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요일엔 이가체프 Apr 11. 2016

그들이 사는 모습 - 아일랜드

더블린에 서서


 더블린 공항에서 데이빗은 윤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바꿔주었다. 윤과 나는 그렇게 긴 세월을 지나 같은 하늘 아래서 반가운 목소리를 전했다. 우리는 데이빗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일단 윤의 집에 들를 예정이었다. 윤은 먼저 더블린행의 난리통이었던 내 안부를 물었고, 이어 은밀한 목소리로 지금 집에서는 데이빗의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중이라고 알려줬다. 지금 집에는 시부모님과 데이빗의 동생 그리고 사촌동생이 와 있으며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한다, 데이빗은 그 상황을 모르니 집에 들어올 때 데이빗이 먼저 들어올 수 있도록만 해 달라는 미션도 주었다. 윤은 귀여운 서프라이즈 파티를 꾸미는 중이었다.


더블린에도 맑은 날의 행운이 이어지고 있었다.


 공항을 빠져 나오자 창밖으로 초록빛 더블린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데이빗은 이번 여행의 일정에 대해 물었다. 사실 구체적인 일정을 잡아 놓은 것은 아니어서 나는 '음...'하고 뜸을 들였다. 일정 중 며칠은 윤과 함께 장거리 여행지에 가기로 했고, -그중 하루는 데이빗도 함께 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언니와 둘이서 더블린 근교를 여유롭게 돌아보기로 했다. 가 보고 싶은 곳을 몇 곳 찾아두긴 했지만, 언제 어디를 갈지에 대한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그저 지도 하나와 전철 노선도 하나를 구하면 될 일이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긴박하고 정신 없던 기운의 막이 걷히면서 정신이 맑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안도의 숨을 고르느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좀전의 통화를 다시 곱씹었다. 나는 지금 더블린에 도착했고 오랜 벗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었지, 누굴 만난다고 했더라... 그래, 나는 친구의 시댁 식구를 만난다. 전에 없던 생경한 만남이다. 한국에서도 일어날 일 없을 만남. 그리고 타국의 땅에서는 더욱 상상한 적 없는 만남. 더욱이 그들은 모두 아일랜드 사람이라는 것. 사교성 하나만큼은 남부러울 것 없다고 자부했지만 대략 20시간의 난리통 속에서 나는 조금 지쳐 있었다. 곧장 숙소로 달려가 그대로 눕고 싶은 마음이었다. 통증에 시달리던 뜻밖의 여정으로 긴 시간 잠도 못 자고, 현기증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윤의 미션을 수행해야 했으므로, 정오의 파티를 향해, 그리고 오랜 벗을 만나러 간다.


 뜨거운 태양의 빛이 차창을 뚫고 얼굴에 쏟아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활기차게 쏟아지는 햇살이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해와 나 사이에 놓인 창문 덕에 햇볕의 온도가 기분 좋을 만큼 따뜻했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더블린의 청록색 풍경에 나는 점차 평온을 찾아가고 있었다.


윤은 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데이빗은 그런 윤이 이상했다.


 드디어 차가 윤의 집앞에서 멈췄다. 차를 세운 데이빗이 우리의 도착을 윤에게 알리기 위해 경적을 울렸다. 서프라이즈를 준비중이라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윤은 3층 집 창문으로 얼굴만 빼꼼이 내민 채 손을 흔들었고, 사정을 모르는 데이빗은 그런 윤을 보며 친구가 왔는데 왜 나오지 않느냐며 샐쭉하고는 우리를 집으로 안내했다. 순조롭게 데이빗이 문을 열었고 그의 가족들이 서프라이즈로 그를, 그리고 우리를 맞았다.


가족 모두 귀여운 고깔모자를 쓰고 숨어있었다.


Surprise!
Happy Birthday!


 방문자와 서프라이즈 동참자 사이의 어중간한 위치에 서서 축하와 인사와 재회를 동시에 해내느라 몸이 분주했다. 매우 짧고 상냥한 생일 축하 인사가 오간 뒤 데이빗의 가족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요리를 내오려고 주방을 분주히 오가는 친구와 식탁에 앉아 음식을 차리는 가족들. 오랜 벗과의 재회와 그녀의 시댁 식구들과의 만남 그리고 데이빗의 생일파티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이곳은 다름아닌 30분 전 첫 발을 디딘 낯선 땅, 아일랜드였다.


 반갑고 낯선 얼굴들을 마주하며, 생경하고도 분주한 상황 속에서 언니와 나는 제법 빠른 속도로 그들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빠른 몸짓으로 짐을 내려놓았다. 불과 30분 전, 20시간의 고행을 지나 더블린 땅을 밟았다고 안도했던 모험 같은 굴곡의 시간이 꿈이었을까. 학교 앞 자취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던 친구가 낯선 땅에서 가족을 꾸리고 이제는 엄연한 아내 그리고 며느리로서 주방에서 라자냐를 꺼내고 있는 모습, 아니면 이것이 꿈일까. 긴 여정으로 여행의 길에 오른 나는 지금 누군가의 가족들과 그들의 일상 안에 들어와 있었다. 좀전과 지금의 모습이 너무도 달라서 둘 중 하나는 꿈처럼 느껴졌다. 낯설고도 반가운 상황에 왠지 웃음이 났다.


 생일상은 단촐하지만 정겨웠다. 우리는 작은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직접 만들었다며 빵을 잘라 주시는 시어머니, 크로와상을 반으로 갈라 치즈와 하몽을 그 속에 넣어주며 자기가 만든 걸쭉한 건강쥬스는 인기가 없다며 울상인 윤, 한국여행 때 만들었다며 앨범을 보여주는 시아버지. 그리고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남자들끼리의 회포를 나누는 데이빗과 동생들. 그들과 함께 더블린의 따뜻한 정오가 지나고 있었다.


 시부모님은 한국에서 온 우리에게 이런 저런 말을 건넸다. 우리가 행여나 어색할까봐 신경써주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일랜드 외에 유럽 어디를 가봤는지 물었고 우리는 프랑스와 체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가봤다고 했다. 그들은 이번 여행에서 아일랜드에만 머무는 것이 의외라는 듯했다. 아일랜드 사진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다는 우리의 말에 그들은 동시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파리처럼 화려하고 예쁜 곳에 다녀와놓고 아일랜드가 멋지다니.' 그러나 아일랜드는 아름다웠다. 대자연이 주는 꾸미지 않은 멋이 있었고 아일랜드 사람 특유의 흥이 정겨웠다. 어떤 장소든 또다른 정취가 있듯이 아일랜드만의 색과 멋이 좋았다. 그들은 작년에 윤의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한 이야기를 하며 제주도가 아일랜드와 닮았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아일랜드를 여행하면서 제주도와 닮은 풍경들을 종종 보곤 했다. 물론 두 장소는 닮은 것보다는 다른 것이 많았지만.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든 이유

 한동안 즐거운 이야기가 이어졌고 식사를 마치자 그들은 이제 가봐야겠다며 일어섰다. 우리에게 아일랜드 여행이 좋았으면 좋겠다고 인사를 했고, 윤은 문앞에서 그들과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이렇게 벌써 가시나?' '안 나가 봐도 되는건가?' 나는 조금은 낯선 장면 앞에서 생각했다.

 윤은 종종 시부모님 이야기를 했다. '어머님이랑 차마시기로 했어.' '우리 여행 간 동안 아버님이 물고기 밥을 주시러 오셔.' '주말이면 시부모님이랑 저녁을 먹는데 같이 갈래?' 시부모님의 방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맞을 수 있는 것, 시어머니와의 티타임이 다를 것 없는 편안한 만남일 수 있는 것, 복잡하고 어려운 것없이 간소해 보이는 그들의 관계였지만 가족애가 부족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그 어렵다는 고부관계. 우리의 고부사이도 그저 가족이라는 이름 하나로 부담없는 관계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의를 갖추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형식의 무게가 본질을 눌러서는 안될 일일텐데, 중요한 것은 그들 사이에 흐르는 존중을 지키는 일일텐데. 그자리에 서서 왠지 모를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건 왜일까.



윤의 집앞 나무가 참 예뻤다.


 낯선 땅에서 남편 하나를 믿고 이민의 삶을 택하고 살아가는 동안 외롭고 힘든 일이 많았을 친구에게 따뜻한 가족들이 생긴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역시 그의 가족들을 좋아했고 그들 사이에 흐르는 온기가 나를 데웠다. 다행이었다. 친구가 잘 살아가고 있어서.  


이민의 삶을 산다는 것

 시댁 식구들이 돌아가고 나서 윤은 집 앞 바닷가를 산책하자고 했다. 더블린의 클론타프에 위치한 윤의 집은 바닷가를 끼고 있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 켠에는 주택들이 즐비하고, 또 한 켠에는 바다와 잔디가 펼쳐진 곳. 그곳은 고요하고 평온해보였다. 다트(전철)로 한 정거장만 지나면 북적거리는 중심지인데 이렇게 조용하고 한적한 주거공간이 연결돼 있는 것이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도심에 살면서 집앞에 바다가 펼쳐진 곳에 사는 기분은 어떨까.


집에서 바다가 바라보이는 기분을 상상해봤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이민의 삶을 꿈꾼 적은 없었다. 여행을 했던 많은 곳에서 머물기를 원한 적은 있지만 정착의 삶은 또다른 문제였다. 누구보다 환경에 적응을 잘하던 윤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와 나누던 대화 속에서 윤은 자주 고국에 사는 일이 행복한 것이라며 그리워하곤 했다. 아일랜드에 머무는 동안 윤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곳에서 연을 맺은 한국사람들의 이야기. 그곳에서 간호사를 하는 사람, 아일랜드에서 결혼했지만 독일로 이민가게 된 부부, 그곳에서 장사를 하는 사장님의 이야기. 나름의 방식으로 멋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의 가슴 한켠에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하지만 윤과의 대화에서, 윤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또 아일랜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윤의 생활이 안심이 됐다. 가족적인 분위기, 투박하지만 정과 흥이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 화려하지는 않아도 자연이 주는 멋과 소박한 정겨움을 그곳에서 느꼈다. 만약에 이민의 삶을 택해야 한다면 아일랜드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다시 만났다, 그녀가 살아 온 더블린 땅에서.


 우리는 차를 세워두고 바다를 향해 걸었다. 이제야 친구와의 재회가 실감됐다. 바다로 향해 걸으며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니, 여기가 윤이 종종 데이빗과 산책중이라며 보내오던 사진 속 그곳이라는 걸 알았다. 가족끼리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지만 북적거리지 않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혹은 휴일의 아침에 부부가 이렇게 집앞을 산책하며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꽤나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풍경이 너무도 고요해서, 자연뿐인 그 공간에서 서로의 말에 온전히 집중이 될 것 같았다.


 10년 전 같은 때, 같은 곳에서 서로 다른 곳으로 떠났던 우리. 그리고 지금, 10년동안 그녀가 살아온 땅 위에 우리는 함께 서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10년 전 그때처럼 웃었다. 데이빗 그리고 언니와 함께 새로운 만남으로.  


 차갑지만 청량한 바람이 남아있던 피곤까지 쓸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새 더블린에서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 메인과 글에 담긴 사진은 아일랜드 여행 중에 찍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의 불청객 - 아일랜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