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과 힙스터 사이
계동은 북촌한옥마을과 창덕궁 사이의 동네다. 한옥 기와 지붕을 얹은 건물에 카페와 식당이 늘어섰다는 점에서 겉은 북촌과 비슷하다. 하지만 디테일은 완전히 다르다. 계동엔 사람이 살고 그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가게들이 있다. 유행을 좇기 보단 취향을 담아 만든 곳들. 스쳐 지나지 않고 머물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다. 계동은 시간이 흘러도 꾸준히 찾는 산책로가 된다.
취향의 공동체 속으로
취향으로 나라를 나누는 상상을 해본 적 있다. SF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나라, 추리소설 나라, 소주의 나라, 맥주의 나라 등등. 이중국적을 가진 소주와 맥주 나라 국민들은 국경에서 만나 소맥을 마신다. 전쟁은 사라지고 화합만이 가득한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풍경인가!
이런 싱거운 농담이 가능한 건 그만큼 취향이 우리의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취향이 타인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취향이 담긴 공간에 들어서면 그곳을 만든 사람과 무언의 대화를 하는 기분이다. 인테리어 소품과 벽에 걸린 그림이 이곳의 주인을 유추하게 한다.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렀을 때는 느낄 수 없는 묘한 동질감이 든다. 취향이 담긴 공간은 방문자를 돌아오게 하는 힘이 있다.
계동은 서울에서 손 꼽히게 많이 걸은 산책로 중 하나다. 첫 직장이 근처여서 오기 시작했지만, 세 번의 이직을 한 뒤에도 여전히 찾는다. 이곳에서 처음 만났던 연인과 결혼을 한 뒤에도. “왠지 모르게 계동은 자꾸 가게 돼.” 우리는 자주 그렇게 말했다. 그 이유 중 하나를 떠올려 보자면 동네가 주는 따뜻한 분위기일 것이다. 한옥 상가들이 줄지어 있는 북촌이나 인사동, 익선동과는 다른 풍경이 계동길에는 보인다. 계동은 거주민과 가게 사장님, 관광객이 조화로운 동네다. 그 사실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건 가게마다 걸린 대형 흑백사진. 철물점 사장님부터 피자집, 카페, 모자 가게의 동네 상점 사장님의 사진이 붙어 있다. 계동길 물나무사진관의 작품이다. 가게 사장님들을 모델로 찍은 마흔 장 넘는 사진을 인화해 가게마다 붙여 놓으니 길이 미술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계동도 북촌처럼 시간이 지날 수록 거주민을 위한 약국이나 철물점은 사라지고, 관광객을 위한 카페나 기념품점이 늘어났다. 사진가가 이곳의 소박한 분위기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다면 지금의 계동길은 없었을 것이다. 동네를 이루는 사람들의 모습을 실제로 눈에 담는 일은 공간의 주인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흑백사진이 주는 동네의 분위기를 사랑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취향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계동을 다시 찾는 산책로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사진이 전시된 이후에도 많은 동네 상점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게가 생겼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질감이 들었던 카페와 식당은 금세 문을 닫고, 같은 분위기를 가진 곳만 계속 자리를 지켰다. 마치 취향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처럼.
결핍은 취향이 되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온 뒤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서면 계동길이고, 조금 더 들어가면 최소아과 의원이 있던 작은 사거리가 나온다. 최소아과 의원은 계동의 랜드마크인 오래된 벽돌 건물의 옛 주인이었다. 그곳엔 한때 옷집이 있다가 지금은 음식점이 들어섰다. 계동엔 한때 무엇이었다 지금은 무엇이 된 가게가 많다. 외관만 멋지고 맛은 없는 카페는 어김없이 골목을 떠났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을 때 우후죽순 생겨났던 가게들이 차츰 문을 닫는 경우도 있었다. 그 사이 카페 공드리는 10년간 한 자리를 지키는 카페다.
영화감독 미셸 공드리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공드리의 영화 <수면의 과학>이 떠오르는 말 모형이 곳곳에 놓여있다. 벽에 걸린 영화 포스터와 그림도 인상적이다. 카페에 들어서면 예술영화관 라운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공드리는 카페지만 커피와 맥주의 경계가 없다. 동네주민과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펍으로 더 친숙한 공간이다. 날씨 좋은 계동을 산책하면 꼭 테라스에 앉아 낮맥을 하게 된다.
공드리가 생겼다 사라지는 계동 가게들 사이에서 1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건 취향이 담긴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트렌드를 좇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담아 만든 가게. 카페 공드리의 사장님이 몇년 전 문을 닫은 예술영화관의 프로그래머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것을 담아내겠다는 집념이 보였다.
강의 아버지는 겨울이면 모든 방에 발이 뜨끈뜨끈할 정도로 보일러를 돌린다. 그리고 냉장고 속에는 항상 시장에 서 떼어 온 고기들을 가득 쟁여 놓는다. 겨울엔 누구도 춥지 않게 지내야 하고, 식구들이 다 같이 둘러앉으면 늘 넉넉히 구워 먹을 고기가 있어야 한다. 평생 춥게 살았던 것, 고기를 마음껏 사 먹지 못했던 것이 지금의 습관을 만들었다고, 언젠가 강이 말해 준 적 있다. 과거의 서러움은 그렇게 현재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결핍이, 어쩌면 우리의 정체성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려 애쓰는 사이, 그런 것을 중요히 여기는 사람이 되는지도.
- 김신지, <평일도 인생이니까> 중에서
본디 취향이란 내게 없는 것을 추구하며 생겨나는 건지도 모른다. 부족한 것을 채우며 내 세계를 확장하는 일. 지방의 소도시에서 자란 내가 여행에 빠진 것도 그렇다. 멀리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그렇지 못한 결핍에 기인한 것일 테니. 좋아하는 일에 진심인 사람을 보면 응원하게 되는 마음도 누구나 결핍이 정체성으로 성장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의 취향이 가득한 계동 골목을 좋아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다른 사람의 취향을 엿보는 것만으로 결핍이 조금은 채워지는 기분이다. 이번 주말엔 공드리가 아닌 계동의 다른 가게에 들러 취향 산책을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