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ul 14. 2023

놓아버려요, 그 인연.

이어갈 인연과 보내줄 인연


모든 인연에 꼭 최선을 다해야 할까요?

그럼 정작 좋은 인연이 나타났을 때

거기에 쏟을 에너지가 부족해지거든요. 

아니다 싶은 관계는 과감히 놓아버려도 돼요. 

진짜 인연들을 지키기 위해선

그럴 필요도 있다고 봐요.


순간 머리를 무언가로 딩- 맞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스쳐 지나간 얼굴들이 떠올랐다. 어떤 이유로 혹은 어떤 이유도 모른 채 멀어지고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던 관계들. 그 사이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던 기억들. 때때로 바보 같을 만큼 노력했던 이유를 묻는다면 세상 어딘가에 불편한 인연을 남겨두고 싶지 않아서였다. 끝이 보이는 관계일지라도 최대한 좋은 쪽으로 마무리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남는 게 있었냐고 묻는 동료 A에게 나는 정답 같은 말을 내뱉었다. 글쎄요. 막상 그렇게 물어보니 좀 허탈한데요. 해볼 만큼 해봐서 그 인연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이 없다는 거? 말하고 나니 정말 이게 맞나 싶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때마다 찾아오는 인연은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작은 역할일지라도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듯이. 설사 그게 악역처럼 느껴지더라도 부족한 나의 인내심이나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라고 여겼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 사람이 내 삶에 나타난 이유는 이거였구나' 무릎을 탁 치게 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너무도 심플한 삶을 사는 A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유난히 복잡하게 느껴지는 내 삶의 이유를 찾은 것 같았다. 기꺼이 애정을 쏟을 만한 인연들에 집중하는 삶엔 괴로움이 없었다.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계 속엔 평온함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법정스님도 이야기하신 적이 있었지.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고. 헤프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게 될 거라고. 


내게 필요한 용기는 다가가고 붙잡고 이어가는 용기만이 아니었다. 불편한 인연을, 맞지 않는 인연을, 스쳐 지나가도 될 인연을 과감히 놓아버릴 용기. 그 과정에서도 용기가 필요했음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을 이끌어내는 A와 같은 인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지거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