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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옹즈 Mar 07. 2023

18살, 혈액암이라고요?

림프종

18살, 림프종 항암치료를 받았다.

나는, 지루한 나날의 끝에 벌어진 흥미진진한 사건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옆으로 돌아누워 자는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소아천식이 있어 기관지가 좋지 않았던 나는 폐렴이라도 걸린 건가?라는 생각에, 내과에 방문하여 증상을 설명하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내과의사 선생님께선 엑스레이를 보시더니 "큰 병원에 한 번 가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사진상으론, 무언가 커다란 것이 불룩 튀어나와 내 폐를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18살의 나는 암이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매일 아버지의 차로 등하교를 할 때마다 오늘의 기름값과 공부를 할 때는 배수의 진을 쳐야 한다는 점에 대해 일장연설을 듣는 게 지긋지긋하고 인생이란 것이 재미가 없었다.


어떻게 공부해야 되는지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고, 어떤 진로를 잡아야 할지도 몰랐다. 수학은 어려워지기만 했고, 입시영어는 어떤 식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분명, 나에게 열심히 공부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고,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결국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 어머니, 아버지는 그토록 강조하셨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제대로 입시 공부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전혀 방법을 모르셨다. 어딘가에서 귓동냥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를 말씀해주시기도 했지만,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노하우가 아니라 그런지 현실과 괴리가 있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루종일 앉아서 공부를 했지만, 도통 공부가 제대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불안했다. 집중력도 떨어져서 수업시간에 눈만 꿈뻑꿈뻑 뜨고 있었다. 중학생까지는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았던 성적은, 고등학생이 되어 나날이 떨어졌다. 어릴 적 반짝반짝했던 나는 없어지고, 나와 같이 등수를 겨루던 친구들은 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만 끝없는 블랙홀에 갇혀 제자리를 빙빙 돌다 뒤로 퇴보하는 느낌이었다.


바로 이때, 림프종이라는 혈액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우선, 대학병원으로 가서 엑스레이 검사도 했고, CT도 찍었고,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하나, 검사를 위해 떼어낸 조직이 너무 작아 양성인지 악성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수술실에 들어가서 종양을 보고 악성이면 바로 수술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씩씩하게 검사도 받았고 혼자 입원해 있었지만, 왠지 기분이 묘했다. 드라마에서 보면 수술실에 들어가 못 나오는 사람들이 있던데,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병원침대에 실려 마취실로 들어갔다. 누워있는데, 목에서 가래가 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취가 시작되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주변의 소리는 생생히 들렸다. 뭘 가져오라는 소리를 하고,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나는 마치 잠수를 해서 숨을 못 쉬고 있을 때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죽기 싫었다. 재미있는 인생은 아니었지만, 18년 동안 공부만 하다 죽기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살고 싶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주마등은 아니었지만, 잠시 내 인생을 되돌아봤다. 끝없이 공부만 했던 나날들이었다.


얼마 후, 숨이 쉬어졌다. 마취사고가 난 것이다. 기관지확장제를 쓰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폐가 쪼그라들어서 몇 분 간 숨을 쉬지 못했다고 했다. 온갖 비싼 약을 다 투여해서 살아났다고 들었다. 그리고 난, 중환자실에 하루 동안 입원해있어야 했다.


중환자실은 죽음의 공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일반병실과 다르게, 제대로 의식이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나만이 유일하게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주변의 환자들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나도 산소호흡기와 소변줄 등을 하고 있었다. 호흡과 의식이 멀쩡한 내가 그런 기계들을 달고 있으니 매우 불편했다.


이때, 어렸던 나는 배신감이 들었다. 분명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들이고, 의사라면 엄청 공부를 잘한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나는 의료사고를 당했고, 내게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저, 특이체질고만 했다. 결국, 친척 지인을 통해 병원에 연락하여 의료진들에게 사과를 받아냈다. 고2, 공부가 인생에 전부인 줄 아는 나이! 거기다 당시 이과생이었던, 나는 의사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깨졌다.


이후, 항암치료를 받기로 결정이 났다. 주황색의 항암치료제는 환자에게는 구역질을 불러일으키는 냄새였다. 항암치료를 받는 주사실에 가면 그 특유의 냄새가 나는데, 나는 정말 그 냄새가 싫었다. 정말, 특이체질인 건지, 점쟁이의 말대로 운이 나빴던 건지 나는 진짜 암환자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항암치료의 부작용이 거의 없었다. TV에서 나오는 그 깡마르고 창백한 환자가 아니었다. 식욕이 당기는 건 뭐든 먹어야 된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라면도 먹었고, 아침만 먹으면 누워서 잠을 자는 통에 살만 오동통하게 올랐다.


18살이라 정말 철이 없는 생각이었지만, 당시에 병원에 들어가 같이 항암제 주사를 맞고 있으면서, 부작용이 심해 밥도 잘 못 먹고 뼈만 남은 다른 환자가 나는 내심 부러웠다. 사실, 나는 항암치료를 받는다기에, 살이 빠지고 홀쭉해진 내 모습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한 달 정도만 약간 속이 메스꺼운 후유증이 있었고, 그저 털이란 털은 홀랑 다 빠져버리는 약의 부작용 외엔 딱히 특이점이 없었다. 물론, 건강한 일반인처럼 운동을 할 순 없었다. 그래도 항암제라고 몸이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림프종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19살에 고2로 다시 복학하게 되었다. 마치, 하늘이 다시 한번 공부의 기회를 주신 것 같았다. 이번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제대로 입시준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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