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ersonA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이용성 Nov 13. 2017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I shop, therefore I am


미국의 예술가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1945~)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냥 쇼핑백에 쓰여있는 문구다.

크루거가 내놓은 이 문구는 1980년대 말, 미국은 쇼핑의 광풍이 몰아닥치는 상황이었다. 후기 산업사회의 경이로운 상품 생산량과 이를 대량 소비하는 소비자가 등장하는 시기이고 이 기조는 지금까지 이어온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소비사회를 관통하는 문구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소비를 통해 자신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더 이상 근검절약이 미덕이 아닌 사회, 소비하는 형태를 통해 나를 드러낼 수 있고 남과 차별을 둘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비는 분명히 한계점에 부딪히게 된다. 아무리 소비를 해도 굶주린 짐승처럼 다음 소비를 향해 입을 벌릴 뿐이다. 


나는 이런 소비를 최대한 지양(止揚)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소비를 해야 한다면 어차피 쓰고 없어질 물건이라 생각하고 막 써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소비하려고 한다. 이를 테면, 휴대전화기도 적당히 쓸만한 보급형을 저렴한 가격에 일시불로 구입했다면 실수로 스크래치가 나거나 액정화면이 깨진다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쓸 수 있는 만큼만 쓰다가 버리고 비슷한 것으로 새로 하나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고가의 휴대전화기를 할부로 구입할 경우 케이스는 당연히 끼워야 하며 손상이나 분실을 대비하여 보험을 들어놓는 것도 필수고 혹여나 떨어뜨릴까 애지중지하며 휴대전화기를 모시고(?) 살게 된다. 내가 편하게 살기 위해 나의 만족을 위해 휴대전화기를 구입했지만 어느새 그 물건에 속박당하는 꼴이 된다. 


궁극적으로는 소비보다는 투자를 하려고 한다.

투자라고 해서 주식, 부동산 등 거창한 것은 절대 아니고 이 물건을 구입함으로써 창출할 수 있는 부가적인 가치가 있을 경우는 과감히 지른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런 품목은 컴퓨터 관련한 일련의 물건들이 될 수 있겠다. 어떤 디바이스가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업의 시간을 아껴줄 수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사서 쓴다. 그러다 보니 용도에 맞춰 노트북을 사고 데스크톱 부품을 업그레이드하고 하다 보면 어느새 지출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 덕분에 내가 활동할 수 있는 분야가 하나씩 늘어나고 그것을 실제 현실화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예전엔 사양이 좋지 못해서 노트북으로는 기껏해야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돌리고 말았으나 요즘은 워낙 사양의 상향평준화가 이루어져서 보급형 노트북으로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보급형 모델로는 당연히 인내심도 필요하다.) 음악을 만드는데 쓰거나 영상편집의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적절한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상품에 대해 '공부'가 필수적이 되어버렸다. 나에게 지금 꼭 필요한 상품인지, 이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어떤 경로로 구입해야 가장 싸게 살 수 있는지 이제는 뭔가 하나 사는 것도 녹록지 않고 그에 비례해 시간을 많이 들이게 된다. 결국 나에게 남은 소비행태는 "가능한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이다.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오는 만족보다 스트레스가 더 커지는 상황이라서 갖고 있는 것으로 대충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고 살기로 작정했다. 이는 생각보다 효과적이었다. 역설적으로 소비도 투자도 하지 않으니 결핍을 느끼고 살 줄 알았는데 그럭저럭 굴러가게 되었고 가장 좋은 것은 쇼핑을 하느라 버리는 시간을 내가 다른 곳에 쓸 수 있어 좋다.


그래서 지금은.

나는 소비하지 않는다. 고로 존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