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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일엔 이가체프 Oct 15. 2017

언제부터 어른이 되었을까

채널을 돌리다가,

 TV에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어떤 난관에 부딪혀 힘들어하며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에게 엄마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생길 많은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엄마는 딸에게 성공을 바라는 것보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쉽게 포기하는 아이가 되지 않기를 바랐고, 의지를 갖고 부딪쳐보는 과정을 소중히 할 줄 아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인생의 선배로서 진심어린 조언 그리고 너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예쁜 사람인지에 대한 마음을 딸에게 전했고 엄마의 진심이 아이에게 닿은 걸까. 아이의 두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그래, 저럴 때가 있었지. 저때는 저렇게 방향을 제시해주고 넘어지는 걸 붙들어주면서 먼저 가보니 이런 게 있더라며 충고도, 조언도 참 많이 들었었지. 잔소리로만 생각했던 수없는 이야기들, 마치 인생의 가이드라인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저 똑같은 소리로만 들리던 많은 말들을 지겹다고 느낄 만큼 들었어. 그때는 그런 말 없어도 나 혼자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얼른 성인이 되어 마음껏 살아보고 싶었지. 그래, 그때는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것은.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 시작점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제 나는 어른이 되었다. 어디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누가 봐도 당연한 어른의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그렇게 바라던 혼자서 해 나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제 앞가림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앞가림을 잘 한다는 것이 참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나에게 인생에 대해 지겹도록 조언과 충고를 전하던 어른들은 내가 어른이 되었으므로 더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인생의 선배는 여전히 많고 마음 나눌 동료도, 친구도 많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그것이 마치 불문율인 것처럼 서로에게 더이상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것은 자칫 자존심을 건드리는 주제 넘은 간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며, 자신의 삶을 챙기기도 바빠 생각보다 우리는 남 일에 그다지 관심을 쏟지 않는다. 어른이 되니 고민의 깊이를 드러내는 것도, 힘들다고 우는 것도 왠지 모르게 흠인 것만 같아 속으로 삼킨다. 이제는 넘어져도 의연하게 일어나 흙을 털고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어른이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는 오직 열정으로 보였던 똑같은 행동도 나이가 들어서는 무모함으로 비춰지기도 하는 것이 가끔은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른은 으레 그런 것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쏟아지던 관심과 걱정의 잔소리가 줄고 이제는 내 안의 소리들이 요동을 친다. 어린 시절엔 나의 질문을 받아줄 어른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 많은 질문들이 나를 향해 돌아온다. 대인관계는 더욱 넓어졌지만 공유할 수 없는 문제가 많아졌다. 이상할 것도 없고, 그다지 불만을 느낄 것도 없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고독한 일이다.


그땐 미처 몰랐던 것들

 우연히 TV를 보던 나는 문득, 그시절의 어른들이, 그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잘못하면 혼을 내고 어렵다고 말하면 방향을 잡아주던, 이건 이렇게 해야 하고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좋은 거라고 일러주고 알려주던 어른들. 모르겠다고, 어렵다고, 알려 달라고 물어도 자존심 상할 것 없던 시절. TV 속 눈물 흘리는 아이를 보며 그시절이 그립다고 느낀 것은 그저 지나간 것들에 대한 기억의 미화일 뿐인 것일까.


 다시 돌아간대도 어린 내게 어른들의 말은 듣기 싫은 잔소리로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알겠다. 어린시절 나를 위해 쏟아지던 어른들의 잔소리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보호를 받고 있었는지를. 간혹 내 속도 모르는 소리 같아 야속함에 얼굴을 찌푸려야 했지만 그래도 그것이 애정이었고 관심이었음을.



**사진은 독일 여행 중에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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