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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May 24. 2021

아이의 곁에서는

나를 스쳐간 어떤 보호자들

5월 23일 일요일


집 근처 중국집으로 짬뽕을 먹으러 갔다. 식당 바로 앞이 어린이대공원이다 보니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주변 식당으로 영유아나 초등학교 저학년쯤의 아이들과 그 가족들이 자주 모이는 것 같다. 2층에 위치한 중국집의 입구에 서자 한 남자가 아이들이 먹은 듯 보이는 사탕의
포장 껍질을 손에 들고 있었고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한 뒤 곧바로 카운터의 주인이 "쓰레기 저 주세요."라고 했다. 남자는 굉장히 면구스러워하며 사탕 포장지를 건네는데
손이 닿지 않게 하려는 배려인 듯 포장지를 하나씩 손가락으로 집어 주인의 손에 올렸다. 개수가 많지는 않았다. 남자는 '귀여운 녀석들' 하는 표정으로 아들 둘에게 말했다. "인사해야지. 잘 먹었습니다 하고." 계단을 우당탕 뛰어내려가려던 아들들은 곧장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고
그중 한 녀석은 자기 키보다 높은 카운터에 착 붙어서는 사장님에게 "저는 다섯 살이고~"부터 시작했다. 남자는 "키만 컸지." 하며 웃었다. 음, 자리에 앉아 생각해봤는데
가게를 나서며 가게 주인에게 인사하라고 말하는 어른은 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멋진 어른이었다.

5월 20일 목요일


아르바이트 퇴근 후 밥 먹는 술집 '광장'에서 뜨끈한 사케에 카레 한 그릇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721번 버스를 타면 집까지 곧장 올 수 있어서 편하다. 전날부터 부슬부슬 때때로 흩날리던 비가 그때도 오고 있었다. 날이 쌀쌀해도 요즘은 버스에서 내 자리 쪽 창문을 조금은 열려고 하는 편이다. 코로나 퇴치에 환기가 또 몹시 중요하니까. 버스 창문을 조금 열고서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앞자리의 할아버지가 "창문 열었어? 감기 들어."라고 했다. 자기 옆에 앉은 일곱 살 내지 여덟 살쯤 된 듯한 남자아이에게 한 말이었다. 아이는 자기가 열지 않았다고 했고 할아버지는 이내 창문을 닫았다. 아무렴 어떤가 생각했다. 오랜 시간 바깥에서 몸을 쓰는 일을 한 것 같은 투박하고 거친 손으로. "할아버지, 이제 내려야 돼." 아이의 말에 할아버지는 아이의 손을 잡고 미리 하차 문 앞에 섰다. 두 사람은 정류장에 내렸고 할아버지는 다시 두툼한 손으로 아이의 조그마한 손을 잡았다. 얼마나 귀하고 예쁠까. 저 아이가.

5월 18일 화요일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원에 근무 시작 시간보다 20분은 더 일찍 도착한 날. 근처를 걸어볼까 하며 걸음을 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눈앞으로 마트 카트와 모양은 유사한데 크기는 훨씬 작은, 아이와 짐을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유모차가 지나갔다. 중요한 건 이 유모차는 전동(?)이라는 사실. 슝~ 하는 느낌이 승차감도, 하차감도 좋아 보였다.
(어디서 들었는데 '좋은 차'는 승차감보다도 내릴 때 사람들이 오~ 하며 쳐다보는 하차감이 더 좋은 거라고 했다. 여담이다.) 그 뒤로 공교롭게도 또 다른 유모차가 지나갔다.
내 걸음과 거의 비슷한 속도였고 전동 아닌 보통의 유모차였다. 거기엔 네댓 살쯤 됐을 여자 아이와 그보다 어린 남자아이가 있었다. 동생이 앉고 그 위에 누나가 걸터앉다시피 앉은. 이 아이들의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미래에서 온 것 같네." 편하게 가는 유모차를 본 조금 덜 편한 유모차 주인의 한 마디. "난 힘들어, 너희 데리고 가느라 힘들어."가 아닌, 한 줄의 위트. 나랑 내 동생을 유모차에 한 번에 태우고 언덕길을 오르던, 오르다 한 번씩 서던 우리 엄마는 그때 우리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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