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준비 확인 목록
할머니는 거동이 자유롭지 않다. 아예 못 걷는 정도는 아니지만 지팡이와 함께 움직여야 하고 오래 멀리 걷기에는 무리가 있다. 계단이나 경사가 대단한 곳도 오르기 힘들기 때문에 버스나 지하철 등 택시 이외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도 무리가 있다. 그래서 여행에서 가장 신경 써야 했던 부분이다. 우리 할머니뿐만 아니라 아마도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여행에서 힘든 부분이지 않을까 한다.
1. 여행지 선택
뚜벅이 여행자에게는 여행지를 선택할 때 몇 가지 고려사항이 있지만 80대 할머니와 가는 뚜벅이 여행자는 더욱더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나는 할머니와 제주도 한달살이와 제주도 뚜벅이 여행, 산악회를 통해 다녀온 통영과 양양 그리고 이번 뚜벅이 강릉 여행을 하는데에 있어서 여행지 선택 기준의 일 순위는 교통편이었다. 비행시간이나 이동시간은 짧아야 하고 좌석은 편안해야 하고 여행지에는 택시가 많은 지역이어야만 한다. 이동할 때도 편하고 할머니짐과 내 짐을 모두 들어야 하기 때문에 짐을 싣기도 좋다. 또 휠체어를 대여해야만 하는 상황도 있기 때문에 택시가 필수적이다.
A장소에서 B장소로 이동할 때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면 A장소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휠체어가 유용하다. 거동은 하실 수 있지만 관광이나 관람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서 여행지에 휠체어를 빌릴 수 있는 곳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강릉에는 국민건강공단에서 무료로 빌려주고 제주도에는 공항부터 장애인복지센터, 사립휠체어 대여소가 많기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여행하기에 좋다. 여행지를 결정하기 전에 휠체어를 빌릴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접근성이 좋은지 알아봐야 한다. 휠체어를 대여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일반 승용차 택시는 LPG차량이기 때문에 휠체어를 트렁크에 실을 때 트렁크 문이 닫히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운동화 끈이나 노끈 같은 줄을 준비해서 다니면 더욱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다.
2. 자리 좌석 예매 및 동선 확인
나는 여행을 굉장히 좋아하고 자주 다닌다. 나는 굉장히 즉흥적인 사람이고 언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사람이기에 기차표나 버스표 예매를 미리미리 예매해놓지 않는다. 하지만 할머니를 모시고 가는 여행을 준비하는 일은 즉흥적이기 어렵다. 모든 상황을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표를 미리 예매해 두어서 붙어있는 두 자리를 예약해야 한다. 할머니가 이동하는 시간에 몸이 불편하거나 화장실을 가야 할 때 옆에서 보살펴주고 손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멀미를 하는 경우가 분명히 생기기 때문에 만약 KTX라면 순방향인지 역방향인지를 꼭 꼭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광명역에서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강릉역으로 가는 ktx를 환승해야 했는데, 이때 환승시간을 꼭 체크해야 한다. 할머니의 걸음이 굉장히 느려서 적어도 15~30분 정도로 여유롭게 잡는 것이 좋다.
기차를 타러 갈 때 내 짐과 할머니 짐을 이고 지고 지도를 보며 게이트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코레일 모바일 어플에서는 열차시간이 되기 15분 전 타야 하는 게이트를 알려주기 때문에 기차역 전광판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기차역에는 서울 방면과 목적지 방면 두 곳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방면을 먼저 확인하는 것도 쓸데없는 동선을 줄일 수 있어 할머니의 체력을 지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또 모든 기차역에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있기 때문에 할머니의 걸음보다 앞서서 위치를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소소하게 주의할 점으로는 기차를 타고 기다리는 플랫폼에 의자가 없는 곳도 있기 때문에 너무 빨리 내려가서 할머니가 앉지도 서지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의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해 두면 할머니의 여행이 더욱 편안할 것이다.
기차에 오를 때 승객이 너무 많은 경우가 있다. 다리와 허리가 아파서 빨리 타고 앉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편한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계단에서 올라서는 순간부터 자리를 찾아 앉기까지가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서 사람들이 재촉하지 않아도 할머니의 마음은 더욱 다급해지기 때문에 허둥지둥 오르는 것보다 천천히 느긋하게 올라서는 게 더욱 안정감 있는 출발을 하게 될 것이다. 천천히 타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기차에 오를 때 할머니도 잡아드려야 하고 짐도 챙겨야 하고 몇 번 게이트인지도 봐야 해서 정신이 없는 데다가 좌석 번호까지 확인해야 해서 난장판이 될 수도 있다. 좌석 번호는 타기 전에 미리미리 확인해 두고 사람들과 동선이 꼬이지 않게 미리미리 안내를 해 드려야 한다.
3. 숙소 선택
우리 할머니는 생선 해산물 마니아다. 해산물을 굉장히 좋아하셔서 여행을 갔다 돌아오시면 꼭 해산물을 사 오셔서 생선을 굽거나 찌개로 만들어 주셨다. 지금 할머니는 혼자 생활하시는데 전처럼 생선을 자주 드시지 않으신다. 함께 먹을 사람이 없어서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와 나는 할머니와 여행을 갈 때면 꼭 해산물 요리를 해드리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우리는 주방이 있고 해산물 요리가 가능한 펜션으로 모시려고 노력한다. 강릉이나 제주도에는 싱싱한 생선들이 많으니 할머니가 좋아하실만한 요리를 해드리기 좋다. 하지만 꼭 숙소에 연락해서 가능한지 알아보거나 일정이 길다면 양해를 구해서 자유롭게 요리를 한 후에 하루나 이틀 정도는 환기와 청소를 깨끗하게 해 놓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보통 7일 정도 일정으로 여행을 가는데 4~5일은 펜션으로 예약을 하고 2~3일 정도는 호텔로 예약을 하는 편이다.
이번 펜션은 바다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 특별한 관광이나 특별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모든 것이 특별하게 느껴질 만큼 편안하고 행복했다. 개미가 쪼오끔 있었지만 그 흠이 보이지 않을 만큼 즐거운 곳이었다. 바다 바로 앞에 위치해서 경치는 물론이고 바베큐장도 할머니와 밤에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해서 느긋하게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카약을 무료로 빌려주셔서 이틀 동안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카약을 타기도 했다. 또 펜션 앞길로 바다 물질을 다니시는 해녀분께 방금 따신 해산물을 구입하여 손질해 먹기도 했다. 주변 인프라가 전무한 정도도 아니어서 걸어서 슈퍼길을 다니는 시간까지 의미 있는 곳이었다.
4. 일정 계획
일정을 계획하는 일은 정말 많은 고민이 됐다. 머릿속으로 엄마 니즈와 할머니의 컨디션을 계산해서 완벽한 일정을 짰다고 자부했지만 그 일정은 모두 나의 바보 같은 계산이었던 것..! 도착하자마자 휙휙 변하는 일정에 나는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사실 나는 하루종일 바다만 보고 있어도 좋은 사람이지만 엄마는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이 넘치시는 분이고 할머니는 컨디션에 따라야 하는 일정 이어야 하니 계획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발길이 닿는 곳으로 가보자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처음 짜놨던 일정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계획에 포함되어 있던 장소를 나열해 드리면 할머니가 그중 한 곳을 선택하신다. 나는 할머니가 선택한 곳과 그 주변 맛집, 카페, 할만한 것들을 폭넓게 찾아놓고 출발하면 그날 하루 계획은 무리 없이 세울 수 있으니 이 방법이 모든 계획을 맞춰놓고 출발하는 것보다 더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위에도 말했지만, 오죽헌이나 선교장 같은 곳에 휠체어를 대여해 주는지 아닌지도 꼼꼼하게 체크하면 더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