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았던 대학신입생활
18살에 항암치료를 하며 1년을 휴학했던 나는 머리가 둔화되어 있었다.
마치, 남자들이 복학하면 수업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말하듯이,
나 또한 19살에 고2, 20살에 고3이 되어 수업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때 강박증 증상도 심해졌다.
오답노트를 만들기 위해 산더미처럼 문제집을 쌓아놓고 오려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 모습이 정말 우스웠다.
남들 공부할 시간, 종이를 오려 붙이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으니....
겉으로는 무언가 열정적인 느낌이었지만, 사실상 공부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왜 그런 행동들을 하는지를....
그저 통제되지 않는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나에 대한 기대가 컸다.
좋은 학군에 명문이라 일컬어지는 중학교에서 나름 공부를 하는 축에 속했었다.
하지만, 중3 이후 어떻게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무렵 아버지는 현대자동차에서 연구원으로 일하시다 조기에 명에퇴직을 하셨다.
그리고 서울에 일자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년이 넘게 이어온 타지 생활이 힘들다며 취직을 포기하셨다.
내 인생에 답이 보이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가장 지원을 많이 받아야 하는 시기였다.
나는 천재도 아니었고, 내가 하는 공부와 그 방법에 확신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매일 등교하면서 아버지에게 듣는 잔소리로 압박감과 불안감이 심해졌고,
1교시 나는 종종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었다.
암으로 휴학 후 복학하여 머리는 정지된 상태였고,
급우들은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동아리 학년 간 위계질서가 심한 학교라,
선생님에겐 인사를 하지 않아도 동아리에 속한 고2가 고3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다소 해괴한 문화를 가진 곳이었다.
'이번에 고2학년생들이 가장 똑똑하다. 고3언니들처럼 되면 안 된다,
현재 고3언니들은 유례없이 성적이 부진한 학년이다.'
고등학교 선생님들 간에도 이런 학년 간의 비교가 일상인 곳에서,
고3도 내 친구들이었고, 현재는 고2에 속해 있던 나는 복학 후 정말 심적으로도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성적은 따라가지 않고, 내가 어떤 과목을 좋아하는지, 어떤 과를 가고,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저 눈만 높아져가고 있었다.
성적은 점점 떨어졌고, 고등학교를 4년이나 다니면서 나는 지쳐갔다.
이제 공부로는 답도 없는 생활을 그만 정리하고 싶었다.
하루종일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도 책을 들여다보고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지만....
수학, 화학, 물리는 들어도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선행학습에서 한참 뒤져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수학은 벽에 막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공부에 있어서 내 한계가 느껴졌다.
나는 공부로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너무 명백하게 느껴졌다.
이젠 일찍 취직을 하여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전문대에 진학할까 하는 생각을 했으나,
대기업에 다니면서 학벌 컴플렉스가 생기신 아버지 때문에 전문대 진학은 좌절되었고
성적에 맞춰서 고향 근처의 지방 국립대에 진학을 했다.
대학진학이 인생의 목표이자 전부였던 삶. 나는 대학입시에 실패했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재수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암으로 휴학했다 이미 복학을 한 탓에 재수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재수를 한다고 해서 성적이 더 오를 것 같지도 않았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패배의식에 가득 차있었다. 세상이 온통 회색빛으로 어두침침하게 보였다.
마음 한 켠이 언제나 무거웠다. 마치 돌덩이가 내 마음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취직도 어렵다는데, 대학에 와서 내가 취직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저, 불안했고 진학한 성적에 맞춰 진학한 공대 공부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앞날이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