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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May 17. 2021

올해의 첫 나팔꽃

올해의 첫 나팔꽃.


피었다고 할까, 봤다고 할까 고민했다. 내가 본 올해의 첫 나팔꽃이라고 적어야지.


오후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아르바이트를 가려 집을 나선 지 3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니스톱 편의점 앞 대로변에 연분홍색 나팔꽃이 한 무리라고 할 법한 범주 안에

다섯 송이가 피어 있었다. '활짝'이랄 만큼 핀 것도, 곧 다 오므라들 것 같은 것도 보였다. 나팔꽃은 아침에 피어 해가 질수록 오므라든다.


주말 내 이어진 비가 월요일 그 시각까지도 흩날렸기에

나팔꽃잎에는 빗방울이 알알이 맺혔다. 투명한 진주를 톡톡, 얼굴 주변에 치장한 것 같았다.



우산을 들고서 살짝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었다. 아르바이트 하는 곳까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배차 간격이 긴 버스가 곧 오고 있어서 오래 그곳에 멈춰있지는 못했다. 30초도 되지 않을 그 찰나. '첫 나팔꽃'을 알아챘고 두근두근 하는 마음이 얼굴에 번졌고, 사진을 찍었다.


2020년, 작년은 사고가 나듯 나팔꽃이 내 인생으로 뛰어들어왔다. 봄의 막차도 떠나고 여름의 초입에 섰던 어느 시기, 지하철을 타러 가는 걸음에 우연히 채인 나팔꽃이 나를 온통 흔들다시피 했다. 늦가을에는 이제 정말 '마지막' 인사를 해야 했는데 내년에 또 볼 것을 알면서도 코끝이 뭉근해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똑같은 오늘은 없다는 말을 빌려오면 설명이 되려나.


https://brunch.co.kr/@audskd26/57


2021년, 올해의 첫 나팔꽃을 마주하면서 벅차올랐던 건 반가움과 기쁨, 그 자체이다. 아울러 고마움이다. 잊지 않고 찾아온 나팔꽃, 내 눈에 보이도록 인사를 띄운 나팔꽃.


나팔꽃은 보여주었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로써 다른 존재에게 '너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올해의 나팔꽃이 내년을 약속할 늦가을에는 내가 더 이상 이 동네에 없다. 먹먹해진다. 있는 동안 더 부지런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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