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Oct 20. 2024

누군가 심어둔 말

내가 배운, 다정한 말들의 출처

 


우리들 저마다에겐 고비를 넘기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누군가는 미친 듯이 달리며 땀을 빼는 걸로, 누군가는 드라마를 몰아보는 걸로, 또 누군가는 여기저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걸로 고비를 넘기곤 한다. 그 방법을 다양하게, 곳곳에 많이 만들어둘수록 인생을 살아가는 데 훨씬 유리하다. 


내 인생의 고비엔 늘 엄마의 말이 있었다. 일에 관련된 일이든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일이든 한번 나쁜 생각에 빠지면 잘 헤어 나오지 못하는 편이었다. 때때로 밤을 지새웠고, 자주 입맛을 잃었다. 남들이 효과를 봤다는 운동도 해보고, 기분 전환이 될 거라던 드라마를 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럴 때, 내게 유일하게 통한 방법은 엄마의 말 뿐이었다. 수현아. 잘 먹고 잘 자고 내일 또다시 고민하자. 내일도 모레도 있으니까 오늘은 일단 잠을 청해보자. 이 말을 수없이 반복해 주었다. 답인지 아닌지도 모를 것을 붙들고 내가 끈질긴 사투를 벌일 때마다 엄마는 그 무거운 짐을 다음 날로, 또 그다음 날로 미뤄주곤 했던 것이다. 어차피 지금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면 내일 생각해도 되잖아. 신기하게도 하루, 이틀, 한 달을 넘기고 나면 나를 괴롭히던 모든 것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는 시기가 찾아왔다. 그렇게 30년 넘는 시간을 무사히 건너올 수 있었다.


요즘 들어 걱정이 많아진 엄마는 종종 내게 묻는다. 늘 강인해 보이기만 했던 엄마가 이건 괜찮을까, 저건 괜찮을까, 쭉 괜찮을 수 있을까, 물어올 때면 마치 반사작용처럼 이렇게 답한다. 엄마, 우리에겐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잖아. 푹 자고 일어나서 같이 또 생각해 보자. 밥 잘 먹고 재밌는 순간들을 보내다 보면 그거 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돼 있을 거야. 굳이 생각하거나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입 밖으로 이런 말들이 흘러나올 때면, 과거에 누군가 내 안에 다정히 심어준 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 홀로 씩씩하게 살아온 삶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안다. 모든 다정한 말들의 출처에 그저 감사하고, 그 말을 다시 건넬 수 있는 나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놓아버려요, 그 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