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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이용성 Nov 13. 2017

'의사(義士)'와 '열사(烈士)'의 차이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등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의 뒤에 붙는 이 호칭에 의문이 생겨 찾아봤었다.

의사와 열사에 대하여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의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제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가진 의로운 사람.

열사: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


우리나라 말이 너무 어려워 양자의 차이를 확연히 구분하기 힘들다.

좀 더 확실한 차이를 찾아보면 국가보훈처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의사: 무력(武力)으로써 항거하여 의롭게 죽은 사람.

열사: 맨몸으로써 저항하여 자신의 지조를 나타내는 사람.

간단하게 말하자면 무력을 사용하면 의사 그렇지 않으면 열사 정도로 구분한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시대에서 실제 독립운동에 직접적으로 가담했던 비율은 2%에 불과했다고 한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이 뼛속까지 사무칠 텐데 독립운동에는 일반 민중들이 왜 그렇게 저조한 참여율을 보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두 친일행적을 한 것만은 아닐 테고 아마도 단지 그 당시 민중들에게 주어진 가혹한 삶을 그저 묵묵히 견디며 살아내고 있었으리라.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서 100년 전의 일제강점기로 돌아간다면 나는 과연 과감하게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태어나서부터 조선총독부의 호적에 올랐을 것이고 일제가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하여 설치한 철도나 전차를 사용하여 소학교를 다니며 일본어를 배워야 하고 또 창씨개명을 당해 조상의 성을 쓰지 못하고 일본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교육을 받은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해야겠다는 사상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지 않을까?

또한 시대정신을 갖고 독립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들 현실은 더욱 녹록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독립운동은 지하에서 비밀리에 해야 될 텐데 나의 가족에게 혹여나 해를 입거나 할까 봐 집을 떠나 살아야 될 텐데 집에 남은 노모(老母)며 당시 지금보다 일찍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성인 될 나이면 처자식도 있었겠다.

그렇다면 과연 내 가족을 버리고 온전히 독립운동에 뛰어들 수 있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가장이 사라진다는 게 가족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일일까?

우리 엄마 같으면 등짝 스메싱을 날리면서 이렇게 이야기하셨을 것이다.

"토익점수도 안 나오는 놈이 얼른 스펙 쌓아서 취업할 생각은 안 하고.."


또한, 당시를 생각해보면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 속에 일본은 서양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청일/러일/1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서 절대 패망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고 혹은 언젠간 패망하겠지 하더라도 그게 언제인지 기약할 수 없는 노릇이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는 것에 대한 국제적인 암묵적인 조약들도 있어 외교적으로도 독립이 어렵고 독립군들의 활약이 있긴 하나 일본을 상대로 전면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생기긴 했으나 국외로 도는 임시정부로는 독립을 이루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 냉정하게 보면 현실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혹은 조금씩 몰래 힘을 보태는 것은 몰라도 직접적으로 실천한다는 것은 여러 현실적 요소를 고려하면 매우 실천하기 어려운 일인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분들은 죽음으로써 영원한 삶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윤봉길의사의 훙커우 의거 당시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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