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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일엔 이가체프 Feb 16. 2016

여행의 불청객 - 아일랜드

몸아, 아프지 말아 줘.

여행의 불청객

 여행을 하면서 생기는 좋은 변화 중 하나는 웬만한 불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러나 갑자기 몸에게 닥치는 통증의 불편은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반갑지도 않은 불청객이다. 여행길에서 태풍에 위협을 받은 적도, 출발 당일 공항에서 결항 소식을 접해야 했던 적도, 그래서 그자리에서 나라를 바꿔 당일 발권을 하고 극한의 즉흥여행을 떠난 적도 있었다. 평소라면 질색했을 환경의 잠자리도, 툭하면 철도 파업에 철로공사 등의 문제로 계획이 틀어지는 일도, 크고 작은 변수를 만나 불편을 맞닥뜨리는 순간이 많았지만 그런 순간마다 짜증보다는 차선을 궁리하는 데 집중했다. 여행은 즐거워야 했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는 생각은 이미 벌어진 상황에 미련 따위 접어두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즐길 수가 없는 것은 몸이 아파 생기는 불편이었다. 그것은 가장 극복하기 힘든 변수였다.


멀고 험난한 아일랜드행

 아일랜드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했다. 직항이 없어 경유를 해야 했으므로 실제 경로보다 길기도 했고, 아랍에미리트 항공을 선택했기 때문에 두바이를 경유해야 했다. 경유지 대기는 3시간으로 긴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19시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여기까지는 '아일랜드로 가는 길은 멀었다'로 정리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험난했다'는 데 있었다. 그 문제는 나의 컨디션이었다.


전조 증상

 떠나기 전, 그 무렵 나의 회사생활은 최악이었다. 오래 다닌 회사에서 최고(?)의 과제를 맡아 최고의 난제를 풀어나가던 때, 칼퇴주의자였던 내가 자발적으로 매일 밤 12시에 집으로 기어 들어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별보고 나와 별보고 들어가는 수험생 같았던 때. 그 무렵 서점에서 제목만 보고 홀리듯 손을 뻗었던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라는 책 제목처럼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말 그대로 몸과 정신이 혹사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떠나기 전날까지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생활을 하다가 기어이 떠나기 이틀 전 두통으로 응급실에 가야 했다. 스트레스 관리와 휴식을 권하던 의사선생님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곧 여행을 가거든요. 아일랜드로."


준비랄 것 없이 가볼만한 곳을 적어 본 여행 준비의 흔적
떠나는 방식

 떠나는 날에도 나는 회사에 갔다. 업무가 바쁘기도 했지만 그것은 내가 제법 좋아하는 여행의 출발 방식이기도 했다. 장거리 여행을 저녁 혹은 밤비행으로 떠날 때면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떠나곤 했다. 휴가를 반나절 아끼는 것도 있었지만, 업무를 하다가 공항으로 떠나는 퇴근길의 쾌감이 좋았다. 오래된 광고 카피인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는 말이 피부까지 와 닿는 순간. 숱한 퇴근길에 광화문을 지나는 수많은 공항버스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순간 올라타고 싶었는지. 온몸에 업무의 고단함이 밴 채로 여행자로 돌아서는 순간의 짜릿함이 있었다. 그것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의 만족이었다.

 단지 이번 여행길은 며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탓에 장시간 비행에 대한 걱정이 조금 들었지만 곧 괜찮아 지겠지 싶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이번 여행의 동행자인 언니를 기다리는 동안, 가뿐한 기분만큼 나의 컨디션도 회복되고 있었다.


이것은 슬픈 사진이다. 이것은 19시간의 비행에서 제공된  네 끼의 식사 중 처음이자 마지막 끼니가 되었다.
아프기 시작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 비행을 책임질 에미리트 항공은 내가 이용해 본 유럽행 비행기 중에 제법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어느새 기내식이 준비되고 있었다. 처음 맛보는 중동의 기내식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은 딱 거기까지였다. 기내식을 거의 먹었을 무렵 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명치에 통증이 와서 조금 참아보다가 상비약으로 챙겨 온 약을 한 알 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명치를 콕콕 찌르는 증세가 심해졌다. 계속 참아보려 했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승무원에게 말했다. 승무원은 나를 승무원석에 앉히고는 이것 저것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아픈지, 탑승 전에 무엇을 먹었는지, 아픈 정도를 10까지 둔다면 어느 정도인지, 내가 먹었다는 상비약은 무엇인지. 대강 이런 것들을 물어본 후 기내 상비약을 내게 건넸다. 나는 여전히 승무원석에 앉아 있었다. 승무원들이 돌아가며 내게 와서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괜찮은지 물었다. 그들은 아픈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따뜻한 물을 페트병에 담아 배에 대게 하거나, 진저에일을 조금 마셔보라며 건네기도 했다. 시간은 더디 가고 야속하게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들은 담요를 깔아줄테니 누워보겠느냐 했지만 명치 아픈 데 도움되는 것 같지는 않아서 앉아 있겠다고 했다. 겨우 이륙한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상태였다.


기어이 탈이 나고 말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는 동안 통증은 더 심해졌고 승무원은 메디컬 팀에 연락을 취할지 내 의사를 물었다. 메디컬 팀을 호출하면 지상 팀과 연락을 해서 전문 의료진의 처방된 약을 받을 수 있고, 혈압 등의 간단한 체크와 기록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처방이 아닌 일반 의약품만을 줄 수가 있다고 했다. 상비약을 먹고도 호전되지 않았던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그들은 여러 가지 기계를 가져와 혈압을 체크하고 내 상황을 기록하며 분주하게 연락을 취했다. 원래 가끔씩 명치가 아픈 적이 있어서 검진을 받으면 늘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들어왔기 때문에 건강에 큰 걱정이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통증이 전보다 심했고 장시간 폐쇄된 공간에서 몸에게 오는 통증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하다 내린 결론으로는 유독 강했던 에어컨 바람과 기내식으로 나온 차가운 샐러드에 일시적으로 위경련 같은 것이 생긴 게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그들은 내게 또 한 번 약을 주었다. 명치가 아픈 탓인지 현기증까지 나기 시작했다.


아, 제발 아프지 말아 줘.


 승무원 대여섯 명이 나를 둘러싸고 섰다. 나를 전담하던 나이 많은 남자 승무원이 내게 최종 목적지가 어디냐 물었다. 나는 더블린이라고 말했고, 순간 마치 내 입에서 금기어가 터져 나온 듯이 그들은 일제히 '오우!' 하고 탄식을 터뜨렸다. 그래, 더블린은 멀었다. 지금 두바이까지도 대여섯 시간이 남았는데, 두바이에서 더블린까지 무려 여덟 시간이 넘는 비행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갈수록 태산

 잠시 후 승무원이 알림사항을 들고 내게 왔다. 몇시간 뒤 두바이에 도착하면 두바이 공항 병원에 호송될 것이고 의사를 만날 것이라고 했다. 의사의 진료 후 내 상태에 따라 예정대로 더블린행 비행기를 탈 수도 있고, 상태가 좋지 않으면 공항 밖의 병원으로 호송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라는 그 최악의 상황까지 포함한 경우의 수를 들어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몸의 통증도 걱정을 막지는 못했다. 공항 밖의 병원으로 가게 된다면 건강보험도 없는 외국인의 진료 문제, 환승해야 하는 더블린행 비행편의 문제, 아무것도 모르고 공항에 마중나올 준비를 하고 있을 데이빗(친구 남편)의 얼굴까지 떠올랐다. -더블린 공항에 친구의 남편이 혼자 마중을 나와 있을 예정이었다.- 공항내 병원으로 간다고 해도 시간이 얼마 걸릴지는 미지수인 데다가 하필이면 짧은 경유 시간이라 좋아했던 것을 도리어 걱정해야 하는 상황. 제시간에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이후 문제는 어떻게 하고 지불 문제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인지. 갈수록 태산이었다.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언니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승무원은 공항병원 진료비는 지불하지 않아도 되며, 혹시 다음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비행기값은 지원이 되지만 발권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했다. 두바이부터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승무원들은 실시간으로 내 상태를 체크했다. 그사이 두바이까지 약 한 두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고, 나의 통증도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아직 현기증이 있기는 했지만 처음에 비하면 몸상태가 회복된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좋아졌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승무원에게 상태가 좋아져도 의사를 꼭 만나야 하는지 물었고, 상태가 호전되어도 비행중에 아팠기 때문에 일단 의사를 만나야 하고 그것이 항공사의 책임이고 의무라고 했다. 두바이 공항에 착륙하면 비행기 게이트 앞에 병원으로 호송하기 위해 의료 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두바이 공항에서 생긴 일

 시간이 다시 흘러 두바이공항의 착륙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현재 기온과 날씨를 알리는 기장의 방송이 끝나고 곧이어 안내방송이 나왔다. 현재 기내에 환자가 있어 지금 게이트 앞에 의료 팀이 기다리고 있으며, 환자가 가장 먼저 내릴 수 있도록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방송이었다.

 그렇다. 그 사람이 나였다.

 짐을 내리려고 움직이던 사람들은 방송을 듣고 일제히 주변의 환자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뭔가 민망해진 나는 그게 내가 아닌 양 그들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싶었으나 나를 전담해줬던 남자 승무원이 친절하게 나에게 다가왔고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에스코트했다. 몸 상태가 호전되면서 정신은 더욱 또렷했기 때문에 집중되는 이목에 민망함이 몰려왔다. 하필이면 내가 탄 항공기는 A380기. 무려 400명이 넘는 승객들이 일제히 나를 위해 기다려주는 이런 망극한 상황을 뚫고 게이트를 나서니 정말 그 앞에 두 명의 의료진이 이송베드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무원은 그들에게 내 상태를 간략히 전했고, 그들은 나를 이송베드에 눕히려고 했다. 걸을 수 있으니 괜찮다는 나를 한사코 말리며 베드를 접을테니 앉아서 이동하자고 했다. 그러고는 간단한 혈압 검사와 채혈을 했다. 항공기의 승무원들이 내게 와서 '굿럭'을 외치며 인사를 건넸다. 장시간 나를 챙겨 준 그들의 친절함이 미소 담긴 인사에 고스란히 전해왔다. 그리고 나는 이동식 의자에 앉은 채로 어디 있을지 모를 공항병원으로 호송됐다.


 걸어만 다닐 줄 알았던 두바이 공항을 바퀴달린 의자에 앉아 두 명의 호위를 받으며 지나쳐갔다. 이런 상황은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일이라 생경하면서도 이방인으로서의 긴장감을 어쩔 수가 없었다. 일반인 제한 구역을 통과하고 화물 엘리베이터 같은 것을 타며 밖으로 나갔다가 안으로 들어가는 복잡한 길을 지나 여기가 병원인가 싶은 어떤 곳에 도착했다.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나를 맞았고, 그녀는 내게 오늘만 해도 몇 번이고 반복돼 온 질문을 했다. 문진이 끝나고 여자는 나를 옆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또 한 명의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제서야 이 사람이 의사고 여자는 진료 전 상담을 해 주는 사람이었구나 생각했다. 또다시 의사의 똑같은 질문과 매뉴얼 같은 나의 대답이 이어졌다. 구토와 설사도 없었고, 열도 없는데 단지 명치가 아플 뿐이며 그것도 지금은 통증이 거의 없다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정말 괜찮은지를 재차 묻던 의사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진료 기록서를 건네며 잘가라고 했다. 그리고 좀전에 나를 문진했던 여자가 또다시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더니 처방된 약을 내게 건넸고, 나는 그 약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병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병원에서 나가는 길은 아까의 의료 팀이 안내했다. 또다시 창고같고 미로같은 통로를 지나고 지나 면세구역으로 통하는 곳에 다다랐을 때, 그는 내게 웃으며 잘가라는 인사를 건넸다. 마치 해방을 알리는 구원자의 얼굴 같았다. 드디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면세 구역의 형상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 기분이 뭐랄까. 길고 긴 음지의 터널을 지나 멀리서 비춰오는 양지의 한줄기 불빛을 발견한 것처럼 깊은 안도감이 들었다.


 다행히 더블린행 비행기는 놓치지 않았다. 예정대로 비행기에 올랐고, 앞으로 더블린까지 긴 비행을 해야 했지만 한 고비를 넘긴 기분에 안도감이 들었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컨디션에 현기증이 계속 나는 탓에 기내식은 손도 대지 못했지만 어쨌든 나는 더블린행 비행기에 올랐고, 예정대로 더블린 공항에는 데이빗이 나와 있을 것이었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더블린, 극적인 만남


 착륙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현재 기온과 시간을 알리는 기장의 목소리가 이렇게 달가운 것도 처음이었다. 마침내 나는 더블린에 도착한 것이다. 모험의 끝에 만난 지상 낙원처럼 더블린 땅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입국 게이트가 열리고 멀리 데이빗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윤에게 내 상황을 전해 들었던 데이빗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금은 괜찮냐고 물었다.


응, 괜찮아.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무사히 두 발로 더블린 땅을 밟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아.


 데이빗의 차를 타러 공항을 빠져 나왔다. 더블린의 공기는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차가웠다. 매섭도록 차갑게 부딪치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릴만큼 청량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나는 안도의 숨을 뱉었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에서 차가운 공기를 뚫고 쏟아져 내리는 태양의 빛이 강렬했다. 잔뜩 움츠린 몸으로 쏟아지는 정오의 햇살이 바람에 차가워진 피부를 감쌌다.



- 아일랜드행 상공에서 생긴 일에 대한 기록


* 메인과 글에 담긴 사진은 아일랜드 여행 중에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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