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안 Jul 16. 2022

밤볕을 손에 묻혀 두드린 단상들

2022년 7월 14일. 헬싱키에서 오울루로, 그렇게 북쪽으로 향할수록 길어지던 밤의 태양 아래의 기차에서. 퇴고 없는 단상들.




- 사람의 마음에는 불이 있다. 이건 한번 생겨나고 사라지면 다시 생겨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라지면 다시 생겨난다. 사람마다 이것이 사라지는 시기와 방법 등 조건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이 불이 처음 생겨난 모습과 상태 그대로 평생을 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이고 반드시 새 불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불이 사라진다는 것은 불을 태운다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중요한 것은 그 불을 '잘' 태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불을 태운 재마저도 자신의 자산으로, 세상의 거름으로 삼고 누군가는 태우는 행위로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에도 아픔만을 남긴다.

- 주기 없는 듯 있는 듯 찾아오는 (사랑이라고 착각하지만 어쩌면 내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타인의 마음에 대한 집착인) 열병 또한 그 불을 태우는 여러 모습 중 하나라 생각한다. 태우는 시간이구나, 어쩔 수 없는 시기이구나 생각하며 내가 남길 재에 대해 사색할 뿐이어야.

- 내가 느끼는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느낀다. 감정의 책갈피라 할까, 그런 게 많으면 감정에 휩쓸리거나 잠식되는 나머지 성장 없는 감정 소모만 겪는 일을 많이 줄일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책갈피가 모자라면 예를 들어 이성을 향한 어떤 감정을 무조건 '사랑'이라고만 이름 붙이게 될 수 있는데 그것이 진짜 사랑인 경우는 제외한다면 대체로 시간 낭비, 성장 없는 소모만이 될 뿐인 것 같다. 타인의 깊은 사려를 향한 존경의 감정, 자신의 업과 인생을 책임질 줄 아는 이를 향한 배움의 감정,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이를 향한 고마움의 감정 등 책갈피를 잘 살피면 쉽사리 '사랑'이라고 말함으로써 입게 되는 불필요한 소모를 줄일 수 있겠다. 책갈피를 많이 갖고 싶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 마음은 닳아 노인이 되면 마음이 별로 남지 않는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마음은 닳는다는 말에는 어쩔 수 없이나마 동의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 해서 마음이 남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음은 닳을수록 강해지고 닳을수록 다른 어떤 마음도 아닌 그 마음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음이 '강해진다'는 말의 뜻은 어떤 일에도 불굴의 용기를 낸다거나 어떤 일에도 상처받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외려 용기 내기 전, 머무름의 여유를 가질 줄 아는 강함이고 상처받기 전, 상처받더라도 그마저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라는 여유를 가지는 강함이다. '기꺼운' 마음이 강한 마음이다.

- '사람과 공간을 여의는 것이 이력이 됐다.' 한정원 작가가 <시와 산책>의 저자 소개란에 그렇게 썼다. 참 좋은 문장이다. 꼭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 특히 '공간'을 언급한 점에서. 나에게 내가 여읜 사람이란 부족한 내가 떠나보낸, 잃은 사람을 가리키며 나에게 내가 여읜 공간이란 내가 떠나보내지 않았으나 나를 떠난 공간을 가리킨다. 나에게 사람은 미안함과 죄책감, 공간은 서글픔과 그리움이다. 공간은, 내가 마음껏 그리워해도 되고 또 그렇게 해 온 유일한 대상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알고 보면 '크리스마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