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카피의 콘텐츠 속 평생교육 5화
2021년 겨울, 오디션 프로그램이 또 한 번 전성기를 맞이했다. 트로트는 물론 보이그룹, 걸그룹, 밴드, 댄서에 이르기까지 카테고리도 무척 다양해진 요즘. 내가 다시 본방사수를 하기 시작한 프로그램은 ‘싱어게인’이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피로도를 느끼고 있었다. 한때는 내 일처럼 응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생기는 게 좋아 열심히 투표까지 하는 애청자였건만. 계속해서 경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에 덩달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최선을 다한 도전자가 안타깝게 탈락하는 모습을 보게 됐을 땐, 마치 내가 쓰디쓴 고배를 마신 것처럼 속이 상했다.
누구 하나 간절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저마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귀한 기회를 얻은 것일 텐데. 심사위원들의 기준에 따라 혹은 취향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데 아쉬움을 느꼈고, 이후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게 되었다. 그런데 찰나의 순간 마주한 ‘싱어게인’이 내 눈길을 끌었다. 어느 도전자의 자기소개 때문이었다.
‘나는 노란 신호등 같은 가수다’
자신을 노란 신호등에 비유한 출연자는 곧이어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문득 신호등을 바라봤는데, 빨간불과 파란불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가 없는데도 딱 3초간 빛나고 사라지는 노란불이 눈에 띄었다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빛을 내는 노란 불이 꽤 감동적이라고 느껴졌고, 그게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노란 신호등 같은 가수’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싶다던 출연자. 서글서글한 인상에 어딘가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함이 참 좋았다. 유난히 반짝이는 눈을 가진 그는 조명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순간 능숙한 손놀림으로 기타를 치기 시작했고, 심사위원이었던 이선희 씨의 입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12부작을 끝으로 시즌 1이 마무리될 때까지 나는 매일 그 가수의 무대를 빠짐없이 챙겨 봤다.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감과 탈락하면 어쩌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프로그램의 규칙상 자신의 이름 대신 ‘63호’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오는 그가 마이크를 잡고 호흡을 가다듬을 때마다 오늘도 부디 잘했으면 좋겠다고 마음 깊이 응원하곤 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가 있음에도 매번 새로운 무대를 보여주려 애쓰는 그를 볼 때마다 내 두 손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63호는 수많은 긴장감과 부담감을 이겨내며 빨간 불과 파란 불을 잊어버릴 만큼 강렬한 노란빛을 뿜어냈다. 결국 최종 무대에서 3등이라는 성적을 거두었지만, 내겐 의심의 여지없는 1등이었던 그 가수는 이후 자신의 이름을 건 앨범을 발매했다. ‘이무진’이라는 이름으로, ‘노란 신호등’이라는 데뷔곡을 들고.
가끔 내 인생에도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내 아이디어를 발표해야 할 때나 그동안 다뤄본 적 없는 주제로 글을 써야 할 때. 지금의 삶에 익숙해질 때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새로운 도전이 나의 오늘을 두드린다. 그런 날이면 노트북을 챙겨 집을 나서는 순간 63호를 처음 봤던 그 무대의, 그 첫 곡을 찾아 듣는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 비장한 표정으로 “절대 후회하지 않을 무대를 하고 내려오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나도 오늘 있을 이 도전에 후회만은 남기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의 매거진 <라이프롱런>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