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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검 Mar 17. 2023

재미있는 연변말 8탄-거리마

문장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자료들을 찾아보게 된다.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지나 않는지, 본래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씌어 지지나 않았는지, 확인에 재확인을 하면서 쓰려고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강대국사이에 끼여 예로부터 굴곡지고 수난 많던 우리 민족의  역사만큼 우리의 문화에도 그리고 언어에도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외족의 철발굽이 조선반도를 밟을 때마다 그 민족의 풍습과 문화, 언어가 백의민족에게 섞이게 되었으며 지어는 국부적으로 혈통까지 조금씩 바꿔놓았다.


근현대에 우리 민족을 말리려고 했던 일본은 앞에서 이미 말했지만, 그전에 의식하지 못했던 또 다른 나라가 있다.


이번에 "거리마"란 연변말을 통해  풀어쓰려고 한다. wordrow에 의하면, "거리마"란 귀주머니, 즉 "네모지게 지어 아가리께로 절반을 세 골로 접어 아래의 양쪽에 귀가 나오게 만든 주머니"를 가리킨다.


신기한 것은 이 말은 연변, 및 함경도 등지에서 사용한다. 38선만 넘으면 아예 비슷한 발음이 없고 조끼주머니 혹은 기주머니를 많이 쓰는 같다.


귀주머니에 관한 각지 사투리는 아래 사진을 참고하기 바람.


사진 1. wordrow에서 캡처한 사진


왜서 38선을 지나면서 똑같은 용어가 완전 다르게 불리 울까?

혹시 70여 년 전 발생한 우리 민족의 아픔인 625와 관련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절반은 맞는 말이다. "거리마"는 625 전쟁 배후였던 구 소련과 관련되어 있다. 러시아어인 карман(발음, 카르만)에서 변화되어 왔다. 물론 몽골어에서도 KAPMAH란 용어가 있어 호주머니를 가리키지만, 첫째로는 칭키스칸이 유라시아대륙을 휩쓸 때 그 복장에 네모난 귀주머니가 없었고, 두 번째로는 그때 전해 내려 온 언어라면 당연히 제주도를 비록 한 남쪽에서도 상당수 사용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어인 карман이 구 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은 몽골이나 조선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사료된다.


우선적으로 구한말  천재지변과 일제와 지배계급의 가렴주구로 함경도 사람들 중 일부가 연해주로 이주하면서 생활하는 과정에 러시아어와 함경도어를 섞어 사용했을 것이고, 후에 김일성이 관동군에 밀려 1940년 2월 좌우에 연해주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 조선에서 온 청년들로 소련원동방면군 제88독립보병여단이 조직되며, 1945년 8월 소련이 관동군을 공격하고 그 후 일본이 투항함에 따라 김일성은 북조선으로 들어가게 된다.


많고도 많은 러시아어에서 왜 하필 "거리마"만 지금껏 꿋꿋하게 자리를 잡고 있을 까.


이 대답에 앞서 1930년대에 일본인이 그렸다는 시국도를 한번 살펴보자.

중국 동북 삼성 곳곳에 설치된 철도가 보이고  철광 탄광에서 작업하는 사람, 농사를 짓고 벌목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주변에서 혹은 부러운 눈길로 혹은 당장 빼앗을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복장이 구 소련군 복장이다. ㅎㅎㅎ


사진 2.  구글에서 검색한 "支那漫画鸟瞰图" , 동북삼성과 조선반도 국부 캡처


실제 제정리시아시절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동방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다. 1865년 애훈조약, 1860년 북경조약으로 흑룡강이북과 연해주일대를 포함한 150만 평방킬로미터의 땅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서 동북삼성까지 항상 기웃거렸다. 결국 비옥한 땅과 수많은 자원, 그리고 인구와 항구를 둘러싸고 1904년에 일본과 전쟁을 치르다가 패배당한다.


침을 삼키고만 있다가 마침 기회가 돌아왔다. 영국과 미국이 소련을 대일전쟁에 참전시키기 위해 1945년 2월 얄타협정을 체결한다. 독일투항 후 3개월 사이에 소련이 대일전쟁에 참가한다. 그 대가로 1904년 러일전쟁으로 잃은 동북삼성에 대한 권한과 이익을 챙겼다. 쿠릴열도와 사할린을 뜯어가지고, 여순을 해군기지로 쓰며 대련항에서의 우선이익을 보장, 이외 동북 삼성에 설치된 철도 관련 우선이익을 챙겼다.


독일과의 전쟁에서 국토가 황폐해진 소련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동북 삼성을 후방기지로 삼아 미친 듯이 개간한 덕분에, 동북 삼성은 당시 괄목상대한 경제적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중국 전체의 1/9의 땅과 1/10밖에 안 되는 인구로, 중국 전체 석탄생산량의 49.4%, 주철의 87.7%, 전기의 93.3%, 탄산 69%, 시멘트 66%, 기계 95%를 차지하였으며, 당시 중국 전체 GDP의 85%를 차지했다고 통계되어 있다.

이러한 자원들을 윤활하게 움직이기 위하여, 일본은 철도와 도로 등에도 많이 투자하였는데, 동북 삼성의 도로 총연장 길이가 6만 킬로에 달함, 근데 1949년 중국 전체의 도로 총연장 길이가 8만 킬로 좌우밖에 되지 않았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소련 입장에서는 일확천금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실제 소련은 1945년 9월부터 1946년 5월까지, 7개월의 기간에 동북 삼성에 대한 미친듯한 수탈을 진행하였는바, 공장, 광산, 전기발전소 등의 설비 자원 등을 강제로 철거하여 소련에 옮겨갔다.

사진 3. 당시 소련이 털어가서 거의 비다 싶이 된 공장


이러한 수탈이 민간에서도 수없이 많이 진행되었고 겁탈당한 여성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대낮에 공공연하게 진행된 강도질에 보다 못한 당시 송화강구 사령원-卢冬生이 따지고 들었다가 소련 군 사병한테 총살당하는 일이 발생했으니 그때 혼란함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친할머니의 말을 빌면, "일본애들도 나쁘지만 러시아애들은 더욱더 나빴다"

7개 월의 시간에 동북 삼성을 휘몰아쳐 간 러시아의 약탈이 아마 거리마란 단어의 고착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칼 든 강도들이 가장 사용하는 단어가 "호주머니 것 다 내놔" 하는 것처럼, 그때 약탈에 참가한 러시아 병사가 가장 잘 쓰는 말이   "거리마", "거리마"가 아니었을 까 상상해 본다.


요즘 시국에 러시아에 관련 글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연변말 "거리마"를 찾아 자료 찾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온 같다.


언제까지나 역사는 역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언어도 민족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  

통계를 보니 연변의 전체 인구가 2021년 202.94 만으로 2020년보다 1.72만 명 줄어들었다고 한다. 조선족  인구는  7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5.6%로 연변자치주가 성립되었을 때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러시아어에서 기원해서 연변말로 변한 "거리마"를 사용하는 잠재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상 재미있는 연변말 8탄-거리마였습니다. 재미있게 보시고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백검


2023년 3월 17일 저녁 10시 14분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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