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페레의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를 읽으며 기억났던 일
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이란 단지 무서운 존재에 불과했다.
학교에 가면 잘못한 게 없는데도 왠지 주눅 들곤 했다. 왜냐하면 별것 아닌 일에도 선생님들은 화내고 크게 꾸짖고 때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렸을 때의 나 혹은 친구들이 그렇게 엄청난 장난꾸러기에 말썽쟁이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꼬마들에 지나지 않았었다.
기원전 1700년경 수메르 시대에 쓰인 점토판을 해독했더니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라고 쓰여있었단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선생님들의 눈에는 애들이 버릇없어 보였을 수도 있겠다마는 그래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던 일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에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어린 시절의 그 장면이 스틸컷 사진처럼 남아있는 일이 하나 있다.
때는 1990년대 내가 다녔던 어느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수학(그때는 산수) 시간이었을 것이다. 수업 중인 조용한 교실 안,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은 판서를 하시던 도중 갑자기 구구단 문제를 물어봤었고 너무 조용한 분위기여서 반 아이들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반응이 없자 선생은 몸을 돌려 앞에 앉아있는 키 작고 왜소한 여자애를 응시하고는 다시 질문했다.
선생의 갑작스러운 주목에 당황했는지 그 애는 대답은 못하고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그게 그렇게 무례했던 것일까? 그 애는 교단 앞으로 불려 나갔고 그 선생은 예고도 없이 따귀를 정말 있는 힘껏, 풀스윙으로 때렸고 10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따귀를 맞고 교단 반대편으로 날아가 쓰러졌다. (사람이 어떤 물리적인 충격을 받으면 반작용으로 날아갈수도 있다는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그 교실은 충격의 도가니였으나 누구 하나 숨소리를 크게 낼 수도 없었다. 지금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 그 어린 나이에도 이는 부당한 일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만 할 수 있을 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얼핏 듣기로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고 그 아이의 할머니께서 우리 학교 앞에서 햄버거 파는 노점상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이 일이 있은 후로는 왠지 미안해서 그 햄버거집을 갈 수 없었다.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람도 십수 년이 더 지나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당사자는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인 건지 아니면 그냥 분풀이로 학생을 때린 건지 아니면 그 아이의 가정형편이 녹록지 않아 소위 빽이 없으니 막 때려도 상관없다 싶었던 건지. 예전엔 선생 해먹기 참 좋았을 것 같다. 정년보장에 연공서열, 사회적으로 대우받고 아이들을 학대에 가깝게 훈육하고 가끔 학부모들이 왔다 갔다 하며 촌지도 주었던 건 그 어린아이들까지도 공공연히 아는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