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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일엔 이가체프 May 17. 2016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듣고

글쓰기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았다


 오늘 아침 좋은 소식이 있었다. 각종 뉴스를 통해 그리고 브런치 메인을 통해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국의 작가 소식이 흘러나왔다. 기분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같은 한국인으로서 기쁜 일이기도 했지만, 나에게 기분 좋은 소식이었던 이유는 한국 작가의 글이 세계적인 문학상을 시상하는 자리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 보다는, 수상을 계기로 좋은 글이 우리나라 뿐만이 아닌 세계를 향해 흘러가게 되었다는 데 있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한강이라는 작가의 글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세계 각지에서 더욱 많은 교감이 탄생할 것을 생각한다면 무척이나 설레는 일일 것이다.


 더불어 이번에는 번역가인 데버러 스미스가 공동 수상을 하게 됨으로써 다시금 번역의 힘이 조명되고 있다. 번역서적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특히 번역된 문학 작품을 신경써서 읽어 본 사람이라면 번역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 잠시 번역사 편집부에서 일하며 윤문을 했었다. 타인의 글을 윤문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단순히 틀린 A를 올바른 B로 바로잡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학작품일 때는 더욱 민감하고 예민한 일이 된다. 일을 하며 수많은 번역가의 글을 만났는데, 그때 나는 번역이라는 것이 이토록 치밀하고 섬세한 감성과 심리를 요하는 작업이었던가 생각했다. 그 전까지는 번역이라는 것을 문자를 바꿔 옮기는 정확성의 문제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러나 좋은 번역가는 원작자가 언어에 담아낸 심리와 감성을 헤아리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하고 그것을 또다른 문자에 그대로 녹여내는 표현력이 필요했다. 그야말로 제대로 읽고 제대로 쓸 수 있어야 했다. 또한 문학서의 번역가에게는 문학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결코 단순하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말이 조사 하나, 억양 하나만으로도 어감이 달라지는 것처럼 번역이라는 것은 매우 정교한 시선과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내 말을 누군가가 제 3자에게 다른 뉘앙스로 전하고 있다면 나는 매우 억울하고 답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전해 받은 사람이 나를 직접 만날 일이 없다면 그 사람은 끝내 내 의중을 전해 받지 못하고 만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 한 사람의 언어를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는 것은 세상과 또다른 세상이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이다. 그만큼 번역은 중요하고도 힘 있는 일일 것이다.


 나는 이번 수상 소식을 빠르게 지나치지 못했다. 좀 더 머물면서 오랫동안 바라보고 또 생각했다. 이것은 소설가로서, 번역가로서, 묵묵히 글을 쓰고 있는 수많은 작가로서 써내려가는 글에 대한 의미가 담긴 소식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그 글이 어딘가로 흘러들어가 독자에게 읽힌다는 것에 대해, 그 작업의 무게와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세상을 담아내는 일이고, 누군가는 그 세상을 전하기 위해 담아내는 일이며, 그렇게 하나의 세상이 또다른 세상과 만나는 일이다.


 뉴스에서 두 사람의 인터뷰 장면을 보았다. 언젠가 '빨간책방'에서 한강 작가가 초대된 적이 있었는데 매우 차분하고도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났다. 한 자 한 자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사람을 집중하게 했다. 오늘 두 사람의 인터뷰 가운데 조용히 가슴에 닿은 말이 있어 적어본다.


 "묵묵히 조용히 글을 쓰고 있는 동료 선후배 작가들을 지켜봐 주시면 정말 좋겠다."(한강)


 "전세계 문학작품들 중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영어권에서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세계적인 작가들이 있다."(데버러 스미스)



* 메인 사진은 남산을 걷던 중에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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