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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옹즈 Mar 19. 2023

27살, 관세직 공무원 시험 3년, 실패했습니다.

공시폐인이 될 순 없다!

친척 중에 대기업을 다니다 그만두고 사시 1차에 합격한 후 번번이 낙방하여,

결국 고시폐인이 된 분이 계셨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난 어릴 때 그분의 모습이 강렬하게 뇌리에 박혔다.

포기해야 할 땐, 뒤돌아보지 말고 깔끔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그리고 공무원 공부를 하다 공시낭인이 된 사람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과 동기가 2년 만에 관세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전공자격증도 2개나 취득하였고, 토익도 845점이면 나름 고득점이니 

공무원 공부를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땐 몰랐다. 공시공부와 취업공부는 별개라는 것을....

그리고 공무원공부를 하게 되면 취업에 어떤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학부 선배가 만약에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그저 "어떻게든 잘되겠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죠 뭐.. 배수진을 치면 되지 않을까요?"

이런 대답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세상을 모르는 순진한 생각들이었다.

 

공무원 수험생활은 실패했다. 내내 내 속에서 꿈틀대던 강박증이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불면증이 생겼고, 정신과를 다니면서 강박증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언제나 초조하고 불안했고 제자리에 오래 앉아있기 힘들 때도 있었다.

극한 상황으로 몰리니 증상이 점점 심해졌던 것이다.

자주 쓰는 형광펜 하나도 똑같은 걸로 100개 이상은 사야 안심이 되었다.


공무원 공부의 범위는 방대했다. 한 과목에 거의 80~100강씩 인터넷 강의를 들어야 했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듣고 언제 시험을 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첫 해엔 부지런히 강의를 들었고 복습도 해나갔다.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공부하는 과목이 늘어갈수록 머릿속의 기억들은 희미해졌다.


공부가 오래 지속되면 될수록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공부법 책을 보거나 문제집을 사거나 각종 필기구를 사는 시간이 더 늘어갔다.

나도 내가 무슨 행동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멈추기 힘들었다.

마스킹 테이프를 50개 이상 사 모으기도 했다.

자괴감이 들었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길을 걷다 상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도저히 성적이 더 오를 것 같지 않았고 고통스러운 나날만이 지속되었다.

나이는 27살... 

고등학교 때 암으로 1년 휴학을 했고 대학을 다니면서 자격증과 토익에 집중하기 위해 한 학기를 휴학했다.

이 이상 넘어가면 취업이 어렵고 정말 공시폐인이 될 것 같았다.


분명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공부하면 된다고 하였지만, 공부가 제대로 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오질 않았고 자꾸 불안하기만 했다.

공무원 공부는 법령이 바뀌기 때문에 매년 책을 새로 사야 했다.

책값에 문제집 값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지는 시험은 1년에 1번밖에 없었기에 안 그래도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경쟁률인 시험인 시험에서 더욱 확률이 낮았다.

'운전면허를 따고, 경찰공무원 시험공부를 할까? 7급을 공부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7급책은 몇 권 사서 훑어본 적도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공시공부에 중독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위기감이 들었고 머릿속에서 빨간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공무원인 어머니는 계속 공부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합격하지 않겠냐고 공부를 권하셨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공부가 이젠 지긋지긋했다. 합격수기를 읽는 것도 지쳤다. 소수만 합격하는 세상이었고 모든 것이 희망고문처럼 느껴졌다. 앞으로의 취업도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고, 동굴 속으로 숨어 들어가 버리고 싶었다.


3년 정도 공부한 관세직 공무원 시험을 그만두기로 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부는 할 만큼 해보았다. 전공 공부도, 자격증도, 토익도 그리고 공무원 시험공부도....

나는 빼어난 성과를 낼 수 없었고, 운이 좋아 잘 풀리지도 않았다. 

더 이상은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단호히 발걸음을 돌렸다. 

기본서와 문제집들을 모두 버렸고,  공부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제 독서실에서 나와 세상밖으로 발을 내딛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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