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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률 Dec 14. 2015

반대편에 있는 숲

『CEREAL 09호』, 72쪽

평소 단맛을 멀리하고 살았던 것처럼 감미로운 일은 멀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실수였고 착오였던 것이, 감미로움을 잃으면 옆에 누군가를 둘 수 없다. 하물며 친구라는 관계도 서로의 단맛에 끈을 놓지 않는 꿀벌 같지 않던가.     


모쪼록 살면서 실수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실수들에 의해 잘못 만들어진 지표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아직까지 그런 기준에 대한 방황이 남아있다는 것에 놀란다. 이제는 그 방황에 둔감해지고 딱딱해져서 도무지 흘러내릴 기운조차 잃었다는 데 더 놀란다. 우리는 고작 세상을 이루는 부품일 거라고 우리 자신을 자책해왔다. 어쩌면 잃어버려도 찾아지지 않는 부품 같은 것. 하지만 고개만 돌리면 숲이 있다. 퀴퀴한 쾌락의 냄새가 번지는 도시, 저 반대편에는 숲이 있는 것이다.     


숲으로 도망갈 시간이다. 정처 없이 들어간 숲에서 꺼진 기운을 차린다. 푸르고 얇은 무언가가 어깨에 내려 덮이며 포근히 처마를 만들어준다. 더 늦기 전에 숲에서 등을 펴고 자유롭게 있자. 성스럽게 숲에 앉아있자. 그만큼의 위로는 일찍이 푸르른 하늘도 수평선도 우리에게 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숲이 가르쳐주는 것은 균형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들떠있지도 않으며, 고요를 비비고 비벼 투명한 공기를 쏟아놓는다. 다시 그 균형으로부터 유연함을 배우게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숲이다. 그러니 어딘가로 떨어져있는 듯 근사한 기분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숲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충분히 제대로 이해받는 일이다, 숲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이제 나무는 추운 기운을 받아낼 준비를 하기 위해 몸의 수분을 바깥으로 배출할 때다. 그 과정에서 잎이 떨어질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면서부터는 숲에서는 음악이 시작될 것이고, 그러면 바스락 소리를 내며 우리는 같이 걸을 것이다. 걸으면서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세계는 착하게 차오를 것이고 긴긴 겨울을 통과하는 동안에도 나와 당신은 물이 오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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