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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nger Jan 01. 2019

나의 20대와 작별인사 -전반전

앞으로의 10년을 기대하며

Intro

한국의 괴상한 나이 셈법에 따르면, 나는 태어난 지 30년이 안됐지만 30살이 되었다. 여기 태어나 살고 있으니 좋든 싫든 30살이 돼버렸고 지나온 20대의 순간들도 싫었든 좋았든 기록해 두고 싶어 졌다. 막상 기록하려고 하니 스무 살의 순간들은 그때의 일상, 감정, 많은 해프닝들이 어렴풋하게만 남아있었다. 또렷하게 기억해내기에는 저만치 멀어져 버린 시간이 되었다. 더 멀어지기 전에 기억하고, 소중했던 시간들로 포장해서 이제는 서랍 속에 넣어주고 작별인사를 할 것이다. 남들이 무어라 훈수를 두고 참견을 해도, 결국은 내가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할 30대에 좀 더 애정과 관심을 쏟기 위해서.


2009. 서투름

대학교 1학년 한 해 동안 학점이 좋았다는 것 빼고 나머지는 전부 서툴렀다. 고등학교 때 하던 것처럼 공부해 학점을 얻었을지 모르나 대학생이 공부해야 할 것과 대학생 다운 공부방법도 몰랐다. 그러니 결국엔 공부까지 포함해 모든 것이 서툴렀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름만 대학생으로 또 스무 살로 보낸 시간이기도 하다.

대학이란 곳에 입학하자 갑자기 내 인생에 많은 선택지가 등장한다. 온갖 단체 활동, 넓고 얕은 인간관계, 당장의 생활비를 위한 용돈 벌기 등의 선택지 사이에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결국 난 친구를 만들기 위해 관심도 없는 취미생활이나 단체행사에 참가해야 하는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는다. 이 선택 덕분에 선배도 없는 학부에(내가 첫 입학생이었다.) 입학했는데, 나의 캠퍼스 세상은 같은 전공인 친구들로 작아진다.


지금 돌아간다 해도 내 성격상 동아리는 안 할 것 같지만, 전공과 학교를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세계를 실컷 구경할 것이다. 지금의 내가 느끼기에는 전공과 학교는 나를 겁먹게 만들고 가두기 좋은, 그렇지만 허술하고 넘기 쉬운 바보 같은 울타리였다.


2010. 푸르른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적은 없었는데, 밝고 명랑한 날들이었고 노는 맛을 알기 시작했다. 기숙사 라이프를 시작해서 나의 외향성의 최대치를 찍으며 많은 친구와 지인 그리고 친구의 지인, 지인의 친구까지 얻게 된다. 인간관계의 '깊이' 보다는 '너비'가 역대급인 때였다. 하루도 기숙사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방에 가만히 쉬는 날이 없었던 기억뿐이다. 늘상 밖에 나가 다람쥐처럼 쪼르르 친구들과 떠들고 먹고, 그 와중에 알바도 하고 그 돈으로 다시 치킨 먹던 기억이 난다.   


그 해를 떠올리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미소가 번진다. 왜 그랬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걱정이 별로 없었고, 그저 놀았다. 퇴근길에 꺄르르 웃는 고등학생들을 볼 때면, 나의 2010년을 떠올릴 만큼 푸르른 날들이었다.


2011. 격변

상반기까지는 밝은 기운으로 놀고 공부하고 일하고 2010년처럼 바쁘게 지냈다. 한 치 앞도 모르고 중국 교환학생을 가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상하이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들과 룸메이트로 산다. 하반기에는 독일에서 생존해야 하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아 우울함, 외로움, 고독감, 서러움, 열등감 등 각종 부정적 감정을 살면서 처음 마주 한다. 이 과정에서 인생에서 큰 변화를 맞게 된다. 10대를 지나오면서 내 성격과 특징이라고 생각해 왔던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원래의 내 모습을 찾게 된 것이다. 한국의 중, 고등학생, 대입 수험생, 성실한 대학생으로 살아남기 위해 훈련된 모습 말고,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튀어나온 진짜 내 모습.


나의 맨 얼굴은 촘촘한 계획이 괴롭고, 한 가지 일을 끈질기게 하진 못하는 대신 새로운 것엔 귀가 쫑긋, 눈이 반짝이고 지루한 것에는 좀체 지루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혼자 노는 것도 괴롭고 혼자 집에서 노는 것은 더더욱 못하며, 먼 미래에 대한 심각한 고민은 하기 싫어하는 못난 모습도 있었다. 그렇다고 마음껏 살도록 내버려 두면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과는 금방 거리가 멀어져서 몸과 마음이 상하기 쉬운 게으르고 연약한 존재였다.   


2012. 둥글

밝지만 뾰족했던 내가 많이 깎이고 둥글어진다. 당시엔 성숙해졌다고 느꼈으나 지금 생각하니 그건 '성장' 정도였고 성숙이라는 단어의 감정은 한참 후에 느끼게 되었다. 청소년기에 가장 심했던 계획적인 생활방식을 완전히 버리게 된 첫 해였고, 오히려 정반대가 되어 즉흥적인 성향이 강해진다. 한국에서 사간 다이어리와 플래너를 빈칸으로 두고, 남보기엔 좋을 입사지원 제안을 거절해버리고는 한 해동안 인턴으로 번 돈을 몽땅 털어 한 달짜리 여행을 해버린다.(이후에 본인이 무슨 기회를 저버린 것인지는 서러운 취업준비를 하면서에야 깨닫는다.) 딱히 무슨 수나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독일에서 돌아오자마자 휴학하고 휴식했다.


11.08-12.08 동안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얻은 가장 귀한 것은 해외생활 경험도 영어실력도 아니고, 원래의 내 모습을 발견하고 돌아온 것이다. 그것 하나가 남은 나의 20대를 버텨내고 때론 치고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는 이때 가장 크게 성장했다.


2013. 캄캄

여의도에서의 인턴 후 졸업유예를 고민하고 직업에 대한 고민이 폭발한 시기이다. 당시 나와 안 맞는 일을 골라내는 능력을 발휘했다. 문제는 싫은 건 잘 골라내는데 좋아하는 걸 꼽지 못하는 것. 인간관계를 조금씩 깊고 좁게 남기기 시작했다. 인턴을 마치고 나서는 당장 개인의 생계가 위협받을 때였다. 했던 일들만 보자면 전반기엔 여의도, 후반기에는 학교도서관에서 소모적인 공부와 고민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에는 좀처럼 다가가지 못하고, 위기감을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취업 준비를 한다.

인천-여의도를 오가며 괴롭도록 출근하고 안 것은 여의도 업계와 그 일은 나랑은 안 맞는다는 것.

수 십장의 자소설을 쓰고야 안 것은 그 기업들은 날 안 좋아한다는 것.


캄캄한 한 해였는데, 그 해의 마지막 달에 'silicon valley'에 가서 스타트업과 IT기업 탐방 및 재직자 인터뷰를 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12월에 얻게 된 이 기회가 나의 20대의 후반전을 통째로 바꿔 놓고 만다.


P.S. - 흔한 드라마 등장인물 소개 페이지 형식을 빌려보았다. 문장이나 시점이 왔다갔다 어지럽고 어색했다면, 그 탓으로 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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