행운이었음을 모르고 횡재 정도 수준은 되어야 행운으로 인정해왔던 것 같다. 매주 재미삼아 로또를 사고 예약 구매 주문 링크를 집요하게 클릭해서 한정판을 득하고 다들 손 놓은 국물 밑바닥을 젓가락으로 뒤적이듯,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여 쟁취한 행운들. 네 잎 클로버가 없다면 세 잎 클로버 여덟 개로 네 잎 여섯 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된 것이다.


자기 의지로 하루 하나의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면 평생을 행운아로 살게 되는 셈. 매일의 걸음 속에 작은 행운들이 함께 할 수 있다. 모든 걸음은 스스로 딛는 것이지 않던가. 필사적으로 행운을 만들어야지. 필연적으로 행복해질 수 밖에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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