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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용 Sep 13. 2021

내 몸과 화해하는 법

땀 흘리는 산책의 묘미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잦은 음주와 불규칙한 생활을 젊음이라 여기던 20대가 지나니, 피곤과 무기력에 정신을 지배당한 30대가 왔다. 몸은 내게 받은 만큼 돌려주는 중이다. 난 몸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지금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냐며 손을 내밀었다. 시간을 내어 동네를 달리고 한강으로 나가 페달을 밟는다. 땀 흘리는 날이 잦아질 수록 몸은 가벼워진다. 쉽진 않지만 조금씩 내 몸과 화해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왜 달릴까?’ 러닝이 취미라는 사람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취미라면 재미가 있어야할 텐데. 달리기는 그야말로 달리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축구나 농구처럼 골을 넣는 쾌감이나 팀플레이에서 느끼는 유대의 즐거움도 없다. 달리기는 조용히 혼자 시작해 혼자 끝난다. 그래서 공과 골이 없는 운동에는 재미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울식물원


거리 두기가 길어지며 운동 없이 몇 달이 지났다. 몸이 급격히 무거워지면서 마음도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요가 매트를 깔고 하는 홈트레이닝에도 한계가 있었다.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었다. 활동량이 겨울잠 자는 곰 보다도 모자라는 지경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 첫째, 야외일 것. 둘째, 혼자 할 것. 셋째, 준비물이 많지 않을 것. 한 가지가 떠올랐다. 달리기였다.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달리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미루기의 대가’다. 모든 일은 마감 날까지 미뤘다가 끝내며 안 할 수 있다면 끝까지 안 한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원고도 정해진 마감날이 다 되어서야 조금씩 쓰기 시작한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면 너무 완벽하게 하려 하기 때문인 것이다. 스스로에 거는 기대가 크고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기 때문에 시작이 두렵다. 결국 준비운동만 하다가 지쳐버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상태가 되거나 일을 그르치기 쉽다. 운동도 마찬가지. 계획을 세웠다 실패하기를 반복하며 무기력해지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 내가 다음 날 아침 달리기에 성공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간단한 운동 중 하나를 5분만 하는 거긴 했지만 무기력을 이기고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이 컸다. 5분은 10분이 되고 15분이 됐다. 달리기가 이벤트가 아니라 습관이 될 때쯤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서울식물원
“달리기는 시보다는 소설 쓰기에 가깝다. 시작부터 천재성이 폭발하는 재능 집약형 운동이라기보단 더 오랜 시간 공들여 나만의 레이스를 축조해가는 일이다. 처음부터 잘 달리는 사람은 없다. 출발선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작이 미숙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동시에 잘 달리지 못한다고 해서 그 순간들이 불행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 김상민, <아무튼, 달리기> 중에서


완벽주의로 일을 미루는 사람들에겐 달리기가 특효다. 혼자 하는 달리기는 그야말로 달리는 것일 뿐이니까. 빨리 달리거나 오래 달린다는 것은 결국 비교할 대상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그러니 잘 달린다는 건 본인이 결정할 문제인 것이다. 시간을 들여 나만의 레이스를 만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완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을 미룰 필요가 없다. 달리기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서울식물원

또 다른 재미는 가로지르는 풍경에 따라 달라지는 달리기의 텐션이다. 도심을 달릴 때 뉴요커가 되고 동네 뒷산을 달릴 땐 네팔의 트레일 러너가 된 것처럼 텐션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중 가장 즐거운 건 식물원 달리기. 서울식물원의 호수공원을 중심으로 탁 트인 풍경을 보며 잘 관리된 식물 사이를 달리는 길이다. 엄청나게 큰 정원 속을 달리는 기분이 든다. 잘 달린다는 건 이런 재미를 느끼면서 달리는 게 아닐까? 도시 안에서 나만의 달리기 코스를 찾아내고 각자의 레이스를 만들어 가는 것. 경쟁하지 않고 각자의 모양과 형태로 그저 자라나서 아름다운 식물원의 식물들 사이를 달리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래서 달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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