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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검 Mar 20. 2023

재미있는 연변말 9탄-도라쓰

우리말에 밑도 끝도 없다는 말이 있다.

연변말에도 그런 말이 하나 있어서 오늘은 그것을 쓰려고 한다.


"도라쓰", 악수를 가리키는 연변말이다. 발음을 피뜩 들어보면 일본어 같기도 해서, 여태 착각했는데, 찾아보니 그것도 아니다.

일본어 발음도 악슈(Akushu)로 오히려 우리 표준말과 비슷하다.

러시아어로 рукопожатие(rukopozhatiye,프로커포자티예)와도 발음이 전혀 다르다.


혹시 청나라를 세워 중국을 호령하던 만족이 쓰던 언어인지 궁금해서, 만족어사전을 찾으니 이미 인터넷에는 없다. 현재 만족언어를 완벽하게 사용하는 인구가 50명 좌우밖에 안 된다니 사전도 변변한 게 없는가 보다 하는 아쉬움.


결국은 악수가 어떻게 "도라쓰"로 변했는지는 오리무중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악수의 유래부터 털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쳐 조리해 봐야 할 뜻 하다.


우선 악수가 원시인들이 들판에서 서로 만날 때 상대방에 대한 공격의사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창을 던지고, 빈손을 보여주던 데서 기원했다고 한다.


마치 강아지가 땅바닥에 훌러덩 누워 배를 보여줌으로써 주인에 대한 충섬심이나  복종 등을 표시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 할까.


그러던 방식이 진화되면서, 서로 오른손을 잡고 아래위로 혹은 좌우로 가볍게 흔드는 방식으로 변했다고 한다. 물론 그 의미도 보다 진화되어 합작, 반가움, 동의 등 여러 가지 의미를 표현하게 된다.  


사진 1. 헤라클레스와 악수하는 안티오코스 왕을 묘사한 arsameia 조각상, 기원전 1세기 경, 출처: 구글 검색


사람과 사람이 다르듯이, 시간과 장소 그리고 만나는 주체와 그 성분들이 다름에 따라 그 의미가 미세하게 달라지는 게 바로 악수가 아닐까 싶다.

물론 강아지도 착하고 선한 강아지가 있고, 미친개나 쌔스개가 있듯이 인간세계에도 가끔 영혼이 오염된 짐승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다. 밖으로 웃으면서 그 뒤에 칼을 품은 이들이다. 이 들에게는 "도라쓰"가  握手가 아니고 恶手로 보인다.



사진 2. 악수하면서  등 뒤에 칼을 숨긴 사람들. 출처: 구글 검색



그러면 악수는 언제쯤 보편화되기 시작하고 아세아에 전파되었을까?

평등한 개체끼리의 만남, 합작을 의미하는 악수라, 넴루트산 정산에 있는 안티오코스 1세와 헤라클레스의 악수도 왕과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의 만남이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왕과 일반 백성이 악수를 한다? 이것은 중국, 한국, 일본 그리고 중세기 유럽에서는 절대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왕의 권위는 하늘에서 온다고 기막힌 쇠뇌 소설을 쓰는 역대 임금들이 자기의 신성함을 더럽히는 악수를 할리가 있겠는가, 오히려 일반 사람들이나 부하들한테 보이지 않게 꽁꽁 싸매게 옷을 입어 그 신비함을 극대화했을 것이다.


18세기말 프랑스 시민혁명이 폭발하고, 왕권신수설(君权神授说) 같은 얼토당토않은 일들이 점차 그 진실이 공개되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대신 사람들을 일깨워 주면서 악수가 자리를 잡고 동시에 유럽에서부터 재빨리 보급화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악수는 언제 동아시아 더 나아가 조선반도에 등장했을까?

번다하고 거추장스러운 인사치레가 왕창 많았던 봉건시대 번영기에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서만 해도, 만났을 때 인사로

고두례(叩头礼): 머리 조아리는 인사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만났을 때, 백성들이 귀족들을 만났을 때 하는 인사로, 고두례는 또 일궤삼고(一跪三叩),이궤육고(二跪六叩), 삼궤구고(三跪九叩)로 나뉨.

항두례(顶头礼): 오랜 부부사이에 만났을 때, 여자가 남자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면, 남자는 왼손으로 여자를 부축이고 오른손으로 여자 뒤통수를 어루만짐.

포견례(抱见礼):서로 어깨를 붙잡고 얼굴을 맞대는 인사법

집수례(执手礼): 만나는 쌍방이 각각 오른손을 내밀어 가볍게 살짝 잡는 인사.

국궁례(鞠躬礼):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

찰견대례(擦肩大礼): 만나면 한 어깨로 서로 비비는 것.

이외 문안인사할 때 하는 인사법, 그리고 이별할 때 하는 인사법 등이 다양하게 있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는 조선의 예의범절은 그 종류와 번다함이 아마 여기에 못지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게다가 조선시대 말기까지 사람들을 양반, 중인, 상민, 천민 4개 계급으로 나누고 관직을 18품 30계 즉 30가지 등급으로 나누어 엄격히 관리했으니, 평등함을 상징하는 악수는 발생하기 더욱더 힘들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답은 결국 하나다. 천주교와 기독교 사상이 조선반도에 전파됨에 따라 자유와 평등사상이 자리 잡으면서 프랑스 시민혁명 때처럼 악수가 하나둘씩 자리를 잡았을 것이고, 19세기 중엽쯤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나라 군함이 조선반도를 침략하고 유럽이나 미국 사신들이 불평등조약 체결 때문에 조정에서 파견한 지체 높은 대신들과 접촉하면서 처음으로 "악수"라는 문화를 고위층에 전파했을 것이다.


유럽군의 두목과 대신이 "악수"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이씨 조선에서 보기 힘든 피부가 하얗고 코가 크며 눈이 파란 오랑캐 복장을 한 인간들이, 걸상에 앉아있다가  형식적으로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요청했을 때, 협상대신은 "이 예의범절도 모르는 또라이새끼, 니 돌았어"하고 속으로 욕했을 것이다.  

"돌았어"애들하고 난생처음으로 반강제적으로 손을  잡히고 흔들렸으니 내심 불쾌하지 않았을까? 마치 아베가 2017년에 워싱턴에서 트럼프한테 손을 잡히고 19초 동안 한 "어색한 악수"처럼,

얼굴은 가식적으로 웃고 있는데 손은 희롱당하는 기분이 들고  내심 불쾌하나 그렇다고 지체 높은 양반 체면에 손을 그대로 빼지는 못하겠고 말이다.


사진 3. 2017년 2월 13일, 백악관 트럼프와 아베의 악수 캡처


"악수"라고 다 같은 악수가 아닌 같다.

여자나 남자나 상대를 잘못 만나면 인생을 조지는 것처럼, 결국 잘못된 도라쓰는 때로는 개인의 이미지를 넘어 나라와 민족을 위태롭게 하는 같다.


이상, 재미있는 연변말 9탄-도라쓰였습니다.

사전에서 조차 찾아보기 힘든 단어여서 마지막에는 상상에 상상의 날개를 달았습니다. 양해하시고 재미 삼아 보세요.



백검.



2023년 3월 20일 오전 0시 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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