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안 Sep 25. 2021

추운 나라에서 생각해 보는 따뜻한 마음

핀란드 오울루에서 읽은 그림책

<The extraordinary gardners> (Sam Boughton, 2020)



파란 테 안경을 쓴 곱슬머리 아이가 몇 가지 화분들에 물을 주고 있다. 다시 보니 이 중 하나는 아직 싹은 트지 않았지만 그 위에 주황색 부리의 새 한 마리를 얹었다. 노란 꿀벌 세 마리가 주위를 날고 풍성한 초록 줄기들이 화분 주변을 에웠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이 아이인 모양이다. 'Extraordinary', 평범하지 않은, 비범한. 이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식물을 잘 키워냈기 때문만은 아니겠지.


이 아이의 이름은 Joe(조). 첫 번째 쪽부터 네 번째 쪽까지 그림은 모두 흑백이다. Joe와 Joe가 살고 있는 공간을 제외하면. 독특하고 '거친' 상상을 하기를 좋아하는 Joe는 바깥의 보통 세상과 조금은 다른 색과 결을 지녔다. 다만 Joe를 둘러싼 환경이 흑백으로 처리되었다고 해서 그게 어둠, 부정, 퇴색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의 중심이 Joe이기 때문일 뿐, 들여다 보면 Joe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색과 결이 있을 것이다. 아니, 있을 수밖에 없다.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중 하나이다.


길을 걸어가는 Joe에게 세상은 상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높은 건물보다 더 높게 자라는 덩굴과 꽃들, 도시 곳곳에서 색색의 형채를 뽐내는 동물들. Joe는 '자신의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소원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하루, 자기 전 읽은 책 한 권이 Joe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


침대에 기대어 펼친 책, 그 위로 알록달록한 초록과 그보다 더 알록달록한 꽃잎이 피어난다. 어떤 책인지 그 이름은 알 수 없어도 어떤 말을 하는 책인지, Joe가 앞으로 어떤 일을 꾸밀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기대를 품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It was full of beauty, colour, scent and song, and it all started with something very small.


온갖 아름다움, 색, 향, 노래 그리고 아주 작은 것들에서 시작하는 그 모든 것들. 그림에서 여린 잎 두 개가 땅에서 싹을 틔우고 햇볕과 비가 이 싹의 키를 하늘에 더 가깝게 해준다. 땅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잎이 더 많아지고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뿌리 또한 더 많아진 나무는 어느새 나비와 새, 꿀벌, 땅에서 자라는 또 다른 꽃들을 품을 수 있게 된다.


다음날 아침. Joe는 집안 곳곳을 누비며 '아주 작은 것'을 찾는다. Joe가 발견한 그것은 바로 사과 씨앗.


심고 물을 주고 기다리고 다시 기다린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마음을 안다. 예전에 집에서 작게 상추를 심고 기다리는데 참 시간이 더디게 가더랬다. 실은 씨앗이 더딘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빠른 거였는데, 아무쪼록 그때는 그랬다.


Joe는 씨앗에 대해서는 어느새 잊어버리게 됐고 다시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 '상상'에 잠겨든다.


씨앗은 어찌 되었을까? 내 상추 씨앗이 그랬듯, Joe의 씨앗도 어느날 문득 싹이 텄다. 작가가 이 씨앗이 점점 자라나 커진 모습을 'GREW'라는 대문자로 표현한 게 재미있었다. 커진 모습 그 자체를 재치있게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만 커졌다는 그 사실에서의 크나큰 기쁨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나무 한 그루가 풍성하게 자라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지만 Joe는 경계 없는 자신의 상상처럼 이 나무 주변도 그렇게 널찍하게 만들어 보기로 한다. 새 씨앗을 심고 그것이 자라고 새 씨앗을 심고 그것이 자라고. 다시 한번 등장하는 대문자의 'BIGGER', 이 페이지에서 Joe는 식물을 가꾸는 사람이라기보다 식물의 한 부분 같았고 식물의 한 부분이라기보다 '자기 자신' 같았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느새 Joe의 정원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본 Joe는 또 다른 일을 실행한다. 자신의 정원으로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기다리는 것을 넘어 자신이 직접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것. 가서 자신의 화분을 선물하는 것.


자기보다 키가 작은 아이에게 준 화분, 키가 큰 어른에게 준 화분, 노인에게 준 화분, 이방인에게 준 화분. 배낭 같은 작은 가방에 화분을 넣은 채 이곳저곳을 들르는 Joe의 눈빛과 미소가 사랑스럽고 뭉클했다. 자기가 어렵사리 기른 화분일 텐데.


화분을 나누어주면서 Joe가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것은 무엇인지, 이런 설명은 없다. 되돌려 받는 것이 Joe의 목적도 아니었고 작가도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 테니까.


나는 주는 기쁨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주기만 할 때의 슬픔도 안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적절하고 올바른 방법'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앞세워 상대가 표현하는 고마움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고서는 괜히 '다음엔 주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것 또한 내 모습이다.


Joe와 같은 인물을 보고 나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나도 저렇게 되어야겠다'와 같은 설익은 마음보다는 '나를 지금보다 더 따뜻하게 대해주어야겠다'는 구체적인 마음이 든다.


내 마음의 온도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마음의 부피도 커지면 다른 사람의 모습도 마음에 담아보게 된다. 다른 사람을 마음에 담아본다는 건 그 사람을 '이해' 한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인데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라본 뒤 다시 내보내어 준다.


'나는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걸 부정하지는 말자. 하지만 거기에만 잠겨 있을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선택을 한 것이니까. 나는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And slowly, over time, with the help of that first tiny seed, Joe's world grew from ordinary to...이렇게 적힌 페이지를 넘기면 이전의 흑백에서 자연의 온갖 색으로 물든 세상이 나온다. 어여쁘고 귀한 것들이 한 사람의 세상을, 또 다른 사람의 세상을 가득 메웠다.


위 'ordinary to...'에서 문장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이 보일 것이다. 아름다움으로 칠해진 그림 바로 옆으로 'EXTRAORDINARY'가 대문자로 큼직이 쓰여 있다. Joe's world grew from ordinary to extraordinary. 평범하지 않은 '상상'을 하던 Joe는 특별한 '현실'을 마침내 만들어 냈다.


EXTRAORDINARY 부분을 들추면 이렇게 가로로 긴 그림이 나온다. 잠시 생각마저 멈추게 되는 순간. 나에게 '황홀경'은 언제나 자연이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기적'을 소원하며 살아가는 이에게 그 단 한 가지의 방법이 있다면 '내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것'이라 말하는 책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핀란드에서 행복한 지 묻는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