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카피의 콘텐츠 속 평생교육 4화
독서의 계절을 맞이해 처음으로 시도한 일이 있다. 한 달에 정해진 금액을 내면 책을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는 독서 플랫폼에 가입한 것.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 종이 책만큼은 절대 대체될 수 없다고 믿어왔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야무지게 사용 중이다. 이제 지하철에 몸을 싣는 즉시 앱을 켜는 게 버릇이 되었다. 비가 오는 날엔 오디오북을 듣기도 한다. 같은 문장인데도 눈으로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한동안 보지 못한 책들을 출퇴근길에 편히 만나게 되었고, 어느 카피라이터의 신간을 훑어보다가 기억 속 저 너머에 있던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만다꼬 다들 그래 뛰가야 됩니꺼? 힘을 뺀 것들이 이렇게나 완벽한데 말입니다.’
서점에서 그 책을 처음 마주한 날, 나는 책 뒷면에 적혀 있는 문구만 보고 곧바로 계산대로 향했다. 책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라는 게 있다고 믿는 편이라 무작정 달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잠시 숨을 고르는 것도 필요하다고 내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때의 나는 자주 악몽에 시달렸다.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겨우 잠이 들면 꿈속에서조차 아이디어를 냈다. 부담을 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 같았다.
그때 고이 집으로 데려온 책이 바로 <힘 빼기의 기술>이었다. 힘을 주고 살기에도 부족한 세상인데 힘을 빼라니. 온몸에 힘을 주는 버릇 탓에 주기적으로 도수 치료를 받아야 했던 내가 제목을 이해하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힘을 뺄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날로 나는 책 속의 한 문단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
나이가 더 들어서 독립하고 나니 ‘만다꼬(*’뭐하러’, ‘뭐 한다고’, ‘뭘 하려고’ 등에 해당하는 경상도 사투리)’라는 말은 인생에 있어 중요한 질문이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또는 사는 게 힘에 부칠 때면 ‘만다꼬?’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왜 이것을 하는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가? 나는 이것을 진정 원하나? 아니면 다들 그렇게 하니까 떠밀려서 하는 건가? 내 안에 내재된 ‘만다꼬?’에 대한 대답을 찾으면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짚어보게 되는 거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부분에 쏟고 있던 힘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 김하나 <힘 빼기의 기술> 중에서
누군가 내게 말해준 적이 있다. 닮고 싶은 말을 자꾸 곱씹다 보면 어느 순간 진짜 내 것이 되어 있을 거라고. 매일 저 문단을 지니고 있다 보니 ‘내가 무리하게 힘을 주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왜 이걸 하고 있지? 모든 걸 쏟아부을 만큼 나는 이것을 원하고 있나? 그러면 안개처럼 떠올랐던 수많은 생각들이 천천히 가라앉으며 딱 한 가지 결정만이 남게 된다. 힘을 주고 계속 달릴 것인지, 아니면 힘을 빼고 과감히 내려놓을 것인지.
그것만으로도 나는 불필요한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일을 줄일 수 있었다. 그 에너지를 잘 모아두었다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에 쏟아부을 줄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힘을 빼도 별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오히려 힘을 뺐더니 더 좋은 결과가 돌아오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일에 능숙해진 것은 아니다. 불안한 마음은 수시로 얼굴을 내민다. 전보다 삶의 요령이 생겼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을 감당할 수 없는 날도 여전히 많다. 그럴 땐 잠자코 눈을 감고, 내가 가장 버리기 어려운 말,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를 열심히 지운다. 이 말 하나 때문에 내게 꼭 필요한 일이 아님에도 꾸역꾸역 매달리는 실수를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기에.
아마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불안한 마음은 나를 부지런히 흔들어댈 것이다. 새해가 다가오는데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힘주고 달려도 모자랄 지금 하나라도 더 붙잡아야 한다고. 그럴수록 온 힘을 다해 힘을 빼보기로 한다. 전력을 다해 나아가면 원하던 목적지에 더 빨리 다다를 수 있겠지만, 힘을 빼고 유영할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오늘도 나는 열심히 힘을 빼는 법을 배우고 있다.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의 매거진 <라이프롱런>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