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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nger Jan 08. 2023

호텔왕게임이 한 학기 수업이라고?

독일 교환학생 수업 회고 (2)

한 학기 내내 게임만 하는 전공수업

  경영학 전공수업에서도 몇 과목만 영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Master 과정에 있는 영어 강의까지 수강할 수 있었다. 'Doing Business in Europe'이라는 강의도 master 과정이었는데, 강의 첫날에는 평범하게 교수님이 유럽 비즈니스의 특징을 슬라이드로 설명했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갈 무렵, 교실에 오는 건 학기 마지막 최종발표 날 뿐이고, 이 수업에서는 조 별로 호텔 경영 게임을 한 내용과 최종 발표로 평가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호텔 slogan, price, concept, HR, Finance, Capacity, Marketing 등 모든 요소들을 의사결정하는 걸 한 학기 내내 한 뒤에 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배당금을 얼마 줬는지 합해서 주주의 이익을 최대로 냈는지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매 주의 미션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었는지에 대해서 최종발표도 해야 한다.

  '게임? 호텔왕게임 같은 걸 한 학기 동안 하는 게 수업이라니, 그것도 조별로 게임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멍하니 있는 동안, 감사하게도 착한 3명의 독일 친구들이 같은 조를 할 건지 먼저 제안해 줬다. 이젠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아래 링크에 있는 게임이었던 것 같다.

https://www.cesim.com/simulations/cesim-hospitality-hotel-restaurant-management-simulation-game

  게임이라고 해서 나는 그래픽이 포함된 타이쿤 같은 재밌는 게임을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단순하게 얘기하면 텍스트를 읽고, 판단해서 수치를 입력하는 게 전부였다. 매주마다 동일한 상황이 전체 클래스에 주어진다. 환율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날씨는 폭설이 예상되고, 호텔 시설은 어느 정도로 낡았다 등의 내용이 영어 지문처럼 주어졌다. 해당 상황에서 추가로 몇 명을 고용할지, 시설유지 보수에 쓸 비용, 마케팅 비용은 얼마나 쓸지 등의 숫자만 입력하면 게임 참여가 완료된다. 다음 주가 되면, 저번 주의 각 조의 의사결정에 따라 조별로 경영 지표들이 바뀐다. 현금이 깎이거나, ROI가 낮아지거나 등 지난 의사결정의 결과물이 성적이 되는 셈이다.

  이 모든 과정이 낯설었고, 당최 무슨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되는 건지 그 어떤 가이드도 주어지지 않아서 평소 성격과는 다르게 매주 있는 조별 미팅 때마다 쉽게 의견을 내지 못했다. 학기가 흘러갈수록, 독일 친구들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일 친구가 단호한 태도로, '오늘은 동의한다는 말은 금지야, 무조건 니 의견을 말해야 해.'라고 말했다. 나는 좀 억울해져서, '완전히 똑같은 이유로 네 생각과 같다고 할 수도 있는데, 왜 동의한다고 못하게 하는 거야?'라고 대꾸했다.

"완전히 똑같은 문장을 말하더라도, 네 생각을 듣는 게 중요해. 그냥 고개만 끄덕이는 건 원숭이도 할 수 있어."

  원숭이라니 원숭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기분이 몹시 상했지만, 이 나라의 교육방식이 얼마나 개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뇌리에 꽂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안 잊힌다. 누군가는 모두가 'In my opinion'으로 주장하는 문화에 질렸다고 했지만, 독일은 질릴 정도로 너의 의견을 물어보는 나라인 것이다.

  이 호텔왕게임으로 가장 크게 배운건 CEO가 이런 의사결정들을 연속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좋은 회사에 입사하려고 경영학 전공을 선택하는 것 같았던 한국과는 다르게, 독일에서의 경영학은 언젠가는 나의 비즈니스를 경영하려고 배우는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호텔왕게임이 시중의 게임만큼 재밌거나 그래픽이 훌륭하지도 않았지만, 교육과정은 아주 실용적이었다. 

   한 학기 내내 교수님을 2번 만나는 게 전부인 것도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수업방식이었다. 이 수업에서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것에 호되게 당해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남의 말에 동의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상황이 될 때마다 트라우마처럼 생각이 난다. ‘잠깐, 나 지금 원숭이인 건가?’ 아님 진짜 동의를 하는 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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