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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May 22. 2021

'북적이는' 동네 서점

경주 책방 '어서어서'

'어서어서'의 마스코트 같은 '읽는 약' 봉투. 저기에 책을 담아주신다.

사람이 북적이는 동네 책방을 오랜만에 봤다고 적다가, 사실 처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이 작은 책방과 주변의 책방 몇 곳이 경주를 들를 목적이 된 나 같은 사람은 겸연쩍어질 만큼 황리단길을 여행 왔다가 우연히 들른 사람도 많은 곳이었다.


경주 책방 #어서어서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


어느 지역 책방에 가든 거기에만 있는 책을 꼭 한 권은 사 오려고 하는데, 여기서 '거기에만 있는'이란 인터넷 서점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책이라기보다 그 책방이 큐레이션 했거나 다른 동네 책방에서는 자주 보지 못한 책을 말한다. 책방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고 나만의 의식이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 책을 찾으려면 책방 곳곳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눈높이에, 손 높이에 닿는 책만이 아니라 책장 깊숙이 숨은 책과 그 제목을 찬찬히 따라가는 것. 무릎을 꿇다시피 앉아서 책장 맨 아래칸, 그중에서도 바깥쪽이 아닌 안쪽의 책까지 살피려면 바깥쪽 책을 살짝씩 들어내기도 해야 한다.


제주 #무명서점 에서 그랬듯이, 그렇게 찾은 책이 다른 책보다 내 취향과 가치관에 맞을 때가 더 많고 그렇게 찾은 책 덕분에 '이 서점 사장님과는 좀 맞네ㅋㅋ' 할 때도 많다. 어서어서에서도 책장 맨 아래 칸에서 <서재를떠나보내며> (더난출판사, 알베르토 망구엘, 2018) 를 선택했는데 사장님이 아끼는(?) 책이었을지 궁금하다.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저 주황 의자도 어렵게 구해 의도적으로 배치하신 것임을. 버스 정류장 콘셉트의 쉬어가는 의자.


함께 데려온 또 다른 책 하나는 저자가 이 책방 사장님이고 제목이 이 책방 이름이었다. 서울에 돌아와 이 책을 읽으며 일단은 반가웠다. 책방에서 단박에 내 눈에 들었던, 문학동네 시인선 책들이 색깔별 그라데이션으로 진열된 건 사장님의 '의도'였단 걸 책으로 알게 됐는데 책을 읽기 전 책방에서 먼저 그걸 알아챘었다. 묘하게 교감한 느낌. 실은 자주 가는 서울 #살롱드북 에도 이 시인선들이 벽 한 켠을 크게 메우고 있어 더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문학동네 시인선 도서
위쪽 그라데이션 된 책장도 문학동네 시인선 도서들


책을 읽으면서 그날 내가 이 책방에서 가졌던 질문의 답을 얻기도 했고 그럼에도 다시 질문을 갖게 되기도 했다. 첫 문단에도 썼지만 이 책방에는 사람이 북적인다. 책에 그렇게 관심이 없거나 책방이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는 뜻. 내가 간 그 날에도 "이 책 새 거 있어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었고 (견본을 두는 책방은 잘 없다 심지어 교보문고도!), "책 왜 사, 베개 할 거면서"라고 웃는 다른 사람도 있었다.


내가 '깨어 있어서'가 아니라 책을 둘러보는 마음이 내 나름대로는 애틋하고 분주해서인지 그런 말소리가 귀에 들 때마다 마음에 약간의 소요가 일기는 한다. 책방 곳곳에도 최근에 쓰신 것과 꽤 오래 전에 쓰신 것의 차이만 있을 뿐, '책을 소중히 다뤄달라'는 책갈피가 붙어 있다. 사장님은 책에서 '책을 읽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예의 그리고 책과 책방에 대한 예의'(p251)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더할 말도 뺄 말도 없는 것 같다.


"판매하는 책이에요. 상하지 않게 도와줘요." 책도 상품임을 잊지 말자.


손님이 적잖은 만큼 카메라 셔터 소리도 귀를 자주 울렸는데 이 점은 책을 읽으면서 실은 조금 더 의아해졌다. '어서어서에서 귀에 들리는 소리들은 종이책이 주는 아날로그 감성을 일관되게 이끌어가기 위해서 현대의 기술문명을 가능한 한 배제한 결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분위기 중 하나일 뿐이다.'(p210) 이렇게 서술됐기 때문이다. (난 책방에서 사진을 찍을 땐 소리 안 나는 foodie 앱을 주로 쓴다.)


사장님도 이미 이 지점을 아시는 듯 책의 한 챕터를 할애해 사진(만) 찍고 가도 괜찮은 이유를 설명하셨다. 공간의 매력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각적으로 홍보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독려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로 너무 북적일 때나 얼마간 들뜬 분위기가 감돌 때는 조용히 책을 살펴볼 수 있는 서점이 아닌가 보다 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손님들도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현상이다.'(p128) 라고 쓰셨다.


같이 고민한다는 생각이 들어 또 한 편의 연결감이 찾아왔다. 언젠가 평일의 비교적 조용한 시간에도 방문해보고 싶다.


작가 '가랑비메이커'를 소개한 책갈피. 반가워서 찍어봤다.
책이 많이지면 곳곳이 책장이 된다. 동네 책방의 흔하고 귀한 풍경.
오래된 가구나 도구들이 곳곳에. 직접 구해다 두신 게 대부분이라 한다.
경주를 배경으로 한 엽서, 영화 포스터 등이 다채롭게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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