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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속도로 살아갈 용기

나 홀로 떠나온 바다에서 마주한 마음

by 윤슬

퇴사를 하고 어느덧 6월의 반이 흘러갔고,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의 맛을 보고 축 쳐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


아직 독립하지 않은 나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기 때문에 집안이 늘 북적북적하다. 어느 정도의 개인주의 성향과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예민한 나에게는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최근에도 그랬던 것 같다. 회사로 출근할 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안 그래도 예민한 안테나가 더 뾰족해짐을 느꼈다


그렇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서해 바다로 떠나기로 했다


회사를 다닐 때 가볍게 오기 시작했던 이곳에서의 시간이 좋았기에 오랜만에 나 홀로 영종도로 향했다. 평일에는 다른 곳들보다 비교적 저렴한 숙박비, 바다가 가까운 곳이고 쭉 뻗은 넓은 도로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었다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몰라 여전히 흔들리는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일 년 전 수술을 했고 두 달 정도 쉬었으니 괜찮을 거라고 자만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최선을 다했다. 새로운 일을 배운다는 행복감,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 동기들과 함께 같은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꽤 재미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회사는 성과가 우선이었다

영업에는 성과가 빠질 수 없었기에 매달 매달 실적으로 평가를 받아야만 했고, 매일매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 보다. 불규칙한 수면 패턴과 턱 없이 부족했던 수면 시간, 수술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체력은 떨어져 있던 상태로 매일 8시간을 앉아서 교육을 받고 일을 시작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는 결국 나에게 재발을 안겨 주었다


더 이상의 스트레스를 허락하고 싶지 않았고,

결국 그렇게 회사와는 또 한 번 이별을 하게 되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괜찮아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괜찮지 않았고,

여전히 마음은 불안하고 공허했다.


30대의 중반에서 나는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싶어 마음이 탁 막힌 기분이었다.



영종도에 와서 많은걸 하지 않았다

그저 오롯이 혼자가 되었지만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어쩌면 이제는 진정 홀로 서기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서기를 할 준비를 잘하지 못했던 내가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후회해 봐야 달라지는 게 없으니 앞으로의 시간을 잘 채워 나가야겠다고 다시 마음먹어 본다.


오늘은, 오늘의 해가 뜬다


자고 있는데 커튼 사이로 붉은 햇살이 들어온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해가 뜨는구나. 오늘은, 오늘이라는 아름다운 해가 뜨는데 나는 여태 흔들 거리는 마음에 휩쓸려 이렇게 아름다운 오늘을 또 허무하게 흘려보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 삶 안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 나를 영종도까지 데려 온 이유는,

가끔은 내 삶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곳으로 떠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박 3일, 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끼니를 챙기고, 아직은 선선하게 불어오던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고, 밀린 숙제 같은 일들을 하나씩 해나갔다. 그저 '무기력하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묵묵히 나에게 말을 걸었다


굳이 자신의 가치를 설명하지 않고, 그 시간을 아껴서 혼자를 충분히 즐기며,
양보할 수 없는 루틴을 갖고 산다면, 누구든 점점 더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자신에게서 배우는 삶을 시작할 수 있어서다.
그들에게는 나이 드는 게 가장 큰 행복이자, 세상 그 무엇보다 든든한 보험이다.

"흐르는 시간이 사라지지 않고, 삶에 고스란히 쌓이는 사람들은 결코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에게서 배우자"

-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


무기력하던 시간에는 타인과의 비교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는 왜 이렇게 느릴까?'

'나는 왜 이렇게 이뤄 놓은 게 없지?'

알 수 없는 마음들이 피어올랐지만 다시 한번 나를 만나고 나서야 마음에도 평온이 찾아왔다.


나는 나만의 색으로 빛나고 있고,

나는 나만의 속도로 흘러가는 중이다.



반쯤 떠진 눈으로 아름 다운 새벽 윤슬을 보고 또 보았다


내가 윤슬을 좋아하는 이유는,

매번 같은 윤슬이 단 한 번도 없다.


몇 분이 지나면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윤슬,

그렇게 자신만의 색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는 윤슬을 보고 있자면 마음에 늘 단단한 무언가가 피어오른다. '윤슬처럼, 윤슬답게' 그렇게 나만의 고유한 색으로 빛나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 본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여전히 그걸 해낼 가능성이 존재한다

가능성이 인간을 버리는 게 아니라
인간이 가능성을 버리는 것이다


숙소를 나와 초록초록한 나무 사이로 산책을 했다

내가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도,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도 감사했고, 재발을 했지만 큰 병이 아님에도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이 순간이 최악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날도 오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내 마음을 쓰고, 내 세계를 넓혀 나가는 일.

영종도에 여러 번 왔지만 이번 영종도는 더욱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을 듯하다.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었던 시간,

영종도를 여러 번 오긴 했지만 이번처럼 영종도의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을 깊게 느꼈던 시간은 처음이기도 했다


초록초록한 나무들이 있고, 공원이 많은 영종도

아침 일출도 참 예뻤던 영종도에서의 시간.


책과 글쓰기를 통해 나는 한번 더 내 삶의 용기를 얻을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마음이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
그리고 당신만의 언어로 당신이 본 것들은 세상과 사람들에게 설명하라.
당신의 세계는 365일 내내 잠들지 않을 것이다


나만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해 나가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느린 나일지 모르겠지만, 나만의 속도로 꿋꿋하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고 믿는다. 내가 사랑하는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지금처럼 마음을 쓰며 말이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목표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겪어야 할 방황도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 오히려 웃으며 전진하라.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대는,
더 진실하고 농밀한 존재가 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들꽃처럼,

우연히 돌아봤을 때 더 아름 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여전히 방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깊어진 방황 속에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지는 못하더라도,

나만의 속도로 살아갈 용기를 내어 다시금 한 발자국 걸어 본다.


나만의 속도로 살아갈 용기를 내며,

그렇게 방황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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