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안다는 것의 의미
최근에서야 맛이라는 걸 알았다. 지금껏 미각을 잃었던 거냐면 그건 아니다. 맵고 짜고 단 조미료의 맛 말고 진짜 재료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대학 때 친했던 친구는 항상 먹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었다. “이집이 이건 제일 맛있다”며 “거기나 저기도 다 먹어봤는데 여기 만한 곳이 없다”고 근거까지 댈 수 있는 사람. 반면 난 언제나 ‘아무거나’였다. 먹는 게 다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맛에 일부러 둔감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땐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았으니 가성비 좋게 한 끼 때워지는 것이 음식의 가장 큰 미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식가가 된 들 스스로 비참해지기만 할 뿐. 돈이 없어 맛도 없었다.
당시 캠퍼스 잡지의 학생 에디터로 활동할 때 처음 알았다. 우리나라에서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외에도 인도음식이나 태국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음식점을 취재할 때면 거짓말을 하느라 바빴다. “이곳 반미 샌드위치의 바게트는 다른 곳보다 훨씬 부드럽다”고 쓸 때 베트남음식을 난생 처음 먹었던 것이다. 명색이 원고료를 받는 에디터인데 그냥 “맛있다”고 쓸 순 없었으니까.
음식의 맛을 알게 된 건 요리 덕분이다. 직접 장을 보고 요리하면서 조금씩 재료가 내는 맛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요리를 해보면 알 수 있다. 한 접시를 완성하는 데도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 먹고 싶은 걸 떠올리는 것부터 시장에 들러 장을 보는 것, 재료를 다듬고 그릇을 내는 것까지 전부 요리다.
맛을 알게 되면서 시장 산책도 잦아졌다. 건강한 재료들을 장바구니에 담고 한참을 걷는다. 이제 식사가 살아내기 위해 칼로리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듯, 장보기도 단순히 식재료를 구입하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음식 한 끼를 대접하는 대화의 시간이다. 뭘 먹고 싶은지 되묻는다. 더 이상 “아무거나”라 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든다.
집으로 돌아와 재료를 손질하고 물을 끓인다. 잘 씻어 다듬은 야채들을 끓는 물에 담가 익힌다. 시장에서 직접 골라온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진 채수가 깊은 맛을 낸다. 온전히 나를 위해 내가 준비한 따뜻한 한 끼. 피로를 씻고 위로를 준다. 배를 채우는 것 보다 맛을 느끼는 게 먼저가 되니 즐겁다. 맛을 안다는 건 어쩌면 그 말 보다 더 큰 마음의 깨달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