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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률 Oct 15. 2015

그녀는 그곳에 다녀간 것일까

「내 옆에 있는 사람」



그를 알게 된 것은 잡지사에서 그를 인터뷰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였다. 한 번 그를 본 후 나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알게 되었다. 


그를 인터뷰하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인터뷰를 다 마치고 돌아가려고 하자 그가 기왕이면 마사지를 받고 가라고 했다. 마사지를 받지 않고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마사지에 관한 기사를 쓴다는 것은 이를테면 노래를 부르면서 동시에 국수 한 그릇을 다 먹겠다는 무개념 상태 같다고나 할까. 꼭 훌륭한 기사를 쓰겠다는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 필요한 것이었으므로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엎드렸다.



우선 그는 내 몸의 안 좋은 구석들을 차례로 골라냈다. 어깨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평행선과 갈비뼈 근처에 뭉쳐진 무언가와 그리고 양다리가 서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등등이었다. 나는 그가 하라는 대로 겉옷을 벗고 다시 누웠다. 방은 어둡지도 그렇다고 밝지도 않았으나 속옷 하나만을 걸치고 있는 것쯤은 앞을 보지 못하는 그에게도 또 나에게도 중요하지 않았다.


생선을 잘 발라내는 사람. 자유자재로 몸을 꽈배기처럼 꼬았다 풀어놓는 사람. 그 사람은 그런 사람 같았다. 내 몸을 몇 등분으로 나누어 한 군데를 해결하고 다시 다른 곳으로 손을 옮겨 어느 부위를 손보는 솜씨가 굉장했다. 손동작은 낭비가 없었으며 양어깨는 봉우리가 많은 어마어마한 산의 지도를 펴놓고 한걸음에 완등할 채비를 마친 산사람의 그것 같았다.


그는 이십대 후반에 교통사고를 당한 후 시신경이 마비되었다. 그리고 시력을 잃었다. 트럭이 인도로 덮치면서 길가에 주차된 승용차 한 대와 충돌했는데 그 충격이 이어져 승용차가 인도로 튀어올랐고 그만 그 차가 길을 가고 있던 그의 머리 쪽을 덮친 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창창한 시절, 그는 이제 겨우 서른을 조금 넘긴 나이였다. 귀밑에 찢긴 자국을 빼면 꽤 인물이 좋은 편의 사내였다.


그에게 가장 보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었다. 팔꿈치로 내 왼쪽 날갯죽지를 달래다가 그가 대답했다. 눈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눈[雪]인지 눈[眼]인지를 몰라 헤아리려 더듬더듬 어딘가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겨울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눈이 온 것을 나만 모르고 있을 때는 참 당혹스럽더라고. 얼마 전 첫눈이 내렸을 때 눈의 양이 꽤 되어 걷는 데 두려울 만큼 고통이 따랐다고 했다. 노래를, 가요를 좋아한다고도 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꺼낸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많이 사랑한 여자가 있었어요. 그 여자도 나를 많이 좋아해줬죠. 근데 사고로 이렇게 되고 내가 잠적을 해버렸어요. 이렇게 된 것을 보여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미안해서요. 가끔 그 사람이 보고 싶어요.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가 한 ‘다시’라는 말이 그를 얼마나 비참하게 하는 말인지, 그 말이 눈에 박힌 것처럼 금세 내 눈이 붉어졌다는 걸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근데요. 그 여자 분이…… 여기에 다녀갔을 수도 있잖아요?”


대뜸 내가 묻자 그가 손을 멈췄다. 그의 손끝으로 열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왜 그렇게 생각나는 대로 말해버렸을까. 하필이면 왜 그 말을 던져서 그를 유감하게 했을까. 멈칫 그를 아프게 했을까. 


당신은 아무 죄 없이 세상을 보지 말라는 무자비한 형벌을 받았고, 그렇게 앞이 가려진 채로 마음이 좇을 수 있는 것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한때인 것이다. 우리가 정해진 대로 가게 돼 있듯 고작 과거인 것이다. 이러니 당신 앞에 그녀가 나타났다면 당신은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나 했을까 하여 마음이 미어져 내처 물어본 것이었다. 당신 신세가 한스러워 그냥 혼잣말로 뱉은 거였는데. 


그런 것 같기도 하다고.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고. 



자기가 한 말에 자기가 더 놀란 사람처럼 그의 몸이 굳었다. 그러고는 마음을 추슬렀는지 그가 말했다. 한 여자가 마사지를 받으며 우는가 싶더니 그만 나가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녀인지도 모르겠다고. 고작 그녀의 손 몇 번 잡은 게 다여서 그녀를 만지고 있으면서도 그녀인 줄 몰랐었다면 얼마나 바보냐며.


말을 마친 그가 더듬더듬 벽에 기대놓은 의자를 찾아 앉았다. 


나는 그 밤 아주 긴 글을 쓰느라 새벽 동틀 무렵까지 앉아 있었다. 곤한 줄을 모르고 책상에 앉아 있었던 것은 몸이 실팍한 대접을 받아서였을 것이지만, 그와 그녀의 끊어진 인연이 내내 마음 쓰여 온통 머릿속에 구멍을 숭숭 뚫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곳에 다녀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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