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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이용성 Jan 30. 2018

내가 있는 곳이 제일 힘든 곳

대한민국의 건강한 성인 남자라면 조상의 은덕이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 군대를 가게 된다. 그곳에서 막장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그 트라우마가 얼마나 대단한가 하면 제대한 지 몇 년이 지나도 최악의 악몽으로 군대 꿈(=재입대)을 꾼다.

여기서 말한 '군대'는 '현역'을 의미한다. 

'남자라면 누구나 갔다 오는 곳'정도로 평가절하할 만만한 곳이 절대 아니다. 

조금씩 의견이 갈리겠지만 대게 남자들은 본인이 했던 군생활이 제일 어렵고 힘들었다고 말한다.

 


내가 입대한 지 얼마 안 된 훈련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원치 않게 일 년 중 가장 더운 삼복더위일 때 입대를 했고,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받을 때마다 갈증을 참기가 가장 힘들었다. 훈련은 주로 산에서 진행되었는데 항상 산에 다 오르기도 전에 이미 수통에 물은 바닥나 있었다. 오전 훈련을 받고 나서 점심때쯤 되면 아래에서 트럭이 올라와서 밥과 물을 갔다 주는데

그 물은 식중독 예방을 위해 펄펄 끓여서 준다(...)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도 갈증이 가실까 말까 한데 삼복더위 땡볕 아래 끓는 물이 라니. 

물이 큰 통에 담겨있어서 개인 수통에 따라 마셔야 되는데 하필 수통의 재질이 철제인지라 끓는 물의 온기(?)가 손에 고스란히 전해져 제대로 따라 마시기도 힘들다. 조금씩 받아 '후후~'불어 식혀 마셔야 하는 상황. (이쯤 되면 차라리 목말라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제정신이 아닌 상태)


하지만 훈련받느라 땀범벅에 목마름이 극한까지 간 훈련병들에게 그런 거 따위 없다. 서로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시겠다며 아웅다웅하다가 훈련병간 주먹다짐에 몸싸움까지 하는걸 옆에서 지켜보고 나는 진정 이곳이 지옥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렇듯 군대는 처음부터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런 지옥 같은 곳을 버티고 나온 후 몇 해 지나 친구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해준 내 친구는 현역 출신(이하 A)이고 그의 친구는 공익근무(이하 B)를 했다고 하는데 둘이 술자리 하는 도중 우연히 군 시절 이야기가 나와서 A가 B에게 "공익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게 뭐였어?"하고 물어보았단다. 그랬더니 답변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어느 비 오는 날, 분리수거하러 쓰레기장에 가던 중 갑자기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쓰레기를 담았던 비닐봉지가 찢어졌고, 그로 인해 쓰레기들이 바닥에 널브러졌으며 본인은 넘어진 채로 비를 맞으며 울었다고 한다.


"..."

내 친구 A는 그 자리에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누구나 본인이 경험한 것, 혹은 지금 처한 상황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극한의 상황이라 해도 견디고 버텨내 나중에 돌아보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된다. 

그러니 만약 지금 본인이 제일 힘든 상황에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칼 세이건의 저서 '코스모스'에 보면, 우주에서 10조 개의 별들을 품고 있는 은하가 10조 개 있는데 그 광막한 대우주의 세계에서 우리는 은하수 은하 변방에 있다. 그런데 그 변방 중에서 굉장히 작은 노란 별, 태양이 이끄는 태양계 한구석에 있다.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 하나에 불과하다.


저 수많은 별들 중 하나에 불과한, 우주의 먼지 같은 지구에서 내가 고민하는 것들이 별것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가끔 세상만사가 힘들고 우울할 때 이런 것들을 떠올리면 또 한 번 살아갈 용기를 얻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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