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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가 말을 건넨다

나답게 살아가도 된다고, 용기 내도 괜찮다고.

by 윤슬
파도에 휩쓸렸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다 앞이었다

문득 정신을 차렸고 나는 바다 앞에 서있었다

20대의 나는 늘 내가 궁금했다. 어떤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어떤 곳을 좋아하는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세상의 모든 경험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 갔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안정보다는 '경험'이라는 단어가 나를 더 흔들었다


워낙 고민이 많은 스타일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깊게 고민한 후에 선택을 내렸고, 늘 포기하기보다 실행하는 쪽에 가까웠다. 혼자 경주에 내려가 일을 시작했던 것도, 홀로 제주도에서 살아갔던 것도. 모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선택했던 행동들이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싶었다

어떤 순간에는 인정받기도 했지만 어떤 순간에는 진심은 오히려 이용당하는 경우도 생기며 일에 대한 회의감이 나를 억누르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나를 억누르던 시절을 지나 결국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시 용기를 내어 한 발자국을 내디뎠지만,

결국 또 한 번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다.


자꾸만 나에게 높은 파도가 찾아와 흔들리는 일이 야속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바다 앞에 나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유난히 파도가 높았고 비가 왔다. 유난히 높은 파도 앞에서 나에게만 왜 이런 일들이 일어 나는 걸까, 앞으로의 삶은 또 어떻게 흘러 갈지 막막하기만 했다. 흘러가지 못한 마음들이 남아 나를 더 아프게 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내 깊은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정말 날것의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 곁에서 더 걱정을 했던 사람들 앞에서는 오히려 씩씩한 척했고, 진심이 아닌 이들 앞에서는 무덤덤 한 척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높은 파도가 치는 바다 앞에서 멍하니 바다만을 응시했다


나를 마주할 용기

바다에 온 지 며칠이 지났고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작은 골목들을 산책하고 처음으로 명상을 통해 나를 마주해보기도 하고, 세상에 없는 나만의 꽃을 만들기도 했다. 모든 감각들이 살아 나는 느낌, '아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다시 한번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마주 하게 되던 순간,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미소 지었던 순간이 얼마 만인지.


내가 너무 무겁게만 생각했던 인생은,

어쩌면 각자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갈 용기가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


세상이 정해 놓은 리듬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리듬으로 살아갈 용기,

바다 곁에서 나를 마주할 용기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갈 용기를 배웠다.



높은 파도와 함께
바다가 말을 건넸다


일주일 내내 이렇게 비가 오나 싶을 정도로 비가 왔다

푸른 바다를 상상하고 왔건만 여전히 바다는 높은 파도로 춤을 추고 있었다


'오늘은 바다 곁에서 머물고 싶다'


사람이 많은 카페 보다 나만의 공간에서. 좋아하는 말차라떼를 포장해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주차를 해놓고 바다 곁에서 오후를 보냈다. 자주 비가 왔고, 비가 멈춘 시간에 잠시 차에서 내려 바다를 따라 걸었다. 여전히 높은 파도는 춤을 추고 있었고, 시원하다 못해 뇌까지 시원해지는 바다 바람은 내 마음을 깨끗하게 비워주는 듯했다


"이제 조금 괜찮아?"


바다가 말을 건네 오는 듯했다.

높은 파도를 보며 마음이 개운해진 나를 알아차리듯 이제 조금은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겠냐고 물어 오는 것만 같았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바다 곁에서 몇 시간을 보낸 후에야 마음의 파도가 고요해졌음을 느꼈다


몸도 마음도 좋지 않았던 시간들, 진심을 다했지만 결국 돌아오지 않았던 마음들, 결국 기대와 실망이 얽혀 있던 날들. 그렇게 어찌할지를 몰라 혼자 끙끙 앓던 시간들을 지나 바다 앞에서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본다


늘 힘들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찾아왔던 바다,

이제는 그 바다 곁에서 온전히 나다워질 수 있음에 감사했던 시간이지 않을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바다에게 건네고, 바다에게 용기를 얻는 시간. 어쩌면 내가 바다를 이토록 사랑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시간이지 않았을까.



여전히 바다는 나에게 가장 깊은 위로의 시간이다.


수많은 일들과 사람들 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을 어디에도 이야기하지 못해 끙끙 앓던 시간들은 또 이렇게 지나간다.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기억도, 마음도. 이제는 바다에 던지고 파도에 휩쓸려 어딘가로 흩어진다는 것을 안다.


파도가 높은 바다를 지나 또 언젠가는 맑아질 바다를 볼 수 있음을 안다.


그렇게 바다는,

내 삶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준다.



나답게 살아가도 괜찮아


바다를 만나고 홀가분해져 내 마음을 기록할 용기가 생겼다.


한동안 내 마음을 기록할 용기가 나지 않아 머뭇 거렸던 순간들이 많았다. 어떤 말로 시작 해야 할지, 어떤 말로 마무리를 해야 할지. 솔직한 마음을 적고 싶었지만 진짜 내 마음을 몰라 답답했던 날들이 흘러갔다


마음에 높은 파도가 일렁이던 날들에 바다를 만났고,

높은 파도가 치는 바다도 바다고 맑은 날도 모두 바다임을 배워 간다. 결국 나 또한 지쳐 있는 모습도 나고, 상처받았던 순간도 나고, 힘든 순간도, 행복해하는 순간도 모두 '나'였음을 배워 간다.


결국 나답게 살아가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나답게 살아가다 보면 바다의 넓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바다 곁에서 나는 다시 한번 나답게 살아갈 용기를 품어본다


살다 보면 또 높은 파도가 칠 거고, 반짝이는 바다를 만나기도 하겠지.

그럼에도 나답게 살아가보자. 그렇게 나답게 반짝여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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