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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이용성 Nov 27. 2017

서울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유치한 편이지만 뭐든 처음 접했을 때의 놀라움이 있지 않은가. 점점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지만 이런 것을 기록해 두는 것도 훗날 들춰보면 의미 있을 거란 생각에 유치한 생각들을 글로 남겨보려 한다.



내게 있어서 만큼은 서울은 외로운 도시였다. 

나는 서울 사람이 아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아주 시골은 아닌 어느 한 지방 광역시의 번화가였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딱히 타도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서점, 오락실, 영화관,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 각종 상가들 대도시 기준 있을만한 건 다 있었다.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 스물 즈음에 서울에 가서 그 생각이 철저히 깨졌다. 그나마 발전한 곳이라 생각하던 우리 동네는 서울에 한 지역구만도 못한 조그마한 곳이었다.


이제는 서울, 지방 구분할 것 없이 어디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지만, 내가 처음 서울에 간 십여 년 전에는 지하철,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온통 손에 신문, 잡지 혹은 책을 들고 어떤 형태로든지 활자를 읽고 있었다. 내가 살던 곳에 대중교통에서는 뭔가 손에 들고 읽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서울에서는 이동 중에도 저렇게 정보를 습득하고 있다면 점점 격차를 극복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그런 느낌을 받은 후 몇 해 지나, 우연한 기회로 강남 뱅뱅사거리에 위치한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이른바 짐 싸들고 상경을 처음 하게 된 것이라 하늘을 찌를듯한 마천루와 수없이 쏟아지는 사람들에 압도되어서 그런지 길치도 아닌데 걸어서 5분~10분 거리인 강남역부터 뱅뱅사거리까지도 잘 못 찾아갔었다. 

회사가 위치한 23층에서 창문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면 딱히 출퇴근 시간대가 아닌데도 사거리에 사람들이 빼곡히 건너 다니고 점심시간에 주변 식당은 예약을 안 하면 기본 2,30분은 줄 서서 먹어야 했다. 회색빛 무수한 사람들을 보면서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다들 어디서 나와 어디로 들어가는지 이 도시가 저 많은 인구의 상하수도, 전기등 사회기반시설을 충당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면 교통이 너무 혼잡해서 일부러 퇴근시간을 훨씬 넘겨 가기도 했었다.


서울 생활은 꽤나 고달팠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겠지만 연고 없는 곳에 돈 없이 오다 보니 창문도 없는 어두운 고시원에서 지내야 했다. 정말 겨우 잠만 잘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기 때문에 퇴근하고 답답한 고시원에 가기 싫어서 그냥 퇴근 안 하고 사무실 소파에서 자거나 아니면 근처 찜질방 사우나에서 잔적도 있다. 그나마 서울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친한 친구 하숙집에서 캔맥주 뜯으며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잘 때가 가장 편한 잠자리였었다.

서울에 올라온 뒤로는 버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뭐든 모으고 살았는데 고시원, 지하실, 옥탑방 등을 전전하며 이사 다니는 nomad적인 삶을 살게 되니 짐을 하나라도 줄여야만 했다. 그러던 사이 팍팍한 서울 살이에 적응됐는지 익숙하게 (지하철 반대로 안 타고)목적지도 찾아갈 수 있었다.


강남역 앞에 새벽은 항상 일찍 시작했다. 각종 어학원, 헬스장 등이 동이 트기도 전부터 환하게 불을 밝히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태했던 나를 반성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살아남기 위해 저렇게까지 하고 살아야 하는가 싶어 마음 한편이 헛헛해지기도 하였다. 


나는 주말이면 좁고 어두운 집에만 있기 싫어 무조건 밖에 나갔다. 천만 가까운 사람이 사는 도시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때문인지 조금 먼 거리라 하더라도 구면인 사람들을 찾아가며 만났었다. 반가움에 밤새 술 마시는 일이 잦았는데 그럴 땐 항상 술냄새를 풍기며 지하철 새벽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던가 일요일 이른 새벽인데도 앉을자리가 몇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 몸을 싣고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행상을 나가시는 듯 짐을 한가득 안고 타신 아주머니, 책을 펴서 줄 치며 공부하는 학생,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어딘가 출근하는 것 같은 아저씨 등.

그때 갑자기 나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저 사람들은 휴일에도 하루하루 저렇게 열심히 살아가는데 저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을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서울 생활은 길게 이어나가지 못했다.

가끔 일이 있어 서울에 올라가면 이런 십수 년 전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또한 계속 변하는 서울의 모습은 그런 세월이 있었는지 모르게 나의 추억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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