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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률 Dec 08. 2015

온통 초록으로 휘감긴 당신의 공간

『CEREAL 09호』, 62쪽 중에서


그날 나는 당신의 집엘 처음 방문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밖에서 만나지 않은 건 당신이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였습니다. 당신은 어딘가로 만날 장소를 정했다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집으로 와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당신의 아파트에 도착해 문을 열자마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 아파트의 모든 벽이 식물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식물들은 차라리 전시된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아니, 벽이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일 테니 정정하기로 합니다. 실제로는 식물들이 유리창을 모두 가리고 있어서 나는 그것이 일단 벽이라고만 인식을 한 것입니다.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으면서 당신 집 창에는 커튼이 없다는 것과 어쩌면 그 커튼의 역할을 대신해 식물을 빼곡히 채웠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입니다.     


2m 남짓 되는 높이의 베란다 창을 선반으로 가로막고 그 칸마다 식물들을 올려놓았습니다. 아파트 복도 쪽으로 나있는 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화분은 물론 움푹한 접시, 투명 유리병 등등에 식물들이 들어있었습니다. 벽을 타고 오르는, 당신처럼 여리고 가느다란 덩굴들도 보였습니다. 한낮의 바깥 빛이 그 식물들을 한 번씩 쓰다듬은 뒤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거의 맞는 말이었겠지만 뻔한 말을 나는 뱉고 말았습니다.   

  

“굉장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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