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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nger Oct 03. 2019

안식휴가에서 3주년 기념하기

첫 출근의 순간 돌아보기

2016.08.09

첫 출근을 했다. 인턴으로는 이미 여러 번 첫 출근이라는 걸 했었다. 떠나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은 회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회사에 가는 게 좀처럼 싫어 보이지 않는 재직자를 지켜봤기 때문에, 지원했던 회사들 중에서는 가장 일해보고 싶었지만, 왠지 난 안 될 것 같았던 그 회사에 오게 되었다. 신입을 공식적으로 대규모로 채용하지 않기도 하고, 인터뷰 중에 탈락할 것 같다고 느껴졌던 회사였기 때문이다. 그간 넥스트에 있으면서 같은 건물의 다른 층에서 내리는 노란 회사 사람들을 지켜보고 또 이미 일하고 있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익히 들어서 회사의 분위기는 이미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다.


첫날이라서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먼저 갔다. 나와 다른 팀에 같은 날 입사하게 된 거의 대다수는 신입이 아니라 경력 이직을 하는 분들이었다. 우리는 입사하기 전에 자신의 영어 이름을 정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제일 처음 한 일은 '자기소개'였다. 한국에서는 이 시간엔 늘 나이와 소속 같은 것을 밝히고 누가 더 연장자인지 안 뒤에 호칭을 부르고 이름 같은 건 사실 친구가 아닌 이상 잘 부르게 되지도 않았다. 어차피 성과 직책을 묶어 ‘박대리’ 아니면 직책조차 없을 땐 ‘박사원’ ‘ㅇㅇㅇ씨’ 라고 불려지니까. 이번에도 그동안의 자기소개를 하면 되겠지 했는데, 이 회사는 범상치 않았다.


원래 내 이름은 소개하지 말고, 내 영어 이름과 함께 좋아하는 것을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취미가 있다면 취미도. 그게 다였다. 인사팀은 자기소개 시범도 보여주셨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범상찮은 이 회사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나이를 모르기 때문에 추정만 할 뿐인 나보다 연장자인 것 같은 크루분들이 쭈뼛쭈뼛 부끄러워하시면서도 하나 둘 자신을 소개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농구를 좋아하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다양한 분들이 있었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었다.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솔라입니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다들 그러려니 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표정은 못 봤다. 이해심이 많은 분들이 함께 입사했나 보다.


그 이후로는 맥을 지급받고, 기본적인 세팅을 하고, 아지트 사용법을 익히고, 사원증에 쓰일 사진을 찍고 (사진은 정말 준비 없이 한방에 찍히고 끝나버렸다...) 오후까지 이런 일들을 느긋하게 진행했다. 오후 4시쯤이었을까? 이제 각자 소속된 팀의 버디가 데리러 올 것이고, 그 이후로는 버디가 알아서 돌봐줄 것이라고 했다. 잘 적응하고 있는지 일주일, 한 달, 3개월 뒤에 모여 티타임을 한다고 했다. 마지막엔 CEO와 대화 같은 것도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배정받은 자리에 가면 주변 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 쓸 수 있는 카페 쿠폰과 초콜릿을 나눠주었다. 초콜릿이라니 여행 기념품 같기도 하지만 누군가와 친해지고 말을 걸기엔 먹는 것 만큼 좋은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인사팀의 단체 프로그램은 그게 끝이었다. 내가 대기업에서 일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친구들이 대기업 OT에 한 달씩 참가해 겪은 과정을 카톡으로 실시간 생중계받다시피 했기 때문에 다른 회사 OT가 어떤 지는 잘 알고 있었다. 도대체 회사에 일하러 입사했는데, 왜 극기훈련과 장기자랑을 하라는 건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나였기 때문에 여기까지의 모든 OT 절차가 내 맘에 쏙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버디가 데리러 오는데, 내 버디이신 분은 조금은 늦게 도착하셨다. 매우 키가 크셔서 사람을 여러 번 보기 전에 얼굴을 잘 기억 못 하는 나도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분이었다. 내가 긴장할 까 봐 그래서인지 퇴근할 때까지 계속 농담을 하셨는데, 아주 재밌는 분인 것 같았다. 내 버디이신 분은 내 자리를 미리 청소해두셨다고 생색을 내셨다 물론 이것도 농담이다... 나는 첫인상을 보고 어떤 사람일지 예측해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분은 틀림없이 재밌는 분일 것 같다. (그분은 3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재밌는 분이 맞았다.)


팀원들도 만나고 스스로 나를 솔라라고 소개했다. 내가 쓰겠다고 한 이름이지만, 아직은 내 입으로 말할 때마다 어색하고 오글거리기도 한다. 7시까지 맥에 개발에 필요한 세팅을 조금 하다가 버디가 집에 갈 시간이라고 해서 집에 돌아왔다. 여러모로 강렬한 첫인상을 갖게 된 첫 출근이었고, 예상한 것 보다 더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라서 좋았다. 여의도에서는 더이상 내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결심한 뒤로, 먼 길을 돌아온 보람이 있을 만큼 기분 좋은 첫 출근 이었다.


나에게 카카오는 이런 첫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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