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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옹즈 Apr 01. 2023

37살, 나를 찾아주세요!

나를 잃어버리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간호조무사 자격증도 공부 중이다. 

(전문의의 소견이 있으면 자격증 취득에 문제가 없다.)

어머니는 내가 요양보호사 실습에 다녀온 것에 대해 말씀을 드리니, 

파출부가 하는 일만 시키더냐? 고 말하셨다. 마음이 상했다.

무직인 상태의 나는 자존감이 한 껏 낮아져 있었고, 나는 쉽게 상처를 입었다. 


요양보호사 CBT시험은 열심히 준비해서 2개를 틀렸다. 최선을 다했지만 만점은 받지 못했다.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자격증이었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남편이 뭘 그렇게까지 공부하냐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 말 그대로 허들이 낮은 자격증이기 때문이다.

 

간호조무사 시험은 20대~50대까지 준비하는 연령층이 다양했고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에게도 취업의 기회가 주어지는 나름 요긴한 자격증이었다. 하지만, 역시 허들이 낮았다. 나는 이번에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들인 공과 앞으로 들일 공에 비해선 돌아올 보상이 적기 때문이다.


10년 전, 대졸자 전형으로 간호대에 합격을 하였으나 27살의 나이는 많다고 느껴졌다. 첫 직장을 퇴사하고 취업이 안될까 불안하여 보험 삼아 대학에 지원을 했던 것이다. 대학졸업과 공무원 시험준비 3년까지 공부만 내리 했었으니 지치기도 하여, 간호대를 포기하고 이직을 선택하였다.


36살, 6년 간의 장사를 접고 나서 불안한 마음이 일어 또 간호대에 수시원서를 내었다. 하지만 면접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시, 치열하게 스트레스받으며 경쟁하고 4년을 공부할 걸 생각하니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졸업하면 나이가 41살이었다. 당연히 좋은 병원은 갈 수 없는 나이이거니와, 나이 먹고 다시 들어간 간호대에서 특유의 서열문화에 스무 살이나 어린애들에게 눈칫밥 먹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동생이 간호사였기에 환상은 없었다. 남편도 한참 어린애들에게 눈칫밥 먹는 내 꼴은 볼 수 없다며 말렸다. 그리고 남편은 나에게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딸 것을 추천했다.   

 

간호조무사는 학원을 통해 비교적 빨리 취득할 수 있었고 취업률도 높은 자격증이었다. 경력이 단절된 나이가 있는 여성들은 사실상 구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별로 없었다. 개인의원에서 일하면 업무의 강도도 적을 것이고 주부들이 재취업을 많이 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는 나에게 적합한 자격증이라고 생각이 되었지만, 주위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어머니께서 간호대 입학을 강하게 원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나는 휘둘렸다. 


가족들의 시점에선 내가 공부한 이력을 봤을 땐, 간호조무사를 준비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간호사인 동생도 간호대를 추천했다. 하지만, 나의 세월은 이미 지나갔다. 게다가 6년간 치열하게 장사했기에 심신도 지쳐있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면, 아주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다. 애매했다. 전공과 진로를 잘못 선택하기도 했다. 단지, 노력과 운이 함께 따라주어 집을 한 채 살 수 있었던 것이 지금까지 내 인생에 눈에 보이는 성과였다.

 

어머니께서 계속 남의 시선을 의식하시니 나도 덩달아 의식이 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중심이 나여야 했으나 나는 나를 잃었다. 자꾸 남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가 머릿속에 맴돌면서 우울함이 찾아왔다. 인생이 실패한 것만 같았다. 


사실 난 지금 그리 어렵지 않은 난이도의 시험을 준비하니 마음의 부담이 적었다. 6시간 수업을 듣고, 집에 와서 깐쵸, 토리, 구름이도 챙겨주며 집안일도 하고 복습도 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도 보고 스탭퍼를 밟으며 운동도 하니 좋았다. 이제야 숨이 좀 쉬어지는 느낌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삶을 누리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으려면 공부를 더 치열하게 해야 했다. 욕심이 생기니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고 강박증의 증상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만점은 받기도 어려울뿐더러 합격이 목적인 자격증에 불필요한 노력을 들이려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정말 주위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들러의 '미움받을 용기'를 그렇게 읽고 좋아했어도, 여전히 사람들의 인정과 애정을 갈망하고 있었다.  나는 나를 읽었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 후,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기로 했다. 하루에 1시간만이라도 산책을 하는 식으로 몸을 움직이면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앞으로 나의 우울에 맞서기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할 예정이다. 내 인생의 중심은 '나'여야 했고, 나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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